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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엄마 밥 먹고싶다

6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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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6.


일어나자마자 젖은 땅을 보고 안심했다. 나는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운동을 못 한 거라고 최면을 걸고 다시 잤다. 이번 주부터 교대로 근무를 한다. 수욜, 목욜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내일까지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해야겠다.


우연히 같은 날 제주에 온 ㅇㅅㅇ형이 출장 겸 여행을 마치기 전에 다시 한 번 들르기로 했다. 비 굵기가 친절한 편은 아니었는데 형은 우도에서부터 그 비를 맞으면서 스쿠터를 타고 오신거라... 많이 피곤해보이셨다. 지난 번에 왔을 때 브레이크 타임이라 못 가 본 공새미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원래 첫 줄에 있는 '돼지고기 간장덮밥'이 가장 맛잇어야 하는 건데 애매하게 중간에 있던 '오징어 덮밥'이 더 맛있었다. 나중에 다시와서 추천 메뉴인 보말칼국수를 먹어봐야 알겠지만 음식맛만 보면 블로거가 키운 맛집이 아닐까... 싶다.


손님보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더 많이 모여계신 카페에서 앉아있다왔다. 아마 이 동네 공식 모임장소인 듯 하다. 짠 바람 맞으면서 테라스에 앉아있는데 슬그머니 해가 뜬다. 스쿠터를 끌고 다시 모슬포로 떠나야하는 형은 기뻐했지만 아침에 안 한 운동을 해야하는 나는 사실 슬펐다.


오늘 출시된 스탭 형의 400만원 짜리 NEW 중고차를 타고 홈플러스로 바리깡을 사러 다녀왔다. 커트 한 번에 만 오천원이라는 말을 듣고 겁나서 산 건데 이제 날씨가 덥진 않아서 머리를 잘 안 묶고 다니니까 별 의미 없는 지출일 것 같다는 생각을 침대에 누워서야 해본다. 홈플러스 간 김에 사온 1+1 선크림을 바르고 운동을 하러 나왔다. 해는 떨어지고 비는 올 것 같진 않은 최적의 날씨에 왕복 6km를 헥헥대다 돌아왔다.


습관처럼 옥상 올라가서 한참 누워서 밥은 또 뭐 먹나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치킨에 피자를 먹자고 한다. 이 동네에 피자배달이 안 오는 건 우리집이랑 마찬가지라서 피자를 모시러 또 차를 타고 나왔다. 운전하는 건 넘나 무섭고 귀찮은 일인데 옆에 타고 슝슝 다니는 건 항상 신난다. 금세 피자향이 가득찬 뉴 중고차를 타고 치킨향이 가득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닭날개를 통째로 입에 넣고 뼈 발라내다가 내일은 달리기를 더 힘껏하겠다고 나와 약속했다.


바람은 불지만 오늘따라 너무 습해서 옥상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오늘도 이렇게 저렇게 끼니를 해결했지만 온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엄마 밥을 먹고 싶어서 그게 좀 힘들다. 엄마랑 통화할 땐 말 못 하겠는데 아마 이 유배생활은 밥 때문에 끝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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