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일기] 전화 알바

8월 31일 (5만 5천원)

by 태희킷이지

8월 31일 (5만 5천원)


'사무보조'라는 타이틀로 알바가 올라왔다. 9-6에 5만 5천원, 집에서 넘나 먼 연남동이면 그리 훌륭한 조건은 아니지만 알바자리가 무진장 없으니... 아 그리고 원래 9월 9일에 한 번 더 일을 하는 조건이어서 10만원은 벌겠구나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다. 도착해서 사무실에 들어갔지만 직원의 특별한 설명은 없었고 어제부터 일을 하신 분이 계셔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냥 대학이나 사찰에 전화를 돌려서 차(茶) 박람회에 관해서 홍보하는 일이다.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여기 좋아요 오세요 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티켓과 홍보물을 우편으로 보내놓은 곳에 전화를 하는 일이라 크게 부담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A4 절반으로 준비되어있는 멘트를 모두 들어주기엔 상대는 너무 바빴고 수차례 내 말을 끊어드셨다. 박람회에 대해 되묻는 질문에는 날이 서있었고 주최가 어디냐며 정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콜센터 알바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전화로 사람을 응대하는 일이 고되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 예상하고 있었고, 나조차도 그런 전화를 받을 때 절대 친절한 인간은 아니어서 그 점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시국에 차 한잔 하러 서울가겠냐는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전화하는 사람이 말을 하기도 전에 대답을 하시는 대학 조교들과 통화로 분주한 새학기 분위기를 짐작하기도 했다.


점심 먹을 때 빼곤 함께 일을 한 두 분과 정말 쉬지않고 빡세게 전화를 돌렸고 그 결과 4시를 넘겨 맡은 일을 끝냈다. 은근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두 분은 "여기 일찍 끝내도 안 보내줘요"라고 했고 실망한 채 노트북을 닫았다. 다들 맡았던 일은 다 끝냈던 터라 몇 차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던 곳에 계속 전화를 걸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오면서 하는 말. "열심히 하세요. 제가 여기 대표입니다. 모르실 거 같아서 ㅎㅎ"


뭐지;; 싶어 셋이 멍하니 있는데 바톤터치하듯 들어온 담당자는 예의있게 전화하라고 당부한다. 근데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예의가 없는 상황이다. 아마 그래서 이렇게 따로 알바를 쓰는가 싶을 정도로. 다했냐고 묻더니 왜 내 엑셀 파일엔 통화내용이 없냐고 쏘아붙인다. 따로 적을 만한 특이사항이 없다고 하니 그럼 이걸 저희가 다시 확인전화 해야한다면서 찡찡댄다. 통화내용을 다 적으라는 말은 들은적이 없다고 했더니 정색하면서 알았다고 한다. 적어도 알바에게 무슨 일을 왜 하는지는 알려주셔야 기계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아침에 직원이라는 사람에게 들은 말은 한 마디다. '리스트 번호로 전화하시면 돼요.'


퇴근을 10분 정도 남겨놓고, 나와 함께 일을 한 알바 두 분은 꺾기를 당했다. 갑자기 모레에는 안 나와도 좋다고 한다. 이유가 더 어처구니 없는 게... 너님들이 생각보다 일을 빨리 해서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아까까진 심기 불편한 티를 팍팍 내더니 미안한 건 아는지 어색한 웃음 아닌 웃음을 짓는 담당자의 얼굴을 보면서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그리고 9월 8일 어제, 예상대로 꺾기를 당했다. 하루 남겨놓고 알바에 오지 말라고 한다. '마인드 디자인' 여기저기 기사에서는 훌륭한 회사라고 하는데 적어도 내가 일한 그 날은 알바 하나 관리 못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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