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일차
2016. 10. 22.
지난 주에 게스트 한 분이 주고 간 카스테라를 냉장고에서 꺼내 큼직하게 썰어 먹었다. 입에 한 가득 아침의 냉기가 느껴지지만 위에 발린 시럽이 맛있어서 계속 입술을 핥으면서 기분좋게 버스에 탔다. 단체 손님 중 한 분이 내 슬리퍼를 신고 아침을 먹으러 가는 바람에 슬리퍼를 다시 되찾아오느라 좀 늦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유배지의 출근길은 한산해서 늦지않게 도착했다.
침대시트와 베개피를 벗기며 슬쩍 창가를 보는 여유는 생겼다. 비오는 새연교를 보면서 읊어주신 점심메뉴를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닭칼국수도 있고 보쌈정식도 있고 김치찌개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 중 전화를 받는 음식점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뻐얼건 해장국에 뽀오얀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노동의 참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시간은 30분도 안 되어 끝이 나버렸다.
청소를 하다보면 바삭함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치킨껍질이 발에 자주 밟힌다. 베란다 바닥엔 어제까지 싱싱했을 회도 놓여있다. 음쓰를 만지는 것도 그렇게 유쾌하진 않지만 담배꽁초랑 생리대를 집어다 버릴 땐 자연스레 입이 '으'모양으로 바뀌는 것 같다. 아까 젠틀한 미소를 얹은 인사를 보내면서 체크아웃한 사람들이 방금까지 이 곳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객실 꼴을 보면 "이렇게 보면 세상에 깨끗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라는 팀장님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같이 일 하는 형님이 끝나고 맥주를 한 잔 사주신다고 해서 따라갔다. 공교롭게도 둘 다 어제 치킨을 먹어서 다른 맥주 안주를 찾다가 눈에 보이는 흑돼지 집에 가서 소맥을 마셨다. 아직 제주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일하는 중에도 몇 번씩이나 "예?"라고 되묻는 게 죄송하기만 한데 고기를 원없이 먹여주셨다. 내가 해 본 5만원짜리 일 중에 가장 힘들다고 말씀드렸더니 낼 모레면 휴가에서 돌아오신다는 이모님은 호텔 청소가 끝나면 횟집으로 두 번째 출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꽥.
어제 온 단체손님에 오버부킹까지 겹쳐서 가방 하나 들고 이웃 게하로 와서 누웠다. 유난히 삐그덕 대는 침대가 거슬렸는지 5시를 넘겨서는 30분마다 깬다. 웨스틴 조선에서는 침대가 내 몸을 감싸줬는데 여기 침대는 내 몸을 씹어먹을 것 같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