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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따뜻한 칸타타

39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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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9.


지난 번 청소노역 덕분에 나흘 연속 근무를 하고 있다. 고작 이틀 더 하는 건데 왜 이리 지루한지 모르겠다. 어차피 근무 날이 아니어도 나는 뒹굴대면서 집에 박혀있을텐데... 낼부터 나가 놀 생각에 몸이 간지럽나보다.


청소를 끝내자마자 누워서 삼시세끼를 봤다. 가만히 누워 세 남자의 냠냠 쩝쩝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려니까 내 뱃속에서는 원망스러운 꾸르르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점심메뉴는 짜장떡볶이란다. 하루사이 냉장고 안에서 딱딱해진 떡을 대강 썰어 물에 담궈놓고나선 건조기에서 이불을 꺼내 개면서 삼시세끼를 마저 봤다. 나머지는 스탭동생의 몫... ㄲㄲㄲ


진한 짜장에 밥까지 비벼먹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스탭누나랑 동생이 놀러가자고 한다. 자연스럽게 반바지를 입는 나를 보더니 둘 다 안 춥겠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때 다시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그대로 서귀포까지 가서 쏘카를 탄다. 며칠 새 차타고 나올 일이 없어서 걸어갈 수 있을만한 거리에서만 하늘을 찍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배경에서 하늘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마냥 설렌다. 주말이라 사람들로 조금 복작복작한 용머리 해안을 지나 송악산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내 맨 다리를 교차해 부지런히 비볐댔다.


눈앞에서 바람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도, 시이익 소리를 내는 억새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방금까지 온장고 깊숙한 곳에 있던 따뜻한 칸타타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 입구부터 이어진 고개를 하나 넘어가니 말타기 체험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지탱하는 삶의 무게가 상당하신 말님의 눈이 많이 슬퍼보인다. 두 번째 언덕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정자까지만 갔다가 다시 되돌아갔다. 이왕 온 거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부지런히 비벼대서 허얘진 내 다리가 불쌍해서 집에 가야겠다. 돌아가서 차를 반납하고 코를 훌쩍이며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얼굴이 자꾸만 방방거려서 빨리 이불 속에 들어가고 싶다.


도착하자마자 사장님 댁에 가서 다리와 날개로만 이루어진 엄청난 닭볶음탕을 먹었다. 말도 안 하고 먹기에 집중하니까 사장님은 너는 말도 안 하고 잘 먹는다고 하셔서 헤헤 한 번 웃고 다시 열심히 먹었다. 내앞에 독보적으로 많이 쌓인 닭뼈를 보고있기 민망해서 슬쩍 한 쪽으로 밀어놓고 미취학 아동과 터닝메카드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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