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12
요즘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뭐 사실 그리 심각할 것도, 그만큼 티낼 것도 없는데 그냥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어떻게든 비워내보려고 멋진 언니한테 자신이 뭔가 좀 안 풀릴 때 사용한다는 방법을 들어봤어요.
“난 항상 우주를 생각해. 뭔가 엄청난 무한함에 압도당하는 느낌?
그 느낌이 들면 꽉 막힌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래서 요즘 내 머릿속엔 담을 수 없는 커다란 우주를 생각하곤 해요. 그 우주 속에선 난 너무 작아서 먼지에여. 근데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이게 경외감이라는 건가요. 인터뷰이에게도 너님의 생각을 뛰어넘는 우주를 추천하고 싶어요.
인생 첫 인터뷰야!
다들 그래여. 내가 만나는 분들 다 쩌리짱인데. 어디서 해보셨겠어여.
그나저나 오늘 날 잘 잡았네여. 너님이 좋아하는 날씨네여.
오 어떻게 알았어? (너님이 자기소개에 썼어여.) 아 썼구나. 오늘 내가 좋아하는 날씨라고 그 말하려고 했는데. 요즘 들어 계속 내가 좋아하는 날씨야. 아침에 일어나면 비가 이미 온 뒤에 그치고 땅만 젖어있는 상태 있잖아. 내가 늦게 일어나거든. (보통 몇 시에 일어나시나여?) 계절학기 끝나고 한 일주일쯤은 좀 퍼져서 11시에 일어났는데 요즘은 다시 9시에 일어나. 근데 그게 빨리 일어나는 거야. (그러네여. 저는 요즘 오후 1시에 일어나여.) 너 생각보다 게으르네. 난 예전엔 잠이 안 오는 게 문제였는데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서 학원가서 8시간 내내 스파르타 토익 하다가 집에 오면 10시니까 씻고 잠깐 복습하고 바로 곯아 떨어져서 너무 좋아.(오... 뭔가 생각이 많아질 시간이 없네여.) 생각이 많아질 시간이 없는 건 좋은데 집에서 학원까지 버스로 가는 시간이 왕복 3시간이니까 그 때 생각을 많이 하지.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나여?
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요즘은 남자친구 생각. (남친 생각이라 잘 지내시나여?) 헤어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 태연하시네. 그렇다면 구남친이지 어떻게 남친이에여. 아직 못 떨쳐냈나보네여.) 맞아 전남친이야. 너님이 잘 지내냐고 안 물어봤으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이제 진짜 헤어졌어.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진짜 헤어진거야. (매듭지은지 얼마 안 된건가여?) 지난 주 목요일? (아 정신차려야지. 이걸 들으려고 온 건 아니니까 아 근데 이게 더 재밌을 거 같은데.) 그니까 나 인터뷰 주제 바꾸고 싶어. 그래서 자기소개 다시 보내고 싶다고 한 건데. (말해여 뭐로 바꾸고 싶은데여.) 헤어진 남자친구..... 아냐 그냥 하자. 너님이 일단 준비한 게 있고 하니깐 (준비한 거 사실 없는데;;)
자기소개를 쓸 땐 고민이 많았는지 내용이 대체로 부정적이시던데.
부정적인 거를 생각하면서 써서 그런가? (아 그 때쯤 이별이었나여?) 아니. 아 몰라 원래 잘 사귀었는데. 나 남자친구 만나고 되게 어두워졌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 남자친구가 생기고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해가지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 이유가 남친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여? 남친이라고 말하면 좀 그렇고 연애 때문에?) 남친 때문에,연애 때문에. 그랬는데 헤어지고 나니까 다시 밝아졌어. 안 밝아 보이니?
어떤 게 힘들었나여?
