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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희킷이지 Sep 25. 2015

쓰는 사내

개똥같은 인터뷰 #6

http://youtu.be/0f0lWWXdXs8

BGM은 재주소년의 Sunday.


 “......라는 작품 아니 영화에요.”

당당하게 거짓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회사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아 놓은 나와 다르게 인터뷰이는 자신의 영화를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도 주저했다. 유난히 인터뷰가 길어진 데엔 그의 조심스런 단어선택이 한 몫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커피 두 잔이 놓인 내 어깨만한 테이블에 수염이 잘 자랄 것만 같은 사내 둘이 앉았다. 술잔만 올려놓으면 3초 안에 음담패설을 시작할 비주얼인데 대화 내용만은 어느 테이블보다 소녀 같았다. 둘은 열심히 돌려 말했고 친절히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느라 1시간 같은 2시간을 보내고 왔다.




특이하네여 자기소개서를 돌려 말하기로 써주셨네여여태 만나왔던 인터뷰이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안면은 있었는데 이렇게 초면인 인터뷰이를 만나게 되어 넘 기뻐여!

제가 자기 소개하는 걸 좀 힘들어해서요.


네 그래서 글을 보내주셨더라고요돌려말하셔서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누구신가여 당신은.

한국외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방송영상 공부하고 있어요. 뭐 부산 출신이고, 영화 보는 것 좋아하고 음 그 정도?


오 그럼 방송영상 전공이외에도 학부 내 세부전공이 있나여?

네 언론정보랑 광고홍보, 그리고 방송영상 이렇게 3개 있어요.(올 저희랑 비슷해여.) 

저희는 1학년 때 학부로 시작해서 2학년 때 이렇게 세부전공으로 나눠져요 (본인이 선택해서여?) 예.


자기소개서에서 받았던 느낌은 단 하나였어여실제로 본인이 쓴 ’ 을 보내주셨는데 그 글에 나와 있는 얘기가 다 ’ 에 관한 이야기더라고요다 글이라는 것으로 귀결되더라고요결국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그런 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보내드린 글을 보셨으니 아실 것 같은데 쓰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지금 공부하는 것처럼 영화도 하고 싶긴 한데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쓰는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수시로 대학에 왔는데 성적이 허락하든지 허락하지 않든지 지원하는 모든 대학의 전공을 신방과랑 국문과를 썼어요. 

  

결국 신방과에 온건 제 나름의 타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글로 밥벌어먹긴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절이니까 부모님 앞에서도 글 쓰는 게 꿈이라고 차마 말을 못하겠는 거에요. 가장 영향이 컸던 건 뭔가 쓴다는 행위 자체가 여성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아서였어요. 

  

여튼 제 나름대로 타협을 한 결론이 신방과였고, 고등학교에서 수행평가로 영상 만들고 편집하는 것들을 해봤는데 저랑 잘 맞았어요. 글로는 표현 되지 않는 것들이 또 영상으로는 표현이 되니까 신기하기도 했고요. 이런 면에서 영상을 통해 뭔가를 쓰고 싶은 마음을 해소할 수 있겠다 싶어서 방송영상을 전공하게 됐어요. 근데 군대 가기 전까진 괜히 왔다 싶더라고요. 이 과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았어요. 


군대가기전이라는 말씀은 정확히 언제인가여무슨 계기가 있었나여?

2010년 입학해서 2학년 1학기까지 다녔거든요. 예술영화관이라는 곳을 친구 따라서 처음 갔었어요. 일반 극장에서는 예술 영화는 많이 하지 않고 그래서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를 볼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예술영화관에 가기 시작한 이후부터 영화에 빠져들더라고요. 영화에 빠져들면서 원래 꿈꿔왔던 PD에 대한 생각도 다시 들었어요. 방송국 위계질서가 너무 강하다고도 하고 영화와 다르게 방송에선 PD와 작가가 철저하게 분업돼 있잖아요. 방송은 생각하고 있던 거랑 많이 달랐는데 영화는 그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맘을 가지고 입대를 했고, 군 복무 동안 열망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영화든 글이든 제 생각엔 출발하는 지점은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도 글도 좋은 이야기를 하는 거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영상도 마찬가지구요) 예. 보내드린 글을 쓸 때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음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하면 사람들이 불쌍하거나 되게 막연한 이야기라고 보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글을 쓴다고 했을 때랑 비교해볼 때요.


