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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秋)남

개똥같은 인터뷰 #14

by 태희킷이지
개똥같은_인터뷰_로고(흰).jpg


https://youtu.be/WDAPcnJJteY

이문세씨는 가을 남자가 아니에여.


‘가을이오면 눈부신 아침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이 노래에는 함정이 있어요. 가을 남자가 빛을 발하는 시간은 눈곱도 못 떼어 낸 가을 아침이 아니란 말이에요. 카톡도 뜸해지는 으스스한 가을 새벽이야말로 진짜 가을 남자에게 어울리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온전히 혼자인데다 약간 쌀쌀하기까지 한 요즘 같은 새벽처럼요. 같은 옷을 입혀놨을 땐 계절의 취향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는데 이젠 각자에 어울리는 계절이 보이네요. 아침, 저녁으론 반바지가 민망할 정도로 가을이 온 것 같아 자신을 가을 남자로 주장하는 인간을 만나봤어요.




편하게 인터뷰 ㄱㄱ. 어떻게 인터뷰 신청하게 되셨나여?


난 처음부터 너가 이 짓을 하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솔직히 내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누구에게 말하기도 좀 그랬어. 주위에 그렇게 속마음을 술술 말할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약간 그런 점도 있고.... 내가 가을을 많이 탄다는 건 내 친구들도 많이 몰라. 어디 가서 말하기도 쉽지 않아도 익명도 보장되고 하니까.


오늘 너님이 하는 말이 어떻게 보면 나한테만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받아들이면서 뿌듯해 해도 돼여?


뭐 그럴 수 그.. 그렇지. (어디 가서 쉽게 나오지 않는 그만큼 가치 있는 얘기니까?) 나한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주제 만에 들어여. 뭔가 확실하니까여. 사전에 인터뷰 보셨나여? 기억에 남는 거라도?


21세 간호학과? (...관심이 있으신가여?)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나랑 비슷한 점도 많이 있어서. (아 학교 노잼?) 응 나도 요즘 학교 재미 없어서. 공감이 많이 됐지.


여튼 아주 시기적절한 시즌상품으로 잘 오셨네여. 너님에게 가을이란.


가을은... 나에게 쓸쓸함과 외로움. 가을 되면 너도 잘 알겠지만 예전부터 주위에서 가을 탄다는 말을 많이 듣잖아.


흔히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 탄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닌데 유난히 심하게 타는 듯한 뉘앙스로 자신을 소개하셨어여.


가을이 되면..... 좀 그래. 마음이 좀 허전하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땐 적적하기도 하고 날씨는 되게 좋은데. (날씨와 감정이 대비되는 건가여?) 약간 그런 것도 있지. 날씨는 좋은데 내 상황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은 거지.


자기소개에도 가을엔 무척이나 우울하다고 표현 하셨는데 시작은 고등학생 때라고 하셨어여. 처음으로 가을을 타고 있는 자신을 그 때 발견한 건가여? 그 때 느낌 기억하세여?


아직도 기억나는 게 교실 문을 나서면 바로 복도 창문이 있었고 우리 교실은 맨 꼭대기 층이었어. 올라오는 계단 옆에 약간의 텅 빈 공간이 있었는데 그 벽에 기대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창틀에 기대서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고등학생이니까 아무래도 성적고민도 했고, 여자 문제도 있었고. (오 말해봐여!) 아 여자 문제라기보단 혼자만의 짝사랑? (올~) 이건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것만 캐내도 오늘 큰 수확인데여. 무조건 익명 보장할테니 말해봐여.) 아니 노코멘트지. (아이 참 오프 더 레코드 ㄱ)


ㅎㅎㅎ 재밌네여.


여튼 그런 것도 있었고.


기억나여. 꼭대기 층 복도 끝과 복도 창문. 저도 기억나는 게 어느 가을 비 오는 날에 복도에 심각한 애 한 명이 이어폰 꽂고 창틀에 기대 턱 괴고 서서 한숨 쉬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솔직히 말해 너님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항상 등장하는 장면이긴 해여.근데 갑자기 그 때 듣고 있던 노래가 궁금해여. 거의 눈물 흘릴라고 하시던데.