내가 하는 연애 자체. 나는 남자친구에 대해 싫은 점이 있거나 객관적으로 남친이 잘못한 일이 있어도 홧김에 헤어지자는 말은 절대 안 해. 근데 남자 친구는 미안하다고는 안 하고 오히려 당당하게 화내고 나한테 헤어지자고 하고 하던 일들이 몇 번 있었어. 그래도 헤어지자는 말은 잘 안하고 참을 때까지 참아. (파국으로 치닫기 싫어서 인가여?) 어차피 사람이 만나면 가족끼리도 싸우는데, 아무리 좋아해도 싸울 수밖에 없는데 감정적인 문제가 있을 때마다 헤어지자고 생각하는 건 노력을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해. 좋아한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력을 한 거고 좋아하니까 참는 거지. 근데 그걸 참다보니까 해결은 안 되고 어두워졌던 것 같아. 욕심을 못 버리고 남친은 계속 잡고 싶은데 동시에 남자친구가 잘못한 일들은 삭히면서 쌓여가니까 점점 어두워 지는 거야. 헤어지자 할 땐 내가 계속 잡는 상황이었는데 내 입에서 내가 헤어지자는 얘기가 나왔으니까 이젠 진짜 헤어지는 거야. (쌍방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여?) 그쪽은 모르겠지. 헤어지자해서 내가 잡았는데 안 잡혔어. 그래서 이번엔 내가 결심을 한 거지. 진짜 한 거야 돌이킬 것 없이. 그래서 이제 뭐. 다시 밝아졌어. (울지마세여.) 아니야 진짜 안 울어.
‘맨날 밤에 잠이 안 오고 아침에 일어나기 너무 힘들어여. ㅠㅠ’ 이래 써 놓고 뭐 밝아지긴여.
그건 남자친구랑 관련한 얘기가 아니라 인생과 취업에 관한 이야기야. 자기소개엔 남자친구얘기 하나도 안썼어. (근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자신을 끌어올리는 이야기는 없고 다 까 내리는 이야기만 있어여.) 맞아. (인상적인 부분은 자신이 여린 편인데 강해지고 싶다는 부분.) 그건 당연한 거 아냐? 여리 게 살수는 없잖아. 난 항상 그 생각해서 특별할 거 없는데 그게 왜 인상적이야? (내 마음이에여. 암튼 밝아진 이유는 그거 하나?) 뭐 다른 계기는 없었고 지금은 후련하다고 해야 할까.
그럼 밤에 잠이 안 오고 아침엔 일어나기 힘든 건 취업 때문에?
뭐라고 썼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나. 요즘은 잠이 잘 오는데 열심히 안살 때는 그랬어. (아 열심히 안 살 때도 있었어여?) 완전 많았지. (지금은 열심히 사나여?) 사실 이정도 가지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을 막 그냥 흘려보내진 않으니까. 뭐라도 하고 있으니까. (그전엔 어땠는데여?) 그전엔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어. 뭔가 나와 시간이 이렇게 있으면 시간하고 내가 같이 걸어가야 하는데 나는 그대로 있고 시간만 흘러가는 느낌? (구체적으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신 거에여?)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거나 지금 뭐했는지 기억도 안날정도로 그냥 멍 때리고 있거나 생각 없이. 아니다 생각이 많아서 그랬나? (뭐 하나에 집중한 게 아니라 이거죠?) 맞아 뭘 악착같이 해보지도 않고.
고등학교 때 까진 시간과 같이 걸어가는 느낌이었어. 악착같이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 근데 대학와서는 시간을 흘려보냈지. 1,2학년 방학 땐 집에서 빈둥빈둥거렸어. 드라마보거나 영화보거나. 어떤 방학 땐 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지금 생각해보니 뭔가 다 했긴 했네. 근데 학기 중에는 아무것도 안한 것 같아. (했어도 너님 맘에 안 들었나보죠) 그런 것 같아. 몰입하지 않았어. 쭉 빠져들어 완전히 하지는 않은 거지. 발 하나만 걸쳐놓고. (시간을 채웠다? 때운다? 그런 느낌?) 그런 것 같아. (확실한 게 없네여!) 세상에 확실한 건 없지. 있으면 이렇게 살겠냐? (암튼 이전에 비하면 지금은 맘에 드는 편?) 아니. 대학 오고 나선 그닥 생산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
판단을 할 때는 어디에 비춰 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너님이 생각하는 생산적인 삶은?