그 전엔 열심히 살지 않았어요. 대학 오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안됐던 것 같아요. 그건 제 탓도, 아무도 없는 서울에 혼자 와있는 환경적인 탓도 있던 것 같은데 거기다 PD라는 직업을 기대했는데 와서 보니 막상 생각하던 것들과 다르다는 실망도 있었어요. 여튼 그 계기로 영화로도 충분히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 번은 책을 읽었는데 신경숙씨가 어렸을 때 반성문을 썼는데 자기가 쓸 얘기가 많아서 노트의 3분의 2인가를 채웠대요. 선생님한테 드렸더니 선생님이 읽다가 ‘너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 라고 했대요. 그게 신경숙씨 인생에서 처음으로 글을 써도 된다는 식의 타자의 허락이고 인정이었다는 거에요. 그걸 보는데 제가 막 눈물이 나는 거에요. 전 그런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만 알 것 같은 기분이잖아요. 


제 맘 한켠으로는 글을 쓰는 게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남들이 그렇게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계속 감추고 그랬죠. 거기에다 여성적이라는 제 콤플렉스와 관련해서도 계속 감추다가 그 시점으로 ‘아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해도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용기 UP?) 아까 제 소개 할 때도 글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안 했던 건 그런 의식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좀 의외였던 게 글 쓰는 게 여성적이다?’ 저도 주위에 친구들 보면 글 잘 쓰는 친구들은 여자인경우가 많거든요저도 이전까지 생각은 안 해봤지만 말씀하시는 걸 듣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혹시 그렇게 생각을 하신 계기라도 있나요?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했을 때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글 쓰는 게 왜 여성적이냐는 거에요. 글 쓰는 걸 왜 숨기지? 라는 식으로 공감도 못 하고요. 저도 아직까지 왜인지 명확하게 답은 못 내리겠어요. 저는 공군으로 군 생활을 했는데 일과 끝나고 10시부터 12시까지 연등을 했어요. 그 시간에 글을 쓰는데 막 선임들이 지나가면 저도 모르게 쓰고 있다 가리게 되고 뭔가 제 생각을 적어놓은 공책들도 함부로 놔두지 않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실수로 어디 뒀다가 다른 사람한테 전해 받으면 뭔가 치부를 드러낸 느낌이랄까요. 근데 정작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보통 별 느낌 없이 보는 거죠.


지금까지 살면서 지금도 많이 아물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받는 상처 중 하나가 제가 여성적이라는 거에요. 제가 좀 커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정도부터에요. 변성기가 오기 전에는 말투나 목소리가 여성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좀 힘들었거든요. 게임 같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공유하던 것들도 중학교 3학년쯤부터 안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전에는 게임도 하고 축구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안 하고 싶더라고요.


워낙 어렸을 때니까 누군가 좋은 의미로 여성적이다 섬세하다는 칭찬을 해도 스스로 상처로 왜곡해서 해석 할 만큼 억압하고 움츠려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님은 나름대로 속상한 마음에 저를 혼냈어요. ‘왜 그런 소리를 듣냐. 어떻게 해봐라.’라는 식으로요. 거기다 제가 부산출신이라 워낙.. 아시잖아요. 그런 억압들이 기저에 계속 깔려서 지금까지 글 쓰는 게 감성과 연관된다는 그 이유로 숨기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땐 글이 너님에게 입의 역할을 한 게 아닐까여보내준 글에서도 해소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던데여.

