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차
2016. 10. 16.
알람을 끈 기억은 없지만 손은 이미 손전화를 쥐고 있다. 다들 연박이라 체크아웃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부지런하게 놀러 나가셨다. 개이득이다. 돌릴 빨래도 없어서 열두시가 안 돼서 청소가 끝났다. 두어 번 해보곤 집안일 별거 아니구나 했는데 매일 이렇게는 못 살겠다.
단편소설이라서 그런지 맥이 뚝뚝 끊기고 잘 안 읽혀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다. 누워서 마음 편하게 보려고 했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앉아서 봤다. 열심히 살아도 행복하기가 지독히도 어려운 주인광의 상황에 화가 나서 낮잠을 잤다.
내일 조식 쥬스를 사왔어야하는데 말하는 걸 까먹었다. 스탭형이 차를 태워준다고 했지만 비가와서 간만에 쉬는 사람 운전시키는 것도 나쁜 일 같기도 하고, 오늘은 비가 와서 운동도 못했으니 걸어서 쥬스를 사러 가기로 한다. 추울까봐 한 손에는 후드를 들고 비올까봐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나왔다. 결국엔 둘 다 짐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6킬로를 걸으려니 엄지발가락이 뻐얼게 진다. 쓰린 걸보니 벌써 까진 것 같다. 낮에는 안보이던 벌레들은 밤이 되니 등장하여 날 공격한다. 매번 열심히 뛰던 익숙한 길인데 어두우니까 굉장히 낯설다. 무서워서 열심히 노래를 꽥꽥 불렀는데 노래 가사를 까먹어서 더 무서워졌다.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안그래도 잔뜩 쪼그라든 심장을 품고 걷고 있는데 갑자기 길에서 냉장고를 만났다. 이 친구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멀리서 보고 더 무서워서 되돌아갈까 몇 번 생각했던 게 창피해서 발로 냉장고님의 복부를 한 번 걷어차고 왔다.
눈에 잠이 올 때까지 열일하다 얼음커피를 마시러 편의점에 갔는데 젠장 다시 1500원으로 올랐다. 이젠 안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