물론 4학년 취업을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한 걸 수도 있지만 내 자신이 나태하고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연애할 때. 남자친구는 나랑 달라. 남자친구는 계속 뭘 해. 뭘 안하면 불안해해. 남자친구는 항상 미래를 준비해야 했어. 나랑 정반대지. 취업을 하고 나서도 한자 2급을 딴다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어. 난 한시도 긴장을 하지 않는데 남친은 한시도 안주하지 않아.취업을 했는데도 놀지를 않거든. ‘퇴근하고 뭐할 거야?’ 하면 ‘운동하고 집에 가서 영어랑 한자 공부 좀 해야지. 나 회사에서 하는 영어 회화수업 신청할 거야.’
전에 너님한테 내가 연애하니까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남친이 열심히 살고 배울게 많아서 좋다고 했었던 게 기억나여.
맞아. 존경했어. 지금도 존경하지. 근데 난 내가 문제 있다고 생각 안했는데 남친은 사람이 약간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나에게 말을 해. 나에게 도움이 되라고 하는 얘기지. 난 그런 게 싫지 않아. 난 원래 누구의 말을 잘 받아들이거든. 약간 순종적이라고 할까. 그리고 남자친구를 존경했으니까 ‘진짜 그래야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내가 그런 모습이 아니니까 내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 난 주관이 없어. 남자친구랑 차라리 싸웠다거나 그 쪽에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면 문제는 없었을 거야. 난 잘 받아들이니까. 근데 내가 날 미워하는 상황이 되더라고.
너님이 자기소개에서 자신을 표현한 단어를 대충 읊어 드릴게여.
“별탈 없이 적당히 대충 살았고, 몰두해 본 적 없고, 그래서 그런지 주체적 삶이었던 것 같지 않고 열정도 없었고 주위에서 삶에 긴장감이 없다는 얘기도 들어봤고, 잘 지친다.” 마지막엔 “나는 알바나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해야 할 것 같아.”로 마무리하셨어여. 자기소개 쓸 때 무슨 기분이었나여? 좀 새벽에 쓴 거 같은데.
언제 썼는지 기억이 안나. 새벽에 쓴 건 아니야. 계절학기 듣는 중이어서 다음 날 아홉시에 일어나야 했으니까 새벽에 쓰진 않았을 거고. 난 원래 생각을 많이 하는데 평소에 항상 생각하던 내 생각을 쓴 거야. 그 때 기분은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았어. ‘정말 누가 시키는 일이나 해야겠다. 회사에서 기획 같은 거 못할 것 같다.’ 라는 식으로.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내가 말은 잘 듣는다 했잖아. (알바는 뭐 해보셨는데여?)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서빙하고 뷔페에서 그릇치우는 거, 전단지, 과외도 계속했었고 학원 보조강사, 카페 알바 그런 거. 또 생각해보니까 만들어 내는 일도 마음먹으면 잘 한다고 생각해....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자주 들었는데 대학에 와서는 라디오 말고도 재밌는 게 많아서 잘 안 들었다고 하던데 뭐 하는 게 재미나던가여?
고등학교 때는 항상 공부를 해야 하니까. 공부를 하면서 딴 짓을 못하잖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딴 짓이 라디오로 음악 듣는거야.대학 와서는 공부 안 해도 되니까 놀러나가지. 놀러나가는 거 재밌으니까 놀러나가선 라디오 안 들어도 되잖아. 드라마 보고 싶을 땐 드라마 보면 되니까 굳이 라디오를 찾을 필요가 없었지. 단순해. 공부하면서 놀 수 있는 게 라디오라서.
저번에 내가 학교 뜨면 뭐하고 싶냐고 추궁하니까 라디오 PD, 작가 이런 얘기 했었잖아여.
