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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일욜의 관광지

5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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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5.


느즈막히 일어나서 슬금슬금 청소를 거든다. 어제는 바다를 바라보고 왼편으로 걸어봤는데 오늘은 오른편으로 다녀올 예정이다. 아무리 끝내주는 뷰라도 매일 보면 금방 질릴 것 같아서 러닝 코스를 2개 만들기로 마음 먹는다. 힘내서 걸으려고 살짝 태운 빵에 얇게 딸기잼을 코팅하고 계란까지 올려서 야무지게 먹고 있는데 무시무시한 미취학아동이 나타난다.


미취학아동에게 오늘 쇠소깍을 갈거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 실수였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안 될 일이긴 한데...) 실수를 만회하려는 조급한 마음에 너는 힘들어서 걷지 못할 거라는 말로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닐텐데 자신은 100km도 거뜬하게 걷는다고 소름끼치도록 당당하게 주장한다. 그런 상황을 안쓰럽게 보던 스탭형이 차타고 나가는 김에 쇠소깍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올 때는 버스를 타고 오면 되겠다 싶어서 좀 덜 무거운 맘으로 게하를 나선다. 작은 손에 손가락을 꽉 잡힌 채.


날짜, 요일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가보니까 확실히 일요일 관광지의 느낌이다.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은 물 색이 확연하게 다르다. 위쪽까지만 해도 청록빛이던 물이 큰 바다로 나가니까 훨씬 더 파아랗게 변한다. 걸을 때마다 발뒤꿈치로 들어오는 까끌까끌한 검은 모래에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물빛이 넘나 신기해서 물가에 다가가 천천히 들여다 보고 왔다. 셀카봉을 들고 인증샷을 남기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어젯밤 이후로 물도 안 닿은 얼굴로 지나다니는 게 뭔가 현지인스러워서 혼자 뿌듯해했다.


가서 한 거라곤 바람 맞으면서 그늘에 누워있던 게 전부지만 6세에 보폭에 맞춰 꽤 걸었더니 무지 피곤하다. 게하로 돌아와 일단 전원을 켜고 나면 이상하게 할 일이 생기는 노트북을 만지작대다가 림트를 만나러 나갔다. 서울에서도 흔하지 않을 법한 조합으로 함께 모여 고기를 먹었다. 무지막지한 두께에서 비롯된 고기의 씹는 맛에 감동을 하면서 부지런히, 그리고 빠르게 먹었다. 가을 제주의 기운을 받아 자소서를 쓰고있는 선물트에게 희움팔찌를 선물받았다. 취업트되면 나도 선물을 해야겠다.


7시만 넘겨도 까매지는 하늘을 보러 옥상에 올라가서 멍하니 있다가 스탭들이랑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간다. 폐기 햄버거 2개에 폐기 1시간 전 김밥 1줄을 덤으로 받았다. 찬기만 가실 정도로 데워진 김밥을 물고 내일부턴 꼭 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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