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차
2016. 10. 24.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사먹으려고 일찍 출발했건만 갑자기 버스가 전기충전을 하러 와서 15분을 날렸다. 억울하게 늦을 것 같아 조마조마해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가 윤기나는 내 오른손을 보더니 뭘 바른 거냐고 물으신다. 어두운 얼굴로 담담하게 휘발유라고 대답해봤더니 아저씨 표정이 안 좋아지시길래 바셀린이라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김밥은 먹지도 못했지만 들고온 칫솔이 가방 속에서 민망해할까봐 이를 한 번 더 닦고 일을 시작했다. 노역 마지막 날, 마음따라 가뿐할 줄 알았던 몸이 굉장히 무겁다. 보통 절반은 청소를 끝내고 12시즈음 점심을 먹는데 1시가 넘어서야 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 점심 메뉴도 해장국이면 어린이 돈까스라도 먹을 참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85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러 갔다. 제주도 물가 너무나 비싸다고 궁시렁대면서 무한리필 라면사리 세 개를 부숴넣었다.
오후 노역도 오전만큼 빠르게 흘러갔고 4시에 빳빳한 오만원 네 장을 받았다. 그제 함께 소맥을 마셨던 형님이 오늘은 용이식당 두루치기에 막걸리를 사주셨다. 유배가 끝나기 전에 꼭 다시 한 번 연락을 드려야겠다. 박제가의 우물론에 따라 빳빳한 오만원들을 들고 오늘 저녁으로 먹을 닭갈비를 포장해왔다. 스탭동생은 이렇게 강제로 요리왕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야구를 하는 날이라 6시부터는 집에 콕 붙어있었는데 경기내용은 가출욕구를 드높인다. 사장님 댁 잉글리쉬 쉽독이 자꾸 다리를 핥아대서 매우 간지러운데 꿋꿋히 참아내면서 기네스 두 캔을 마시고 있다. 내일은 이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