그 날은 취업상담한 날이었는데 거기서 한 시간 동안 욕 들어 먹었거든. (어떤 욕을 들어먹으셨는데여?) “뭐 긴장감이 없다. 사회복지사 해라. 니가 착한 건 알겠는데 이런 무난무난한 성격은 못 쓴다. 공기업은 이런 성격 좋아하겠는데 학점 안 되니까 일단 탈락이다.” 그럼 사기업 어디써야 하냐고 물으니까 “글쎄 너는 뭘 해야 할까? 사회복지사?”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아 그럼 사회복지사를 해야 하나 생각했어. 근데 그것도 시험 보잖아. 누가 붙여주나. (너님 성격이 어떻다고 하시던가여.) 자소서를 가져갔는데 그걸 보고 무난무난하다, 한 가지에 미쳐 본 적이 없다, 강렬한 뚜렷한 뭔가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 기업은 너무 파란만장한 사람들만을 원해. (그런 사람들만 뽑아서 어떻게 일 시켜먹을지 모르겠네여.) 근데 솔직히 여자는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스물 넷,스물 다섯 이런데 다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획일적으로 공부했을 거고 우리가 각자 다르게 살아온 삶이 4, 5년 밖에 안 되잖아. 사람이 4, 5년 만에 대체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고.
긴장 별로 안하고 느긋하다는 식으로 취업상담에서든 남자친구한테든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던가여? 지금 마음 상태는 어떤지 말해 줄 수 있나여?
이 순간은 날 사랑하지. 이 1분 1초는. 근데 여기서 나가서 너랑 ㅂㅂ 하고 다시 취업생각하면 다시 또 내가 싫어질 수도 있고. 취업 압박이 없으면 난 내가 좋다고 생각하거든. (그럼 분리시켜볼 수는 없는 건가여? 취업 준비할 때의 나와 평소의 나를.) 그게 강한거지. 그 마음을 견딜 수 있으면 강하다고 생각해. 나는 못 견디니까 내가 좋았다가도 싫어지고 하는 거 같아.
주위에 강한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나도 강해지고 싶다고 말씀하신 느낌이 이 느낌인가여?
난 너무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아. 근데 어떤 일이 생겨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안 힘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강한 사람인 것 같아. (에이 설마 마음이 안 힘든 사람이 있을까여? 속마음은 다 모르는 거 잖아여.) 그치 다 모르지. 그래도 마음이 힘들더라도 겉으로 잘 안 드러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인거 같아. 힘들더라도 그걸 혼자 이겨내고 할 거 하는 사람. 근데 나는 혼자 못 이겨낸단 말이야. 예를 들어 이런 거야. 정말 내가 힘든 일이 있다. 엄청 힘들어서 잠을 못 잤어. 근데도 강한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제 시간에 학교에 가는 거야. 근데 나는 그냥 잘래하고 못 일어나.
강해지고 싶으면 그 강해보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봐여.
근데 너님이 강한 사람들도 사실 힘든데 그렇게 보이는 거일수도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 주위에 강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을 찬찬히 생각해봤더니 ‘얘도 이렇게 약한 면이 있었지. 그렇게 강하지 않아.’ 이렇게 확실하지 않은 거야. 나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님 말을 들으면서 강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대답하기 어려운 거 같아.
그래도 보내 준 자기소개가 완전히 부정적이지는 않던데여. 좋아하는 것들도 쓰시고. 풀, 나무, 공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어. (ㄷㄷ 말하져. 너님 인터뷴데.) 근데 자기소개를 하래. 살면서 자기소개를 누군가한테 자세하게 한 게 처음인 것 같아. 취업 때문에 자기소개서 쓸 뿐이지. 어딜 가도 기껏해야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 이렇게 자기소개 하잖아.그래서 어떻게 쓸까 하다가 어린왕자 책 생각났어. 그 책을 자주 읽는데 어린왕자가 어른들은 숫자 같은 이상한 걸로만 사람을 규정한다고 나오잖아. 자기 소개할 때 내가 좋아하는 걸 얘기함으로서 나라는 사람을 알릴 수 있잖아. 그래서 한 번 해봤어.
뭔 개소리에여. 그래서 여기 쓴 좋아하는 건 사실이 아니란 말 인가여?
