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차
2016. 10. 30.
원래 계획은 아침 일찍 집을 나와서 도서관에 들러 연체된 책도 반납하고 영화도 한 편 보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심야식당 만화책만 한 권 읽고 나왔다. 백팩에 주머니 가방까지 옆으로 매고 공항 가는 버스를 타니 유배지를 떠나는 기분이 들어서 뭔가 울적하기도 하고 괜히 설레기도 하다.
ㄱㄹㅇ은 오버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40일간의 유배가 나를 적어도 반탐라인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여전히 버스 타는 건 어렵다. 쓸데없는 버스만 오는 정류장에 서있다가 다른 정류장으로 옮겨가자마자 다행스럽게 702번 버스가 온다. 예약한 게스트하우스가 가까운 곽지해변에서 내렸다. 버스 안에서 ㄱㄹㅇ은 일몰을 볼 수 있을까 불안해했는데 내릴 때를 맞춰 해를 둘러싼 하늘이 뻐얼게 지고 있다.
생각보다 훠~얼씬 조용한 길을 지나서 게하에 도착했다. 지난 7월에 오픈을 했다는데... 스탭님들이 상당히 수줍다. 안 그래도 이동네 공기도 조용한데 그들 덕분에 이 게하 안의 분위기는 더더더 조용한 것 같다. 나는 누군지 모르는 유명인들의 사인이 정신없이 붙어있는 밥집에서 강된장쌈정식을 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오늘 먹은 끼니 중 유일하게 쌀이라서 매우 매우 만족스럽다아. 게하로 돌아가는 길에 제주막걸리를 두 병 사들고 간다. 가로등도 없는 동네에 빠르게 어둠이 찬다. 담너머로 막 짖어대는 개소리가 들린다. 걔들도 무서워서 그랬겠지만 그 소리에 쫄아버린 닝겐 둘은 빠르게 걷는다.
그다지 큰 키라고 할 수 없는 나한테도 이 게하의 천장은 너무 낮다. 게다가 2층 침대에 당첨돼서 더욱 천장이 가깝다. 엄청 널찍한 게하에벌써 한 달 넘게 살다보니 이렇게 아기자기한 게하는 무척이나 좁고 갑갑하게 느껴진다. 50평 아파트 살다가 고시원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지만 두 곳 모두 살아본 적은 없다. ㄲㄲㄲ
양파링, 꿀꽈배기에 막걸리 네 병을 비우고 잤다. 내일은 아침부터 한라산에 가야하고 기분 탓인지 머리도 지끈지끈한 것 같지만 넘나 맛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