그렇게 딱히 슬픈 노래는 아니었어. 비틀즈 노래. 그 땐 한창 락 음악을 들을 땐데 그렇게 시끄럽진 않은데 그냥 잔잔한. 그렇다고 너무 슬프지는 않고. 윤도현 노래도 많이 들었고. 너를 보내고?


고등학교 때야 살 부비고 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보니 고등학교 친구들은 많이 아는 거고. 이 외에 가족이나 대학친구들은 너님의 가을 상태를 많이 모른다 이거죠.


내가 1학년 다니다 군대 갔다 복학한거라 대학가서는 아직 가을을 1번 겪은 거고 이제 다시 가을이 시작되는거지. 1학년 때도 가을은 되게 힘들었어. (대답 좀 구체적으로 해여.) 그 때도 똑같아. 내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라든지 여자문제도 있었고. 그 해 가을 즈음에 내가 되게 좋아하는 애가 있었는데 다음 해 3월에 군대를 가는 상황이었어. 내가 어떻게 해서 잘 됐다 해도 또 문제인거지.얼마 안 되는 시간을 함께하고 바로 군대에 가야하니까.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냥 접었지. 뭐 용기가 없었던 거 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그냥 군대 갔어.


가을이 괴로운 구체적 이유로 열등감을 꼽으셨어여. 여자문제 역시 너님이 가진 열등감 문제에 포함된다고 봐도 될까여?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더 어렸을 땐 열등감에서 비롯됐는데 대학 와서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아. 더 어릴 땐 나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비해 내가 어울리지 않는, 내가 한참 떨어진다는 느낌이었거든. (아 너님은 그녀에게 당치도 않는 존재인 건가여?) 응 그런 느낌이었는데 대학와선 대개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서지. 뭐 열등감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 헤어진 것도 내가 졸라 못났다는 열등감 때문에 헤어졌다기보단 그냥 성격적인 문제도 있고 내가 잘 해주지 못한 것도 있었고.


근데 가을만 되면 감성으로 카톡방을 더럽히시면서 주위사람들은 잘 모르다니여.


내색을 잘 안하려는 편이지. 집에서 가족들한테도 친구들한테도 그런 모습을 보인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요새는 자취를 하고 있으니까 자취방에 동기들도 많이 놀러오는 편이야. 주위에서 자취하는 애도 나밖에 없고 기숙사 살거나 통학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놀러와. 저녁까지 기숙사사는 애들은 통금 전까지 놀면서 같이 밥도 먹고 하다가 늦어도 열한시, 열두시엔 친구들이 가.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놀다 썰물 빠지듯이 싹 나가고 나도 씻고 정리하면 새벽 한 두시야. 특히 새벽 감성이 터지는 그런 시간에 혼자 있으면 너는 통학을 하니까 모를 수도 있지만 혼자 방 안에 불을 끄고 자빠지면 수많은 생각이 들지. 세상에 나 혼자 있다는 그런 느낌. (그게 말로만 듣던 인간의 본원적 외로움인가여?) ...... (뭔지도 모를 생각과 감정이 끼어드는 건가여?) 그게 최근 들어 더 심해진 것 같아.


이제 가을에 초입이지만 걱정스런 맘에 이렇게 인터뷰를 신청하신 건가여?


그런 것도 있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것도 치유, 흔히 하는 말로 힐링의 방법일 수도 있겠고.(친구들 사이에서는 편하게 이야기할 법도 하잖아여.) 나는 이런 말을 남들에게 그닥 말하고 싶진 않아서 속으로 혼자 앓는 편이지. (그럴수록 외로워지진 않을까여.)그런데 내 성격 상 좀 남들 앞에서 내가 이런 상황이라고 말하는 게 내키지도 않고 별로 안 좋은 모습이기도 하고. 보여주기 싫은 모습 중 하나니까. 그러니까 애써 남들한테는 밝은 모습 보여주려고 하지.


그래도 가을의 너님을 아는 친구들이 자살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적어도 그 친구들에겐 스스로 가을남자라고 졸라 내뿜고 사시는 듯?


근데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장난스럽게 하는 거지. (근데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것만 들어도 너님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어여. 오히려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갈 법 하면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하시져. 정말 별거 아닌 게 아니라는 걸 누가 봐도 아는 상황이란 거. 뭔 말인지 아시겠져?) ......


소수의 친구들은 이만큼 알아준다는 건데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구체적인 변화의 노력을 하시나여?