좋아하는 거야. 근데 내가 젤 좋아하는 건 사랑이야. 인생에 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랑이야. (다 날려야겠다. 내 작전을 들려드릴게. 라디오 PD를 꿈꾸는 사람이 감성적이며 낭만적인 일을 기대했지만 결국엔 어느 곳보다 비 낭만적인 경쟁 속에 있는 모순적 상황올 수도 있겠다. 이게 무슨 낭만인가. 이런 얘기까지 하려고 했었어여.) 완전 산으로 갔네 인터뷰가. (아뇨. 이건 내 시나리오죠.) 어 맞아. 인터뷰 다시하자. 완전 힘들겠다 너. (너님 막차 몇 시 인데여?) 자기소개 다시 쓰라고 하면 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할 거야. 내 인생에서 사랑이 중요하다. 헤어지지 않았어도 이 얘기는 할 것 같아.
아 아까 질문 다시 대답하고 싶어. (맘대로 하셈.) 여려서 강해지고 싶다는 얘기했잖아. 난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람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왜여?) 그냥 그게 중요한 거 같아. 내가 도움이 되고 싶어 친구들한테. 친구가 힘들 때 ‘너 이렇게 해야 해.’ 라는 식으로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얘기 잘 들어주고 내가 친구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고 하면 그게 그 친구에게 젤 위안이 될 것 같아.
그리고 남자친구의 마음도 어루만져주고 싶었어. 너무 거칠어. 힘들었던 거, 트라우마 같은 거 이야기하면 잘 다독여주고 싶었어.(거칠다는 게 뭔 의미에여?) 되게 상처가 많고 인생을 전투적으로 살아와서 한 마디로 말하면 모났어. 근데 모났다고 표현하긴 싫어 너무 안 좋은 것 같아. (길가다 자주 부딪히나여?) 나는 둘이 보니까 잘 모르지. 사람관계도 잘하는데 쉽게 화가 나. (욱인가여?) 욱이랑은 달라. 항상 마음에 분노가 있어. 누가 나 건드리기만 해봐라. 이런 식으로 살아왔대. 항상 내일을 위해 뭘 해야 하니까 신경이 곤두서있다고 할까. 뭔가 해야 해라는 마음이 할 일을 만들고 강한 척을 하면서 살아온거야. 나는 오빠가 강하다고 생각해. 근데 강한 척을 한다고 생각해. 근데 강한 척을 하고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 보이거든. 버거워 보여. (아니 여린데 강한 척을 해서 강해 보이는 거에여? 아님 강한데 강한 척도 하는 걸까여?) 강한 척을 해서 강해보이는 것 같아. 근데 약하다고 말하기 싫어 강해. (ㄴㄴ 나 화나게 하지마세여.) 근데 분명 여린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내가 다독여 주고 싶은 거지. 주위에 친구들은 오빠가 나 만나고 많이 유해졌다고는 얘기하더라고.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대.
많이 좋아 했었네여.
많이 좋아했지. (아까 그 친구 얘기는 훼이크 같네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친한 친구가 있어. 딱 한 명 꼽으라 해도 꼽을 정도로. 그 친구를 내가 힘들 때마다 찾아. 근데 어느 순간 너무 고맙더라고. 내가 오빠 때문에 고생할 때 문득 ‘얘 아니면 나 지금쯤 인생 망했겠다. 진짜 돌았겠다. 어떻게 버텼을까?’ 그렇게 생각 한거야. 그냥 알게 된 게 아니라 확 깨닫게 되더라고. 그래서 나도 그 친구얘기 잘 들어주고 마음 다독여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사랑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제 생각보다 넓은 범위의 사랑이네여?
아니에요. 남녀 간의 사랑이에요. (너님 개어렵네여.) 이게 문제야 생각이 너무 많아. (그리고 너님 말도 자꾸 바뀌어여.) 인생에 살면서 뭘 해도 옆에 누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지금 내 가족은 부모님과 동생이지만 앞으로의 가족은 내가 결혼할 사람 그리고 낳는 자식들이잖아. 그러니까 인생에서 항상 관계나 사랑이 되게 중요해. 뭐 내 자신이 친구한테도 도움이 되는 사람,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너님 말 들어보니까 진짜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닌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내지 마. 근데 오빠는 자아 성취, 자아 실현 그런 걸 중점적으로 뒀어. 아니 사랑과 자아실현이 대등했던 것 같아. 근데 나는 아냐 사랑이 더 중요해.
근데 너님 정리한 거 맞아여?
