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을 바라보며...
어둠을 밝히는 달님
주말 저녁, 서울을 다녀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겨울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차갑게 할퀴고 지나간다.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려온다. 곁에서 발을 동동거리던 아내가 먼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더니, "어머, 보름달이네!" 하며 감탄을 자아낸다.
볼일 보러 서울 간 김에 아들 집에 들러 여섯 식구가 아내의 생일파티까지 하고 왔다. 생일이 음력으로 16일이니 지금쯤 거의 보름달이 되었을 밖에... 태어난 지 4개월 된 손녀도 할머니 생신을 축하하느라 식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앉았다기보다 전용의자에 거의 기대었지만, 그래도 축하노래를 부르며 손뼉 칠 때 얌전히 또롱또롱 눈망울을 굴리며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아내는 어여쁜 손녀를 위해 손수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쓴 그림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정말 그림이라도 보이는지 손녀는 아내가 펼쳐 든 그림책을 내내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신기하네~ 아내는 벌써부터 다음 동화책을 구상해야겠다며 신이 났다.
예쁜 손녀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모두 까꿍~~ 까꿍~~ 하며 눈이라도 맞추려고 어린 아기의 눈높이로 몸과 마음이 내려갔다. 그래, 이제 너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구나... 기쁘고 반갑다...
어두운 밤하늘에 둥그렇게 홀로 떠 있는 달님을 보며 지난가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연로하시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떨어진 낙엽처럼 가을바람을 따라 먼 길을 떠나셨다. 비록 몸도 마음도 많이 늙으셔서 자식들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걱정거리만 안겨준다며 늘 중얼거리셨는데...
내가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였을 게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선 것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어딜 가느냐고 물었지만,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머니는 집을 나서기 전에 나를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머리카락도 단정히 빗질을 해 주었다. 나는 어디 좋은 곳에 놀러라도 가는 줄 알고 신이 났다.
어머니와 함께 찾아간 곳은 우리가 사는 동네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집들은 높은 담장과 거대한 철대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어머니가 구멍가게에 들어가 알아낸 집도 이층 집이었다.
어느 집 초인종을 누르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맨 먼저 거실 중간에 놓여있는 가죽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당당하게 들어가던 어머니의 발걸음이 잠시 주춤거렸다.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으니, 그간 외상으로 준 물건값이 너무 밀려 전화로 독촉을 하다가 결국 찾아왔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사장님이 지금 안 계신다며 다음에 오라고 했지만, 우리도 추석을 쇠야 할 거 아니냐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은 기어코 받아가고야 말겠다는 듯이 어머니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항상 부드럽고 조용했던 어머니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낯설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왜 나를 데려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건값 수금하는데 당신을 도울 게 뭐가 있다고 어린 자식을 데려왔을까?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옥신각신하는 대화를 나는 듣고만 있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지만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장은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그는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겨 무섭게 보였다. 더구나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심하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나를 옆에다 끌어 앉혔다.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하며 그간 밀린 물건값을 갚아달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붙어있는 말 그림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내 작은 손이 부서져라 꼭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기억해 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밀린 물건값을 받고 그 집에서 나왔다. 밤이 깊어 골목길은 어둡고 무서웠다. 간혹 뉘 집에서 들려오는지 개 짖는 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의 목덜미를 자꾸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고 바쁘게 걷기만 했다.
어둡고 기나 긴 골목길을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길이 환하게 밝아졌다. 머리 위에서 하얗고 둥그런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하늘에서 노란 알전구처럼 빛나는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잔뜩 굳었던 어머니의 얼굴도 달빛을 받아 뽀얗게 미소를 지었다. 보름달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머니와 아들을 따라오며 밝게 비춰주었다.
그러던 아이가 자라서 어머니의 품을 떠났다. 어두운 밤길도 혼자서 걸어야 했고,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힘들 때마다 그날 손에서 느꼈던 어머니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체온을 생각했다. 하얀 손바닥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 주는 달이 되고, 그 달이 점점 커져서 둥그런 보름달이 되어 자식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포근하고 자상한 얼굴이 되었다.
어머니는 달이 지구를 돌듯이 언제나 주위에서 나를 지켜보며 빛을 밝혀주었다. 하지만, 항상 둥글고 환한 보름달 만은 아니었다. 자식이 힘들고 괴로워할 때는 그믐달처럼 힘이 하나도 없다가도, 희망과 기대에 차서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는 생기에 찬 초승달이 되기도 했다. 지구가 달을 가리 듯이 내 삶의 그림자가 어머니의 얼굴에 드리워진다는 것을 자식을 둔 부모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돌아가시던 순간까지도 자식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저 둥그런 보름달이 되어 이제 할아버지가 된 나를 내려다보며 아직도 걱정하고 있지나 않을는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내리사랑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어머니의 사랑을 숙명처럼 내 자식들에게 내려보내야 하겠지...
어머니는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달님으로 남아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