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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야매영어

9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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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9.


아이유 노래같은 가인노래를 들으면서 얼큰한 오뎅탕을 먹고 있다. 그 옆엔 참치 한 캔이 들어간 달걀말이도 있는데 무척이나 폭신하고 고소하다. 지금 생각하니 왠지 술안주 같은 이 반찬으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물론 설거지는 내가 한다.


오늘 오시는 게스트들의 이름이 다 영어로 써있 걸 보니 다 중국 분인 거 같다. 또 야매영어를 써야할 듯 하다. "조식을 먹고 나선 설거지를 직접 하셔야 합니다."를 영어로 못해서 몸으로 말해요로 설명했다. 영어는 안 늘고 마임만 늘 것 같다. 설명하고도 뭔가 불안했는데 게스트가 객실에서 컵라면을 잡쉈다. 몰랐다고 발뺌하신다. 노답이다ㅠㅠ 중국어랑 영어로 대본을 써서 읊어드려야겠다.


어제는 하루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내내 앉아만 있었더니 오늘은 좀 걷고 싶어져서 비오는 골목 한 바퀴를 5분만에 돌고 왔다.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온다는데 며칠만 더 오면 제주의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비맞은 돌담과 골목 바닥의 색이 보정한 것처럼 진해지고 비냄새도 스물스물 올라온다. 평소엔 개털같은 머리도 자꾸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뽀송뽀송해져서 개처럼 신난다.


쇼파에 앉아 제니퍼 로렌스의 양다리에 굉장히 분노하며 헝거게임을 보다가 영화 속 주인공은 인생이 몹시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덩달아 피곤해져서 잤다. 빈 도미토리에서 이를 경쾌하게 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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