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팍상한 폭포와 방카 사공의 거친 숨소리

다시 가고 싶은 여행이야기

by 탁 진

며칠씩 연휴가 되어도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는 떠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가끔 이전에 갔던 여행지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 먹은 음식들,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때로는 잊지 못할 특별한 체험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필리핀 팍상한폭포다.

기암절벽 사이로 거센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게곡물을 거슬러 앞에서 끌고 뒤에서는 밀면서 그들은 한 걸음 두 걸음 방카를 밀고 올라갔다. 잠시 배가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뒤에서 여인네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차가운 급물살이 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뒤를 맡은 사공은 배 안으로 넘쳐들어온 물을 퍼내느라 또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를 실은 방카는 점점 뿌옇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90여 미터 높이에서 물이 쏟아지는 폭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두 시간이 넘게 걸려 팍상한 강 하류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숲을 지나고, 마을을 지나면서 그들의 사는 모습을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회색 담벼락에 난 창문 마다 방범을 위해 창살이 쳐져 있고, 거의 쓰러져가는 집 입구에는 거적 같은 걸로 막아놓았다. 간간히 제법 잘 지어진 양식 건물은 아마도 외지인의 집이 아닐까, 아니면 빈부격차가 심한 곳이니까 부자들의 별장이 아닐까...?

분명 고속도로인 듯한데, 거기에서도 느릿느릿한 찌프니가 달리고 있었고, 오토바이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역시나 고속으로 달리기는 힘들어 중간중간 정체 때문에 차가 서기도 했다. 야자수로 뒤덮힌 숲에는 간혹 한글간판이 내걸려 있기도 했다. 바나나농장, 망고, 코코넛농장이라고 씌어진 걸 보니 주인이 한국인인지, 아니면 한국 관광객을 위해 내걸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소릴 게다. 땅값도 비싸지 않을 건데 여기에다 땅이나 좀 사서 야자수나 키워볼까나... 밖을 내다보면서 실 없는 농담들을 했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무더웠다. 에어컨을 틀기는 했지만 바람은 나오는 것 같은데 요란하기만 하고 시원하지는 않았다. 냉매가스가 다 떨어졌나 보았다. 매일 더운 데서 사는 그들이야 상관없었으니, 우리가 하도 덥다고 하니 그저 형식적으로 틀어주었나 보다. 등줄기에서 땀이 찔찔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늘은 특별훈련을 할 거라고 말했다. 폭포에 가면 물을 뒤집어 쓸 테니 갈아입을 옷만 챙겨나오라고 했다. 이건 관광이 아니고 극기훈련의 일환이라고 했다. 두어 달 전이었던가? EBS방송에서 필리핀 방카사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었다. 극한직업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그들의 힘겨운 삶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거기로 간다는 것이었다. 정말 내겐 행운이었다. TV에서 보았던 그 방카를 타고 폭포에 간다니...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가슴에서 퐁퐁 샘물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스타렉스의 좁은 좌석에 앉아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우리는 팍상한 강의 하류에 있는 리조트에 도착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물론 한식으로. 육개장이었던가? 김치와 나물무침 등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밥을 먹었다. 가방이나 소지품들을 락카에 넣고 함께 배를 탈 조를 나누었다. 나는 주장과 대구에서 함께 간 김 코치와 한 조가 되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플라스틱 보호모자를 썼다. 나는 파란 색, 김 코치는 빨간 색... 조끼는 주황색이었다. 슬리퍼가 없는 사람은 아예 맨발로 가도 된다는 말을 했다. 운동화를 신고 갔다가는 홀딱 젖어버리면 큰일이었으니... 얇은 옷가지도 잘 마르지 않는데 하물며 운동화를 물에 젖어버리면 어쩔라나...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슬리퍼를 신었다. 더운 나라에서 맨날 운동화만 신고 다니면 좀 그럴 것 같아서 오기 전에 마트에서 만원 주고 사왔었다. 그게 이렇게 쓰일 줄 몰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내의 잔소리에도 꿋꿋이 사 온 보람이 있었다.

우리는 각 조별로 배에 올라탔다. 카누처럼 길게 생긴 배인데, 통나무의 속을 파내어 만든 배라고 한다. 그들은 그 배를 '방카'라고 불렀다. 맨 앞에, 그리고 맨 뒤에 뱃사공이 각자 하나의 노를 들고 타고 중간에 세명이 차례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가 제일 작은 주장이 앞에 앉고, 내가 중간에, 그리고 김 코치가 내 뒤에 앉았다. 그냥 뱃바닥에 털썩 다리를 쭉 뻗어 앉는 것이었다. 모두들 기대에 부풀면서도 흔들거리는 방카 때문에 기겁을 하기도 했다.