구체적으로는 없는 거 같은데. 그냥 때 되면 흘러가겠지. 다만 뭔가 활동성 있는 걸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관심을 쏟고 있는 게 자전거 타는 거. 자전거 동아리에 가입하면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들이랑 만나게 되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동아리 알아보고 있고. (성교육 시간에 배운 것처럼 청소년기의 성욕을 조절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을 목적으로 활동적 운동을 강조하는 뭐 비슷한 논리네여?) 뭐 다른 쪽으로 생각이 안 들게 하는 면에서. 자전거를 타고 힘드니까 피곤해서 바로 꿀잠자니까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감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1시 ~ 2시쯤을 사라지게 하는 방편일 수도 있지.


군대에서도 힘드셨다고?


군대에서도 똑같아. 거긴 더 폐쇄적인 상황이잖아. 대학교 1학년 때의 연속으로 (아.. 그 여자를 많이 떠올리셨나여?) 많이 떠오르지. 난 확실히 마음을 정리하고 간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훈련할 때 떠오르기도 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삽질하고 있는데 걔는 밖에서 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너님 삽질도 많이 안했잖아여.)


그래서 휴가가서 만남여?


휴가 가서는 단 한 번도 안 만났어. (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론 만나셨나보네여.) 그 뒤론 만났지. 만났는데 그게 나의 큰 실수였던 것 같아. 만났는데 헤어졌어. (?) 헤어졌다고. 내가 그 때 잘 못 생각한 게 전역 후에 나는 아직 1학년의 마음이었는데 상대의 상황은 그게 아니었던 거지. (이런 말씀 드리기 민망하오나 매 번 연애가 짧게 끝이 났잖아여. 본인이 생각하는 큰 원인은? 평행이론처럼 두 연애 비슷하게 쫑났잖아여. 말해봐여.) 그 부분에서는 잘 모르겠어. 내가 잘 못해주는 건지 내가 매력이 없는 건지. 재미도 없고 내 성격이 그렇게 유쾌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그게 바로 열등감 아닙니까!!) 뭐 그럴 수도 있고.


그럼 이 자리에서 당장 말해줄 수 있는 너님의 열등감이 있나여?


내가 항상 생각하는 건 있지. (ㄷㄷ 항상 생각하는 거여? 말해주세여) 너무 마른 거. 올해 추석에도 친척들이 살 좀 쪄야되겠다는 소리 많이 했지. 그건 다른 사람이 봤을 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살아 온 평생 동안 듣고 살아온 내 입장에서는 ‘너는 참 돼지야 살 좀 빼야겠다.’라는 얘기 듣는 거랑 똑같아.


또여.


성격? 유쾌하지 못한 거? (그게 왜여? 별놈 별년 다 있잖아여. 문화적 다양성에 기반해 당신의 성격을 인정해줄 수 없을 만큼 성격이 이상한가여?) 그렇다기 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것과는 다르지. (아 그럼 너님이 욕심나는 성격은?) 내가 자주 말하지만 연예인 중에는 노홍철 같은 캐릭터? 남들을 웃겨줄 수도 있고 스스로도 밝고 긍정적인 그런 이미지. 내 성격이 부정적인 성향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서.


너님 있는 그대로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는 장점은 없나여?


뭐가 있지. 한 번도 그걸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ㅁㅊ) 그냥 차분한 정도? 어디가서 욕 안 먹는 무던하고 무난한 성격? 아 욕은 먹나? (개돼지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튀지 않고 적당한거지. 그니까 친구들한테는 이렇게 개소리도 많이 하지만 모르는 사람한테 그러진 않으니까 어디 가서 손가락질 받을만한 그런 성격이 아닌 게 장점이긴 하지. 물론 방송에서 보여지는 성격이겠지만 노홍철 같은 성격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으니까 그에 비해 내 성격이 장점이긴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성격보다는 오히려 호불호 갈리더라도 즐겁고 유쾌한 성격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한테도 어필할 수도 있고. (이 양반 어필욕도 있으시네.) 남한테 보여 지는 걸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니까.


