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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김영갑 갤러리

10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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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30.


제주에 왔다는 ㅎㅇ님을 만나러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보는 탐라국의 모습은... 참 공사장 같다. 사방팔방으로 부지런히 올라가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이쁜데 하나같이 똑같이 생겨서 하나같이... 구려보인다. 성산읍에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까지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갔다. 탐라국 버스의 속도는 '이번 정류장은 ~' 안내방송보다 앞서 가는 것 같다. 약간 어지럽다. 15분 정도 젖은 돌담길을 걸어서 갤러리에 도착했다. 입장료 3000원을 내니까 입장권으로 사진엽서를 준다. 엽서가 입장권이라니이이이 넘나 근사하다. 내년 하늘전 할 때 참고해야겠다.


전시된 사진들이 다들 길쭉길쭉하다. 파노라마 사진기라는 게 있는지 처음 알았는데 여기 있는 사진은 다 파노라마 사진기로 찍은 작품이라고 한다. 사진의 가로비율이 넓어서 안그래도 넓어보이는데 대부분 고지대에서 찍은 것 같은 풍경이라 더욱 확 트여보인다. 계절,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신비한 하늘색도, 널찍한 풍광과 렌즈 사이로 나무랑 억새들이 흔들리는 모습도 모두 작가의 기다림이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절로 고요해진다.


다들 조용히 보는데 우어우어 소리를 내면서 작품들을 보다가 갤러리 내에 걸린 <잃어버린 이어도>라는 글의 일부를 옮겨왔다.


도시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는 나 잘났다고 우쭐대며 목소리를 키우며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지내며 나는 비로소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는 나라고 하는 존재는 아주 작아져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곤충이 되면서, 그들의 삶에 순하게 동화되곤 합니다. 내가 말하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일 뿐입니다. 눈, 비가 쏟아지면 나는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피할 궁리부터 합니다. 한 달씩 계속되는 궂은 날씨나 가뭄에도, 연약한 야생초들은 끄떡없이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더워죽겠다, 꿉꿉해 죽겠다는 타령만 늘어놓습니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바람에도 억새는 몸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강한 바람과 당당히 맞서 언제나 승리합니다.


월요일에 뛰고 나선 매일 비가 내려서 금요일인 오늘이 되어서야 다시 달리기를 했다. 세 번은 왕복해야 1km가 나오던 어두운 골목을 뛰다가 등뒤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올레길을 뛰니까 러닝 기록도 더 좋다. 하지만 지금도 맥주를 마시고 있다. 크으 참으로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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