[알바일기] 의류 창고 알바

6월 14일 - 15일 (11만 2천원)

by 태희킷이지

6월 14일 - 15일 (11만 2천원)


근무지가 압구정 현대백화점으로 되어있길래 정장+구두 일 줄 알았는데 편한 복장이라는 게 좀 의외다. 백화점 행사를 준비하는 알바는 보통 영업 마감시간인 20시 이후에 침투하여 새벽에 끝나는 게 대부분인데 근무시간이 9-6인 것도 좀 의외다. 그렇다고 채용기업정보가 수상한 건 아니라서 그냥 지원했다.


담당자가 압구정 현백이 아니라 분당선 서울숲역 앞으로 오라길래 왕십리 닝겐파도에 몸을 싣고 무사히 분당선까지 쓸려왔다. 공고에 나온대로 편한 추리링을 갖춰입긴했는데 "이봐욧!! 너무 편하신 거 아니에욧?!" 라는 반응에 대비하기 위해 늘어날대로 늘어난 청바지도 하나 가방에 넣어왔다. 친구와의 약속에는 늦어도 알바에는 절대 늦지 않는다는 알바윤리강령에 충실해 10분 일찍 2번 출구에 도착했다.


곧 도착한 담당자와 어색하고도 지나치게 예의있는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알바 인재들이 한 분씩 도착한다. 담당자는 그제야 전체일정을 설명해주기 시작하는데 오늘 내일은 의류창고가 있는 이 곳에서 알바를 하고 시간이 가능한 사람은 다음 주에 백화점 침투까지 강행한다고 한다. 일당제가 아니라 시급제인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압구정에서 24시에 끝나는데 택시비 준다는 말은 없어서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고 내일까지만 나오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업무는 단순했다. 지난 2012년부터 켜켜이 쌓아온 이 브랜드의 재고를 다음주 압구정 현백 세일 행사에서 다 팔아치울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일이다. 창고에 쌓아놓은 옷들에 세일 가격표를 하나하나씩 새로 붙이고, 상품을 품번대로 정리하는 동시에 수량파악을 마치면 일이 끝난다고 하는데 창고 사이즈를 보니까 내일까진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연도별, 시즌별로 정리가 필요해서 품번을 기준으로 일단 행거에 걸린 옷을 모두 끌어낸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느새 내 안에 들어온 먼지가 허파에 흡착되고 있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5년 치 먼지를 뒤집어 쓴 재고까지 팔아치우는 걸 보니 할인율이 살벌하겠구나 했는데 이 옷들의 평균정가는 5백 7십만원 정도 되는 것 같다. 코트같은 아우터는 천을 사뿐히 뛰어 넘는 가격이라 할인을 해도 가격이 무시무시하다. 엄청난 가격과 상관없이 알바 인재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구린 건 도대체 누가 입나...?"


자라에서 옷개기 알바할 때 어깨도 옆구리도 뻥뻥 뚤린 블라우스 하나를 5만 9천원에 파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여기는 천 한 뼘당 5만 9천원인듯 하다. 현백을 찾아주시는 우리 고객님께서 5년 전 코트 하나만 들고 가주셔도 오백만 원이니까 '아이고 알바비를 두둑히 주시려나' 하고 약간 기대를 해봤지만 식사시간은 제외하고 딱 7시간, 시급 8천원으로 5만 6천원으로 일당이 지급됐다. 빌어드실.


그래도 밥은 진짜 잘 준다. 반찬 7개에 찌개가 나오는 1인당 6천원짜리 백반정식에다가 테이블 당 돼지불고기와 낙지볶음을 한 접시씩 얹어주시는데 한약을 빨고있는 이 몸은 돼지를 못 먹으니까 아주 죽을 맛이다. 다른 알바인재들이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는 점심시간엔 잔뜩 머금은 먼지를 내뿜으러 서울숲으로 산책을 나선다. 평일 대낮 평상 위에서 적당한 햇살을 받아가며 낮잠 자는 분들을 마주쳤다. 평일 낮에 한가하기로는 지기 싫어져서 다음주엔 낮잠 때리러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산책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일터로 복귀하는데 알바 인재분들이 술렁인다. 연예인을 봤단다. 한 분은 어저께도 화장실 가면서 연습생같이 보이는 사람이 자기한테 인사를 하더라고 얘기하더니 오늘은 에이핑크를 만났다고 들떠계신다. 자기가 알아봤는데 에이핑크의 컴백이 임박했다며 우리가 먼지를 먹고 있는 이 창고 옆 방이 아마 연습실인 것 같단다. 그 분은 갑자기 멜론을 틀더니 에이핑크 전곡반복을 누르신다. 솔직히 조금 창피해서... 화장실에 가는데 에이핑크랑 마주쳤다. 아 명함을 안 챙겼네.


부지런히 했는데도 결국 이틀동안 할당량을 못 끝냈다. 알바 연장을 제의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이 시급으로 두 번 할 알바는 아니다. (아 밥은 맛있었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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