성격을 바꾸시는 게 쉽지 않겠지만 노력하시나여?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이 뿌려놓은 자신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느낌인가여?) 지금 아예 대학에 처음 온 상황이라면 확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갑자기 미친 것처럼 밝게 다니면 사람들이 ‘뭐지?’ 이럴 거 아냐. (근데 아까 말씀하신 자전거 동아리 같은 새로운 집단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야 말로 너님의 의도대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잖아여.) 나한테 약간 안 맞는 옷처럼 어색한 것 같기도 해.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


공격적인 드립을 난사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시는 방법도 있을텐데여.


내가 센스가 없어서 그런가. (유쾌함을 지향하신다고 해놓고 말투부터 졸라 안유쾌하세여.) 지금은 인터뷰를 하고 있어서 그래.아니 근데 말투는 뭐 어떻게 바꾸라는 건지도 모르겠네. (너님이 원하는 모습을 지닌 주위의 친구들도 있을 거 아녜여.) 어떻게 보면 너도 약간 부러운 면도 있고. 내가 느끼기엔 너가 다른 사람을 되게 편하게 해주는 그런 장점도 있으니까. 뭐 둘이 있어도 어색하지도 않고. 본인 스스로 되게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맥락없이 칭찬해여) 근데 나는 단둘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말거는 것도 잘 못하니까. 차라리 ㅂㅅ소리를 들어도 유쾌한 애들이 있으니까 그런 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


대본 짜오듯이 열등감 중 외면과 내면에서 하나씩 꼽아오셨네여.


진로문제도 있어. 지금 다니는 학교가 내가 원하고 생각하던 학교는 아니니까. 학과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언론 쪽으로 가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점점 관련 없는 것들을 배워가니까 앞으로 뭐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표류하는 느낌? 어떻게 보면 대충 생각 없이 전공계열에 맞춰서 진로를 따라 갈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더 편할 수도 있고. 근데 내가 가진 욕심이 있으니까 현실과 충돌하는 고민이 많아서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휴학하면서 생각도 해보고 싶긴 한데 집에서는 안 그래도 내가 재수했으니까 휴학하는 건 남자나이에 너무 늦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도 하시고.


고민부자시네여. 고민분야에선 열등감이 없으시겠어여. 원래 고민이 많은 성격인가여?


물론 고민해결을 위한 실천의지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저것에 대해 생각이 많은 편이야. (생각이 많은 분들의 허점이 일단 뭐 하나의 생각을 끝내야 비로소...) 그래 끝내야 하는데 생각만 거듭하다가 끝나는 거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끝내기만 하면 실천력이 생기는 경우도 있더라고여.) 하나를 딱 잡고 해야 하는데 이것도 괜찮을 것 같고 이게 더 편할 거 같고 이게 더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고 그러다 결국 생각만하고 끝나는 거지. (하지만 조급할 필요가 없다. 우린 아직 젊기에!) 그건 개소린 것 같아 진짜. 어떻게 보면 가을 타는 것도 유난히 고민이 많은 성격이니까 그런 거 같아. 생각만 많고 그러니까 우울하고 날씨는 좋고.나는 날씨에 대비되게 나는 초라하고. (그래서 가을남자가 되셨군여) 보통 다 그러지 않나?


저도 결국 어느 순간에는 결단을 내려야 미뤄둔 결단이 가져올 수고스러움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여. 결단의 무게는 해를 거듭할수록 무거워지는 것 같거든여.


내가 지금 하는 거랑 내년, 내후년에 하는 건 확실히 다르지. 내 생각도 그래. 내 꿈이랑 현실이랑 충돌하는 건 되게 당연한 것 같아. 내가 지금 배우는 건 이공계고 공통분모가 없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서 굳이 언론사로 도전을 하는 게 참 웃긴 거 같기도 하고. 도전을 하면 되게 내가 실패할 가능성도 많을 것 같고. 그렇다고 도전을 안 하고 현실대로 살아가기엔 후회도 많이 할 것 같고.어릴 때부터 말했던 KBS 사장도 내 꿈이었으니까. 한마디로 도전을 하면 실패할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생기고 도전을 안 하자니 너무 너무 너무, 진짜 너무 아쉬운 거야. 그런 것 때문에 아직 나는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거야.


결국엔 너님이 작정하고 고민의 무게중심을 깨야하지 않나 싶어여. 개인적으로 너님은 졸라 얕긴 하지만 아는 것도 두루두루 많다고 생각해서 저는 꿈 쪽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여. 원하시면 우리 회사에서 심부름부터 하세여. 그나저나 너님 방금 도전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다면서 그 앞에 ‘너무’라는 말을 4번씩이나 가져다 쓰셨음여. 답 안 나옴?