오빠가 나한테 진짜 못되게 헤어지자고 했는데도 내가 잡았어. 근데 오빠가 칼같이 말했어. 그래서 진짜 마음먹고 헤어지자 했어.근데 오빠가 다시 나를 잡았어. (잉?) 지난 주 목요일에 헤어졌다고 했잖아. 그 뒤로 난 마음정리 하나씩하고 있는데 오빠한테 계속 연락이 와. 근데 오빠가 너무 안쓰러워. (왜여?) 항상 오빠의 여린 마음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오빠가 왜 이렇게 나한테 못되게 했을까. 그래서 이번엔 나도 상처를 많이 받고 헤어질거라고 결심을 한 건데. 그래도 난 오빠를 좋아한다. 좋아하면 사귀면 되지 오빠가 다시 잡기 까지 했는데. 근데 안 사귀고 있는 나도 참 웃긴데. 난 다시 안 만날껀데 앞으로 오빠는 어떻게 하지? 오빠 얘기 누가 들어주지? 오빠 마음 누가 토닥여주고 가라앉혀주지? 그런 생각 들어.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사랑이에여? 너님이 말하는 뉘앙스가 내가 글로 배운 사랑보다는 안쓰러움과 의무감의 콜라보같은데여.
다독여주고 싶다. (그 원천이 말 그대로 상대에게서 안쓰러움을 보는 동정일 수도 있잖아여.) 난 오빠한테 빈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오빠한테 그 역할을 해줄 수가 있어서 그게 너무 좋았어. 오빠한테 정말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게. 동정 그런 게 아니라 채워줄 수 있어서 행복했는데 이제 걱정이 되는 거지. 오빠는 얼마나 똥줄이 타겠어. 나는 계속 연락을 안 받는데. 그러면 연락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맘이 안 좋겠어. 그게 너무 슬퍼 그러고 있는 게.
그렇다고 잘 해보자하고 만나면 너님 후회할 거 같나여?
다시 만나도 또 헤어질 것 같아. 근데 어제 토익스터디 하는데 공부가 너무 재밌는 거야. 신나는 거야. (오예~) 그러니까 오빠한테 너무 미안한거야. (ㅠㅠ) 연락 안 받아서 똥줄 타고 있을 텐데 내가 신나 하는 게 너무 미안한거야. 그럼 내가 다시 돌아가면 되잖아. 이렇게 걱정되면. 근데 그러지도 않으니까....
정리했다는 건 결국 거짓말 같은 데여.
정리했지! 이게 정리 한거지. (마음이 정리되어야 정리된 거 아닌가여?) 그래도 다시 돌아갈 일이 없잖아. 그래서 정리했다고 얘기 한거지. 확실하니까. 근데 오빠한테 마음이 쓰여 너무 맘이 쓰여.
벌집같네여. 제가 괜히 건드렸나봐여. 버스에서 할 생각인데.
버스에선 일부러 오빠생각을 하려고해. (의도는 뭐죠?) 내 마음은 확실하지 않나봐. 이게 맞을까. 나는 다시 오빠 안 만날 거야.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있어. (자신에게 확신주려고 하는 과정 같네여.) 오빠 어떻게 할까. 이대로 두면 어떻게 해. 아 모르겠어. 근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 아니 이럴 거 알고 내가 분명 잡았는데 안 잡히고 가더니.
정이 너무 많은거 아님?
내가 정이 많은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정이 많은 게 아니라 오빠를 사랑하는 거야. (사랑하죠?) 네.
그러면 내가 단정 짓고 싶지는 않고 생각을 더 해보셨으면 좋겠네여. 방향이 어떻게 되든 결정이 필요 없을 때까지 시간이 흐를 수도 있고여.
