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눈길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겨진 모습

by 탁 진

잊을 수 없는 눈길



한가한 오후,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열어둔 창을 통해 시원하고 상쾌한 가을바람이 들어왔다. 베란다 창을 내다보았다. 이젠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였다. 뭐 특별한 일이 있어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다들 잘 지내느냐고,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궁금해서 전화 한번 해봤다고 한다. 그러면 나도 그 비슷한 정도의 길이로 대답을 하고 만다.


뭔가 할 말들이 가슴속에 많은 것 같은데 어머니도, 나도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대여섯 마디의 말로써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통화를 끝내고 만다.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는 늘 그런 식이다.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사라진 수화기를 내려다보며 지난날, 나를 바라보고 서 있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면서 처음으로 부모님의 곁을 떠나 객지 생활이란 걸 하게 되었다. 스스로는 이제 스무 살이 된 성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에게는 여전히 어린 자식이었다.


입학을 하기 전에 신촌 일대를 돌아다니며 하숙집을 구했다. 가까운 시장에 가서 책상이며 미니 옷장과 이불을 사서 빈 하숙방에 채워놓고도 어머니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혼자 이런 곳에서 살겠나..."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스무 해를 당신이 손수 지은 밥을 먹이고, 더러워진 옷가지를 빨아 입히고, 행여 도서관에서 늦게라도 오는 날이면 대문 앞을 서성거리며 자식을 기다렸다. 그렇게 키운 아들이 이제 당신 품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살게 되었으니 어찌 걱정스럽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오로지 서울에서 산다는 부푼 기대감 때문에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미처 헤아려보지 못했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을 햇살에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음이 오는 수업시간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힘겹게 수업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고 전해주었다.


부모님은 을지로 5가에 있는 중부시장에 거래처가 있어 가끔 서울에 올라오시곤 했다. 나는 전화 연락을 하고 중부시장으로 나가서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났다. 하숙집 밥은 먹을 만하더냐, 반찬은 어떤 것이 나오느냐, 빨래는 잘해주느냐, 학교는 다닐만하냐, 용돈은 부족하지 않느냐,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냐, 피곤하지는 않느냐는 등등 이렇게 많은 궁금증을 단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별일은 없느냐는 말 한마디 물어보는 걸로 대신했다. 평소 말수가 적은 나 역시도 괜찮다는 대답이 고작이었다. 어머니는 그 짧은 자식의 대답 속에서 당신의 궁금함을 다 풀었을까?


부모님과 함께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어머니는 혼자 가겠다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석양에 물든 거리에는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고, 퇴근을 하는 차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버스정류장까지 오는 내내 나도 어머니도 말이 없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며 걸었다. 어쩌다 자전거나 짐을 싣고 가는 리어카를 만나서 두 사람의 간격이 벌어졌다가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내가 아니고 언제나 어머니였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정류장까지 걸었다.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번호판을 보느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버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내가 다시 고개를 되돌렸을 때마다 어머니와 눈길이 마주치곤 했다. 어머니는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내가 탈 버스가 왔다.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달려갔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가라고 했다. 나는 조심해서 내려가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만 달삭거리다가 결국 "내 간다......"라고 내뱉듯이 말하고는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는 내가 타고도 금세 출발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서서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망부석처럼 꼼짝 않고 서서 내가 탄 버스를 바라보고 있는 키 작은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버스를 탄 것을 알고도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어서 돌아가라고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우두커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염없이 내가 탄 버스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괜히 가슴 한구석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길은 버스에 타고 있는 당신의 아들 모습을 찾느라고 열심히 차창을 더듬고 있었다.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던 저녁 어스름이 내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더니 결국 내 목울대를 뜨겁게 만들고야 말았다. 나는 버스가 어서 떠나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버스는 어머니의 간절한 눈길에 사로잡힌 듯이 꼼짝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먼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나는 버스에 실려 그 자리를 떠났다. 버스정류장에서 조그맣게 멀어져 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버스 안에 탄 자식을 찾던 그 눈길이 평생 내 가슴에 화인으로 찍혀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다시 또 전화를 할 게다. 이제 내 머리 위에도 그때의 어머니처럼 흰 눈이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나는 걱정스러운 아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내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피터팬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보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 가을날의 버스정류장에 서서 나를 태우고 떠나는 버스를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서 있다. 어두워져 가는 저녁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도록, 얼굴에 깊이 주름살이 지도록, 허리가 구부정해지도록 어머니는 평생 그렇게 나를 말없이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자식을 향한 짝사랑의 눈길로 말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머니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손에 들려진 수화기가 마치 애타게 자식의 모습을 찾던 어머니의 눈길처럼 여겨져서 차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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