고2 때 사춘기를 한 번 더 앓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이전까지는 쓸 기회가 있으면 써왔는데 그 땐 쓸 기회를 만들어서 썼던 것 같아요. 글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맘속에 깔려 있었지만 대회 같은 것도 나가면서 스스로한테 더 당당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고3 때 이런 제 생각을 이질적으로 생각 하지 않고 곁에서 박수 쳐주는 그런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고3 때는 거의 공부를 안 하고 전국단위 백일장 나가고 그랬는데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이 글이란 형태로 풀어진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3때 이전 친구들하고는 관계가 좋지 않았던 건가여아님 그냥 고민이 많아서 힘들었던 건가여혹시 특별한 사건!?

뭐 특별한 사건이랄 건 없었고 저 혼자 힘들어했던 것 같아여.


뭔가 남녀관계 설명하듯이 갑갑하게 말씀하시네여친절하게 설명해줘여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여?

저희학교는 공부를 못하는 학교였는데 제가 그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못하지는 않았어요. 교내에서 20명 정도 모아서 공부시키는 정독실로 보냈는데 저는 정독실이 너무너무 싫었거든요. 그래서 나오고 싶은데 나오질 못하게 하는거에요. 집에서 엄마랑 특히 갈등이...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우울증이었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선 웃고 재밌게 있다가도 어느 순간에 한없이 우울해지고 기복이 되게 심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도 마음이 아픈 건 나름 되게 심각하고 우울했던 일에도 가면을 썼던 그런 느낌 때문이에요. 마음을 드러내고 싶다가도 ‘무슨 고등학생이’ 라는 식으로 주위에선 경미하게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었고요.


그래서 좀 아쉬운 거에요자기 맘을 잘 다독여 줬어야 하는데 못해서?

뭐 나름 그 땐 잘 다독여 줬다고 생각해요. 그 방법 중에 하나가 글을 쓰는 거였고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일에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로 전달방법만 달라진 거라고 생각해여아까 예술영화관 이야기 하셨는데 저 얼마 전에 환경영화제 갔었어여제가 생각하는 그런 예술영화관이 맞나여?

네 거의 배급이 힘든 영화들을 틀어주는 인디스페이스나 씨네큐브 같은..(네 거기서 봤어여)


영화와 글도 관련이 있겠지만 쓰고 싶고찍고 싶고담고 싶은 주제가 따로 있나요그런 건 자연스레 너님의 취미나 관심사로도 연관 될 것 같은 데여?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고 찾아보는 건 ‘계급’. 거창하게 말해 계급이지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있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우월해야한다는 식의 생각이요. 굉장히 사소한 일상에서도 발현되는 것 같고요. 그 계급이라는 게 눈앞에서 완전 체계적으로 재현이 됐던 때가 군대였거든요. 군대얘기를 해보고 싶어요.(말 그대로 계급얘긴데 우리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상황이 군대라는 거죠?) 네.


너님의 군 생활은 어떠셨나요?

재밌게 한 것 같아요. 뭐 후방이었고, 또 공군이었고 집에서도 가까웠고요. 심적으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환경도 아닌데다 일도 행정업무 같은 편한 일을 했어요. (설마 델리스?) 네 델리스(웃음) 그래서인지 다른 부대보다 뭔가 군대에서 요구하는 질서가 저희부대는 되게 약했어요. 예를 들어 6개월 차이 후임한테 다른 누군가가 말을 놓게 해준다던가.. 질서가 좀 무너진 상황이었어요. 그 질서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어쨌든 그 군대라는 곳을 구성하고 있는 근원적인 질서는 계급이니까요. 그게 무너지니까 후임이라도 남자다움이나 물리적인 힘 같은 것들로 재편이 되거나 기존사회에서 체계화되어있던 나이 같은 것들로 새롭게 계급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한 계급체계가 무너지면 다시 새로운 것으로 재정렬되는 반복들이 신기했던 것 같아요.


혹시 보내주신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봤나여그 글을 썼을 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나여?

