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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싱글 부루마블

14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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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4.


실껏 여유 부리다가 느즈막히 아침 청소를 끝냈다. 밤에도 잘 자면서 낮잠은 더 끝내주게 자는 바람에 달리기를 또 못 했다. 불안한 마음에 옥상에서 급하게 스쿼트를 했다. 바람이 하도 많이 불어서 땀 한 방울 안 날 것 같았는데 한 방울 맺히길래 됐다 싶어 그만두고 내려왔다.


하늘은 어제 반짝 기분좋아졌다가 또 우울해졌다. 어디까지 맞춰줘야할지 모르겠다. 태풍이 온다해서 게하의 창문을 다 꼭꼭 닫아놓으니 빈 공간이 더 조용하다. 공교롭게도 연휴와 태풍이 바톤터치하게 된 꼴이라 게스트도 거의 없다. 영화도 살짝 보다 말고, 책도 찔끔 폈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거실 에어컨 위에서 먼지를 먹고 있는 부르마블을 펼쳤다.


뉴욕, 파리와 이웃한 런던 지역의 씨앗증서가 없는 것 빼곤 다 멀쩡한 것 같다. 출발지에 비행기 모양 말을 두 개 세워놓고 게임을 시작했다. 초반 기세는 선을 잡은 내가 좋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열심히 도시를 사들였고 세번째 월급을 받기 전까지 뉴욕과 서울을 포함한 7개 도시를 소유할만큼 승승장구했다. 상대는 콜롬비아 호 말고는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저렴이 도시에 호텔을 몇 개 짓더니 지혼자 무인도에 갇혀버렸다. 턴 부자가 된 나는 신나게 주사위를 굴렸다. 쓸데없이 이럴때만 터지는 더블로 한 턴만에 남의 땅 두 곳을 방문했고 200만원을 잃었다. 돈이 없어서 아끼던 서울까지 매각했는데 호텔 세웠다고 국세청에서 신나게 삥 뜯기고 나니 저절로 파산했다.


마침 거실로 나온 게스트랑 눈이 마주쳤다. 혼자 이러고 있는 게 민망해서 부루마블 싱글 플레이를 황급히 끝냈다.


태풍을 기다리며 호가든 거품이 목까지 차오를만큼 맥주를 마시다가 잤다. 새벽 네시쯤 깨서 화장실에 갔는데 불이 안 켜진다. 난 꿈인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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