승선이 완료되자 탈탈거리면서 발동선이 다가왔다. 우리 일행이 탄 방카들을 줄로 엮어서 발동선이 앞에서 끌고 갔다. 줄줄이 사탕처럼 강 상류로 길게 한줄로 매달고 가는 것이었다. 아마 계곡 어귀까지 그렇게 끌고 가려는 모양이었다. 배는 강물을 유유히 거슬러 갔다. 강가에는 집들이 있고, 빨래하는 아낙네도 있고, 발가벗고 연방 물속으로 뛰어들며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이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남자도 있었다.

야자나무 숲이 우거진 강변에는 마을이 나타나고, 집들이 서 있고, 하얀 빨래들이 빨랫줄에 널려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그들이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그들의 생업에 이용하던 방카를 관광용으로 용도변경을 한 셈이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뱃사공연합이 있어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관광객을 실는다고 했다. 식당주인의 말에 따르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용료가 너무 비싸 손님이 줄어들자 뱃사공들이 데모를 하여 다시 가격을 내렸다고 한다.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배 하나와 노 만으로 돈을 벌어야 하니 튼튼한 몸이 재산인 사람들...

얼마를 달렸을까? 민가도 보이지 않고 강물의 흐름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더니 발동선이 멈추고 방카들을 매달았던 밧줄을 풀어주었다. 드디어 강 상류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앞뒤에 앉은 뱃사공들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방카는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점점 심하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물살도 점점 세어지고, 좌우로 기우뚱하는 배에 앉아 있으려니 행여나 이러다 빠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아주 잠깐 들기도 했으니... 배가 커다란 나무 그늘에 들어갈 때면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그런데 숲에서는 왜 새소리가 나질 앉는 걸까? 다른 짐승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우리 목소리와 노를 젓는 뱃사공의 거친 숨소리만 콸콸 계곡물을 따라 흘러내렸다.

다른 방카들이 우리를 앞지르고, 또 뒤로 쳐지기도 하며 서로 힘자랑이라도 하는 양, 사공들의 기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났다. 나이 든 사공이 끄는 방카는 커다란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물살을 거슬러올라가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우리 방카를 끄는 사공들은 둘 다 젊어서 그런지 쉽사리 그 난코스를 통과했다. 앞사공이 내려 앞에서 밧줄을 어깨에 메고 끌고, 뒤에서는 좌우균형을 잡으며 힘껏 밀었다. 거센 물살에 혹여라도 배가 뒤집히면 큰일이었다. 만일 홀라당 하면 아!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 누가 우리를 건져줄 것인가... 계곡물은 연방 배 안으로 넘쳐들어오고, 금세라도 뒤집어질 듯이 흔들거리는 배 안에서 우리는 그저 비명만 지를 뿐, 어찌 할 게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스릴을 만끽하고 있었으니... 이미 온몸이 물에 빠진 사공들은 노련하게 우리를 태운 방카를 산으로 끌고, 밀고, 힘들게 몰아가고 있었다.

물이 쏟아지는 바위들은물이끼가 있어 미끄럽다고 한다. 뱃사공들은 맨발로 그 바윗돌을 밟고 밀면서 갈수록 세어지는 계곡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갔다. 정말 힘든 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배를 몰아서 그들은 하루에 얼마나 벌까? 내가 보았던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잘 해야 하루에 두 건을 한다고 했다. 물론 관광객이 있을 때 말이다. 배를 끌고, 밀고 가는 일. 그것도 안전을 책임지면서 온몸으로 거친 물살을 헤치며 가야하는 일. 정말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하는 일이었으니... 그들의 힘겨운 노동에 새삼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거대한 너럭바위에서 잠시 쉬었다가 폭포를 향해 다시 올라갔다. 이미 배 안으로 들어온 물에 아랫도리는 흠뻑 젖어있었다. 병풍처럼 우뚝 서있는 바위들 사이로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우리를 실은 방카는 사공들의 가쁜 숨결과 즐거워서 내지르는지 무서워서 내지르는지 알 수 없는 비명소리와 함께 조금씩 조금씩 폭포를 향해 다가갔다. 몇번의 스릴의 순간이 있고난 후, 갑자기 차가운 물보라가 엄습해왔다. 주위에는 온통 물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얼굴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팍상한 폭포 앞에 도착한 것이다.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세례라니... 높이가 90여 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자연이 만들어낸 웅장한 작품이란다. 우리는 방카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나는 뱃사공공과 함께 한 판 찍고, 함께 도착한 일행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필리핀 뱃사공이 단체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김치... 하나, 둘, 셋!" 한국말로 셧터를 눌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팍상한 폭포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른 배로 갈아타야 했다. 대나무로 만든 뗏목이었는데, 종아리 굵기 정도 될라나... 그런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뗏목에 10여 명이 올라앉았다. 앞에서 뱃사공이 뗏목을 끌고가는데, 얼마가지 않아 뗏목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이었다. 모두들 허억!! 놀랐지만, 어쩌랴.. 이미 허리까지 물속에 잠겨버렸는걸... 정원초과였다. 이건 뗏목을 타고가는건지, 잠수함을 타고가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뗏목 뱃사공은 우리를 끌고 물이 쏟아져내리는 폭포를 향해 갔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물줄기와 엄청난 물벼락소리, 여기저기에서 온몸으로 달려드는 물세례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미 홀딱 젖은 옷은 문제가 아니었다. 머리 위에서, 옆에서, 앞에서 물이 달려들었다. 콧구멍, 귓구멍에도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 손가락으로 구멍이란 건 다 막아야 했다. 그저 입을 벌릴 수가 없었으니 비명도 제대로 질러보지 못했다.