그냥 생활이 편안하고 안락하면 거기에 적응이 돼서 글을 안 써요. 제가 그쪽을 부럽고 멋있다고 말씀 드렸던 것도 일상에서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계신거잖아요. (부끄부끄여.) 근데 저는 바이올린으로 예를 들자면 연주할 땐 휘몰아치면서 연주하다가 내팽겨 치고 관리도 안 하는 거죠. 줄도 닦아야 좋은 소리가 날 텐데요.


저는 단지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가 엄청나게 끓어 오를 때만 그저 대안 형식으로만 글을 대해온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워요. 쓰고 싶은 글도 잘 쓰고 싶은데 제가 쓸 수 있는 활자가 많지 않으니 글은 안 써지고 그런 맥락에서 제가 보내드린 글에 담은 반성들이 순환하고 있어요. 그 고리를 끊는 게 목표에요. 솔직히 귀찮음과의 싸움이잖아요. 겉으로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제 스스로 노력을 전혀 안했던 것 같아요.


본인이 쓴 글을 주위에 잘 보이진 않으세요?

트위터에 많이 쓰긴 하는데 트위터는 140자니까 글이라고 하기엔... 트위터를 하다 보니 계속 압축해야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긴 호흡으로 쓸 수 있는 글은 못쓰고 호흡이 짧아지는 것 같아요. 이제 길게 잘 안 써지고 일부러 길게 늘여놓으면 마음에 안 들거든요. 결국 제 자신이랑 싸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쓰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이 이제는 영화로 대체됐다고 볼 수 있을까여?

지금은 그 욕구들이 양립했으면 좋겠어요. 이전에는 영화가 글을 아예 대체했다면 이제는 그게 다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를 어떻게 봐야하나여?

대중영화는 투자자들의 입김이 가장 세니까 좀 더 잘 팔려야하는 상품이죠. 그에 반해 예술영화는 말 그대로 예술인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거요. 하지만 그것도 어쨌든 팔려야하니까 고민은 돼죠.


취미나 관심사 있나요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고 싶어요. (ㄷㄷ 오늘은 글이 다네여. 벗어날 수가 없네여) 근데 진짜 민망하네요.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이렇게 해야 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 같아서에요. 군대얘기를 쓰고 싶어서 자료를 모으고 있어요. 기억이 잘 안나잖아요. 왜곡도 되고요.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부터 강제했던 기억들을 되살리는 집중하고 있어요. 그것들을 카테고리화하고 에피소드를 나눠서 정리한 뒤에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죠. 계급으로 인해서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 얼마나 변하고 심지어는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하지만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거잖아요. 대리 체험을 하려면 훈련소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거기부터 시작하려고요. 계속 취재거리를 찾고 있어요.


결국에는 아까 생각하신 영화랑 이어지는 거네요

영화로 먼저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되면 저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쓸 것 같았어요. 보는 사람들도 ‘군대가 뭐 저래.’ 라고 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글로 완전히 구성을 하고 난 뒤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것 나름의 좋은 기능들로 이야기가 잘 전달 됐으면 좋겠어요.


이미 영화는 찍으셨다고 들었는데?

네 단편 단편. 


본인 영화 좀 홍보하시죠

네? (걍 하세여) .... 제목은 너에게 라는 영화고요. 말하고 싶었던 건 두 가지였던 것 같은데 그 두 가지가 잘 섞여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나리오를 썼어요. 애초에 쓴 시나리오로 만든 건 아니에요. 원래 썼던 시나리오가 있었고 그 시나리오로 워크샵 수업에서 당선이 돼서 그걸로 기획준비를 했는데 제작자 선생님이 맘에 안들어 하셔서 다른 걸로 바꿨다가 바꾼 것도 제작자 입장에서 별로 찍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선생님의 입맛까지 고려한다고 썼던 게 영화가 된 거에요. (겁나 바뀌었네여) 그래서 그 때 들었던 생각이 ‘좋은 글은 뭐고 좋은 영화는 뭘까?’ 였어요.


