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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백만원 상품권

35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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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5.


침대 옆 커튼에 이불을 겹쳐 널어놓고 잤더니 의도치않게 암막커튼의 효과가 나서 10시간을 넘게 잤다. 옥상에 올라가 엄마한테 전화를 거는데 갑자기 액정에 비가 후두두두둑 떨어져서 다시 내려왔다. 엄마는 김치냉장고를 사야할 것 같다고 백 만원을 요구하시면서 위디스크 백 만 포인트 상품권 사진을 보내셨다. 언제 발행된지 모르는 백 만원 상품권엔 나의 자필서명이 쓰여있었다. bic볼펜인 것 같으니까 아마 군대도 다녀온 뒤일텐데 어쩌자고 무모한 약속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일단 지급 기한이 쓰여있지 않다는 점을 들며 엄마를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늦게 일어났더니 오후가 평소보다 빨리 지난다. 어제까지 한 5일간은 점심, 저녁으로 술을 마셔대서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나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 온다. 누네띠네를 하나 집어먹고는 결심이서서 맥주 한 캔을 경쾌하게 열었다. 맥주를 콸콸 부으니 입안에 남아있던 달달한 과자 부스러기가 깨끗하게 쓸려 목으로 넘어간다. 낮잠기운과 술기운이 겹치면서 빨리 베개에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머리가 많이 무거웠지만 씩씩하게 이겨내고 런닝화를 신었다.


바람이 뚫고 달리느라 안면이 뻑뻑해진다. 알바 핑계로 며칠 안 뛰었더니 3킬로를 넘어서면서 휘청휘청한다. 초반부터 어제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지루한 야구를 보다가 훨씬 더 흥미진진한 요즘 뉴스를 열심히 읽었다.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들이 모두 되살아나서 이 나라를 다 때려부숴주고 사라졌으면 좋겠다. 리셋하고 싶다.


오늘의 저녁 요리는 크으~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자글자글한 국물이 있는 만두전골이다. 술도 안마셨는데 다들 크으 크으 해대서 크으에 더 생동감을 주기 위해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 들고 왔다. 뚝배기가 구멍날 것 처럼 바닥을 긁다가 좀 주저하면서 숟가락을 내려놨다. 오뚜기 사골육수는 국물요리의 치트키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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