그다지 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왜 그리도 그 물세례를 받는 순간이 길게 느껴지던지... 한바탕 폭포수를 맞고 난 뒤 뗏목은 밖으로 나왔다. 우리 앞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몇명 타지 않아서 폭포 내부에 있는 동굴도 구경했다고 하던데, 우리는 너무 많이 타서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 '악마의 동굴'이라고 하는 그 어두운 동굴에는 불상이 놓여져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쏟아지는 폭포수를 뚫고 들어가 소원을 빌기도 하는 모양이다.

최고의 클라이막스를 체험하고난 뒤, 우리는 다시 방카에 올라타고 하류를 향해 내려갔다. 물길을 따라 빠르게 미끌어져가는 방카. 이젠 힘이 아니라 운전기술이 필요할 것이었다. 앞사공의 노젓기와 다가오는 바윗돌에 대한 발차기의 노련함과 뒷사공의 숙련된 조종이 서로 박자가 맞아야 하는 것이기에. 계곡에서의 레프팅이었다. 이미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으니 물이 넘쳐들어와도 더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뭐, 이까짓 찰랑거리는 물쯤이야... 엄청난 스릴과 공포를 이미 경험한 터라 그랬을까? 우리를 태운 방카는 빠르게 계곡을 미끌어져 내려갔다.

물살이 느려지는 강 상류에 도착하니 발동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어 척의 방카를 매달고 탈탈 경운기엔진소리를 내며 고요한 강물 위를 달려갔다. 긴장감이 풀어진 탓이었을까? 나른함이 몰려왔다. 머리 위에서는 오후의 태양이 서녁으로 지고 있는지 그다지 뜨겁지는 않았다. 강가에서 연방 다이빙을 하던 아이들도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가한 모습으로 낚시를 하는 남자의 담배연기만 강물 위로 흩어졌다.

사공들도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폭포에서 나를 안내하던 뱃사공은 나이가 28세라고 했다. 계곡을 거슬러 온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그들의 몸에는 많은 상처들이 있다고 한다. 막상 그들의 힘겨운 모습을 보고나니 애틋하기도 하고, 가여운 생각도 들어 가진 게 있으면 정말 팁이라도 주고싶었다. 하지만, 처음 배를 탈 때, 리조트주인이 팁은 각자 주지말고 단체로 주라고 해서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니...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는 게 없었다. 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비닐에 담아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체로 주기는 하겠지만 애처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선착장에 도착하면서 그들은 한국말로 "틱 주세요.. 팁 주세요..." 몇번이고 우릴 보고 말했지만 그저 "땡큐!"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우리가 100페소씩 주기로 했으니 받아는 갈 것이다. 그래도 따로 더 주고싶을 만큼 너무나 힘들고 고생이 많았다. 그들의 일상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두 시간 반이 넘게 방카여행을 하고 선착장에 돌아왔다. 우리는 오늘 하루, 심리적 극기훈련을 햇다면, 그들은 매일같이 육체적, 정신적 극기훈련을 하겠지. 아니, 그들에게는 훈련이라는 여유로운 단어가 아니라 생활이라는 현실적, 경제적 단어가 맞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뱃사공의 노고에 고마움을 보내고, 늘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많은 광광객이 찾아와 그들의 삶에 많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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