영화는 친구들 사이에서 글을 잘 쓰기로 정평이 나있는 주인공이 백일장 시간에 ‘너’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하는 상황으로 시작을 해요. 근데 아무리해도 안 써지는 거에요. 하루 종일 고민해도 안 써져서 지웠다 썼다 반복하는 주인공과 다르게 친한 친구 한 명은 그냥 대충 쓰고 냈어요. 그 친구는 놀고 싶으니까 주인공을 건드리는데 주인공은 글이 안 써지니까 짜증나고 그러다가 싸워요. 싸우다가 선생님한테 혼나서 둘 다 반성문을 쓰는데 선생님이 갖고 있던 종이가 백일장종이 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그 뒷면에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죠. 그 친구는 반성문도 쓰고 휙 나가는데 주인공은 반성문도 안 써져서 계속 붙잡고 있어요. 결국 선생님이 ‘이제 됐다.’ 하셔서 쓴 것까지 두고 가려는데 친구가 쓴 반성문이 보이잖아요. 친구가 쓴 걸 보니 쉽게 글을 잘 쓴거에요. 마침 백일장 주제는 ‘너’였고 반성문은 ‘너’를 잘 이해해야 쓸 수 있는 글이잖아요. 그 친구는 글에 대한 애정이나 지식이 없는데도 그렇게 잘 쓴 거잖아요 그래서 주인공은 그 친구를 보고 마지막에 집에 가려다 다시 돌아와서 글을 쓰기 시작해요. 그 친구한테 서간체로 글을 쓰기 시작해요. 편지글로. 그래서 제목이 너.에.게.


스포하셨네여보게 하라니까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나여?

제가 틀어야 볼 수 있어요.


앞으로 영화에 담고 싶은 메시지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해주세여.

그냥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해서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고꾸라진 두 시나리오는 제가 담고 싶은 메시지를 감독인 제가 시키는 형식이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싫어하셨던 것 같아요. 지나와서 보니까 제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들 하나하나 자연인격체로서 진행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뭐 영화 밀양을 보더라도 주제를 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겠지만 감독께서 주제의식을 그렇게 신경 쓰신 것 같지는 않아요. 정착을 위해 밀양에 온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흘러가는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나온 거죠. 그런 형식을 원하는데 말이 쉽지 그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어렵고.


마지막 질문은 이거에요제가 하는 이 짓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감사하게도 이전에도 제 몇몇 분의 인터뷰를 보셨다고 하던데여.

어떤 면이 좋았다는 건 제가 지금당장 말하기는 뭐 그렇지만. 지금 그냥 느낀 건 좀 이야기 하면서 편안했어요. 그게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또 관심 있으시니까 이런 일도 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서 열정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에게>

분명히 너는 나에게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을 가진 것 같다며 칭찬해줬는데 부끄럽게도 한 달 만에 개똥같은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매일 아침 머릿속으로는 영화 한 편을 찍을 기세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매일 저녁 스케줄러의 오늘의 할 일 하나조차 지워나가기 어려운 게 내 일상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한 채 하루를 마감할 땐 스스로 혼내고 타이르고 다짐하려고 글을 쓴다. 쓰기위한 시간은 충분히 훌륭한 반성이다.

작년 이맘 때 학교 글쓰기 상담실에 내 글을 들고 찾아갔었다. 내심 기대했지만 칭찬은 하나도 없었다. 상담 선생님이 내가 써 온 세 편의 글들을 뒤집었다. “태희 학생, 솔직히 어떤 글이 그래도 젤 낫다고 생각해요?” 망설임 없이 골랐다. “왜인지 알아요?” 선생님이 물었다. 질문엔 답하라고 이십년 넘게 배웠는데 대답이 안 나왔다. “니 얘기니까. 니가 젤 잘 아는 얘기니까”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나는 나를 팔아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이야기는 훨씬 쉽게 나오더라. 그래서 너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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