정확해. 오빠한테 연락 오기 전에 ‘그래 1주일만 참자. 또 1주일 참자. 아 근데 정말 참다 진짜 견딜 수 없으면 연락해야겠다.’ 이 생각 했거든. 너 또 내가 모순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온통 다 모순인데 너님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듯) 그러게 가식쟁이인가봐. (가식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말해놓고도 이게 답인가 싶어서 말이 바뀌는 거 같은데여.) 뭔가 확실하게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항상 생각은 많이 하지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이게 진짜 내 마음이 맞나. 너님 말 듣고 바로 흔들리잖아. 그런가. 이거 하나는 확실해 난 후회는 많아. 내가 해놓고도 이게 맞나.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 쉽게 받아들이는 만큼 쉽게 흔들리는 것 같아. (소신이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확실한 게 없다는 게 너님의 소신일 수도 있잖아여.) 항상 반성하는 삶? (너님 자소서에 쓰면 제격일 듯) 괜찮은 거 같다. 아 진짜 피곤한 삶이야. 아 어렵다. 근데 물어 볼 거 있어. 너님이 아까 진짜 강한 사람인지 약한 사람인지 모르는 거라 했잖아. 날 보기에 어떤 사람인거 같아? (너님은 그저 우주의 티끌인데여.)
마지막 질문, 기대에 비해 인터뷰 어떤 꼴이던가여?
우선 이 인터뷰를 왜 하는지 궁금하고. 사진전도 왜했는지 궁금한데 왜 얘길 안 해줘? 뭐 재밌을 거 같아서 했다고는 했지만. 암튼 그리고 인터뷰하면서 더 생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확실하지 않으니까 확실할 때까지 생각을 하고 싶어. (평생 걸릴 거 같은데여) 그게 내 숙명인가 봐. (나에겐 생각이 숙명이다!!) 너님이 내 얘기가 모순된다고 해서 정말 그런가 생각을 해보게 됐고 좀 당황했어.
내가 매 번 내 진심을 숨기려고 이러 저리 왔다갔다 하는 건가? 왜 난 내 마음에 집중하지 않을까? 아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인터뷰는 되게 기대했고 재밌었던 거 같아. 사실 이런 얘기를 이렇게 길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말하는 기회도 정말 없고. 오늘 정말 솔직하게 말한 거 같아. 친구들끼리 만나면 오히려 친구라서 더 말 안 할 수도 있는데 인터뷰라고 하니까 약간 일적인 느낌? 그래서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고.
너 오늘 힘들었을 거 같아. (매 주 이러고 있는데여.) 들어주는 게 힘들었을 거 같아. 남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게 어려워. 어떤 사건을 집중하는 건 쉬워. 어떤 일이 있었는데 내 맘이 어떠했다는 식의 얘기. 근데 이렇게 남의 생각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무언가 캐치하려고 하는 건 되게 어렵거든. 상대가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집중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 그것도 이렇게 장시간. 그래서 너 힘들 것 같아. 집중하는 게 대단해. 너가 실제로 집중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음.......... (더 없음 말아여.) 응ㅋㅋ.
우주의 무한함과 인간의 약소함을 동시에 느낀 적이 있어요. 태극권 수업을 듣다 자원해서 교수님의 장풍을 맞은 날이에요. 무지 두꺼운 손이 제 몸에 닿는 순간 나는 공중에 있었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어요. 우선 무엇보다 온몸에서 무도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샘솟았고 인간의 몸뚱이가 이렇게 쉽게 나뒹굴 수 있음에 허무함도 느낄 수 있었어요. 말 그대로 장풍을 맞는 순간 내 몸이 대기 속 먼지와 함께 우주의 티끌이 되어버리는 기분이었어요. 이후로 한동안 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할 때면 그 때 공중에서 하던 생각을 하곤 했어요. 내가 생각하던 우주는 내 중심으로 돌던 복잡한 우주였는데 먼지가 되고나니 별게 없게 없더라고요.내가 힘겨워했던 건 기껏해야 내 머릿속 우주였나봐요. 진짜 우주엔 정답이 있을까요. 인생 노답.
그나저나 매 번 던지는 마지막 질문에 ‘잘한다.’ ‘멋지다.’ ‘고맙다.’ ‘궁디팡팡.’ 등의 반응은 많이 받았는데 ‘힘들었겠다.’는 반응은 처음이어서 뭔가 당황스러웠어요. 근데 지금 쓰면서 마음이 간질간질한 걸 보니 나 그 얘기 많이 듣고 싶었나 봐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많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