연휴 끝나면 다시 자취방에 들어가실 텐데 약간의 두려움이 있나여?


그냥 싫지. 나는 되게 바쁜 삶을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 잉여처럼 살면 시간이 많으면 생각이 많이 끼어들지. 바쁘고 내가 나름 생산적인 일을 하면 자기 만족감도 있고 뿌듯하기도 하고 뭔가 할 일이 있는 게 좋은 거 같아.


너님 게으르잖아여. 귀찮다는 말도 달고 사시면서.


그렇게 게으르진 않아. 귀찮다는 거랑 게으름이랑 다른 거니까. 게으름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안 하는 거고. 귀찮은 건 안 해도 되는 일을 안 하는 거고.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왜 해. 내가 원하는 바쁨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바쁜 걸 원하는 거지. 귀찮다는 건 그저 내가 하기 싫어하는 거지.


오늘처럼 이렇게 혼자 도는 생각을 뱉어내야 나름대로 정리가 된다고 생각해여.


자주하면 찡찡이니까. (찡찡과 심각한 고민을 구분해줄수 있는 친구들을 마련하셔서.. 뭐 근데 마련하는 방법은 역지사지겠죠.)나도 잘 들어주고 잘 얘기하면 되겠지.


마지막으로 제가 하는 짓에 대해서 칭찬이나 격려, 욕이나 쌍욕 부탁드려여.


좋은 거 같아. 뭐. 욕을 할 순 없잖아. (하셔도 돼여. 욕 하는 사람 많아여. 다 검열에서 잘라버려서 그렇지.) 아니 나는 좋은 거 같아. 니가 나중에 뭐해먹고 살진 모르겠지만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인 것 같아. 누가 대학생활에 굳이 이런 걸 해보겠어. 너가 회사라고 말하면서 떠벌리고 다니는 것도 좋은 것 같아. (그만큼 나에게 진지성을 부여하는 의미에여.) 남이 봤을 땐 장난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너의 꿈에 대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 열심히 하면 더 좋을 거 같아.


저 기자님은 나 졸라 대우해주는 것 봤져? 그나저나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충고 이런 건 없나여? ‘나를 직원으로 써주셨으면 좋겠어여.’하는 이런 애원도 좋아여.


근데 그것도 괜찮은 거 같아. 너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것도. 어쨌든 니가 사장해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뭔 개소리에여. 저는 인턴이에여.) 혼자서 너가 글 쓰고 블로그에 올리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재밌는 콘텐츠를 올려도 좋잖아. 인터뷰 이외에 어떤 주제로 연재를 한다던가, 여행기를 쓴다던가. 한 두 세명에서 하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 함께하면 좋은 방향으로 가는 영감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니가 확고한 기준이 있어서 중심 잡고 잘 이끌어나갈 수 있다면 단순히 페이스 북 페이지나 블로그에 그치는 게 아니고 진짜 회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같이 하다보면 뜻 맞는 사람도 만날 수 있는 거고. 나도 되게 생각 많이 했었어.(저희 회사 들어올 생각이여?) 아니 그거 말고. 그냥 기획, 연재하면 좋겠다.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하실래여? 잘하시는 거 있잖아여 고민하기. 자신의 고민을 한 주 한 주 늘어놓는 거져. 고민 어디까지 해봤니?) ........




f1c67a64c788beeee8b3151bcf56de15.jpg 원빈님은 사계절 남자
배우는 것과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함께 자라나는 것처럼 요즘 나에겐 보이는 것과 느낌이 오는 것 역시 같이 늘어나는 것 같다. 소인이 배움의 근본이 없어 인터뷰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오늘 너에게 들은 물리적인 소리 말고도 채워야 할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 까지는 분명히 알겠다.

이렇게 이전보다 '분위기'라는 말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긴 해도 너가 무심하게 사용했던 정체불명의 어미들도, 아마 생각없이 붙여댔을 ‘그냥 좀’도, 알아듣기 힘들만큼 작았던 네 목소리의 저의까지 캐치하진 못했다. 오늘 나에게도 털어내지 못한 그 무언가를 이번 가을에야말로 스스로 풀어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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