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머리를 깎으며...

by 탁 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며칠을 벼르다가 드디어 오늘 머리를 깎았다. 네거리 건너 단골 미장원은 늘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서 무작정 가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여자들이 주 고객인 미장원이라 파마니 염색이니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가 않으니...


오늘 오후에 비 소식도 있다 하니, 서둘러 미장원으로 갔다. 비가 오는 날에는 아마도 여자들이 머리를 잘하지 않을 거 같아서...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그다지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내 차례가 돌아왔다.


미용사는 전기 커터기를 몇 번 윙윙하고, 가위와 빗으로 째깍째깍 거의 10여 분 만에 내 머리카락을 말끔히 정리해버렸다.


기다린 시간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만에 끝이 나 버렸다. 하긴 뭐 그다지 오래 자르고 깎고 할 만큼 내 머리카락이 풍성하지도 않으니... 나이가 들어감에 머리숱도 적어지고, 그마저

굵기도 가늘어졌는지, 행여 바람에 날려갈까 겁이나 머리통에 착 달라붙는 꼴이라니...


한때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많아져서 염색도 했다. 새까만 머리카락 덕분에 젊어 보인다는 말도 듣긴 했지만, 염색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염색약 사다가 집에서 하면 서너 번은 더 할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 한동안 집에서 염색을 했다.


물론 아내가 해주었다. 가끔 딸도 해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귀찮아하더니, 오히려 안 하는 게 보기 좋다는 말로 몇 번 거르더니 이젠 나도 염색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 생긴 대로 살지, 뭐... 젊어 보인다고 마누라 놔두고 새장가갈 것도 아니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는 값은 이발소보다 싸다. 물론 이발소처럼 머리 감겨주는 일은 없다. 귓구멍도 후벼주고, 콧구멍 털도 가위로 잘라주는 일도 없다. 뜨거운 물수건을 얼굴에 덮어서 수염이나 얼굴에 난 잡털을 제거해주는 것도 없다. 그런 것은 이발소에서나 해준다. 그래서 미장원이 더 쌀 수밖에...


청춘시절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이발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분위기가 좀 묘한 느낌이었지만, 머리 깎으러 왔는데 뭐 비싸 봐야 얼마나 하겠어... 자리에 앉았다. 인상 좋게

보이는 아저씨가 나의 머리카락을 열심히 깎고는 이발의자를 뒤로 젖히고 얼굴에다 뜨거운 물수건을 덮어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음, 면도해주려나 보다... 눈 감고 느긋하게 있는데, 날씬한 아가씨가 오더니 얼굴 면도를 하고는 나의 손톱도 잘라주고, 귓구멍도 후벼주고, 팔도 주무르고, 다리도,,,, 난생처음

마사지란 걸 받아보았다. 본의 아니게 말이다...


시원하고 좋기는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쌓여갔으니... 이런 건 계산에 없었는데, 단지 머리만 깎으러 왔는데, 아... 대체 이건 얼마짜린 거야...? 말로만 듣던

퇴폐이발소인가? 젠장, 어째 분위기가 거시기하더라니... 이걸 어쩐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발소에 들어갈 때는 먼저 안의 분위기부터 힐끔힐끔 살피게 되었다. 그날의 엄청난 이발요금을 경험한 뒤로 말이다...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니 저마다 이발소를 고집하는 이도 있고, 나처럼 미장원만 가는 이도 있다. 처음에는 여자들 사이에 끼어 차례를 기다리는 게 어색했지만, 이제는 대수롭지 않다.


요즘은 남자 전용 미장원도 있다고 하니... 젊은이들은 나처럼 미장원을 많이 간다고들 한다...


덥수룩하게 귀나 뒷덜미를 덮던 긴 머리카락이 짧게 잘리면, 뭔가 시원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 머리에 쌓였던 온갖 잡생각들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고, 어깨 위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들이 미장원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거 같다. 머리카락을 다 깎고 나서 헤어드라이어로 훌훌 털어 내고 나면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미장원 문 밖을 나서는데 한줄기 싸늘한 바람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길지도 않은 나의 머리카락을 헤집어놓고는, "에잉, 마수거리다~~~"하며 멀리 달아난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정리하다가 문득 독사의 날카로운 눈매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의 쓰라린 순간이 기억 속에서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학생주임의 별명은 독사였다. 눈이 양옆으로 좍 찢어진 것이 꼭 독사의 눈, 그것이었다. 독사 옆을 지나갈 때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몸이 벌벌 저 혼자 떨렸다.


대부분 학생주임은 못되게 보이거나 무섭게 생긴 선생님이 맡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독사의 눈에 딱 걸리는 날은 작살나느니, 뼈도 못 추리게 된다느니, 공포스러운 말들이 돌아다녔다.


독사의 뒷주머니에는 항상 바리깡이 들어 있었다. 어느 때든, 머리 긴 학생이 독사의 눈초리에 걸리게 되면, 즉석에서 고속도로 공사가 벌어졌다.


순진하고 착하디 착한 내가 이런 무시무시한 독사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머리 깎아야지 하며 그냥 잔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평소보다 길어진 앞 머리카락과 옆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최대한 모자를 눌러썼지만, 기분이 찜찜했다.


멀리서 교문을 바라보니, 독사가 학생들을 몇몇 잡아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있었다. 분명 복장 불량으로 걸린 학생들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복장상태를 훑어보았다. 별 탈은 없었다. 신경 쓰이는 머리카락만 빼고는...


평소 화장실 뒤에서 담배 피우는, 소위 불량학생들은 아예 정문을 포기하고 학교 담장을 따라 뒤로 돌아갔다.


그들은 머리뿐만 아니라 바지도 복장 불량이었다. 소위 당고 바지란 걸 입고 있었다. 위는 헐렁하고 바짓단은 좁았다. 모자도 아예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문제아로 통하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월담하여 학교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머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들처럼 월담을 할 수는 없었다. 다시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교문 안에서 독사가 들어오는 학생들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독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당당히 어깨 펴고 눈을 부릅떠 정면을 주시하며 걸어 들어갔다.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일단 독사 앞을 무사히 통과했다.


'후유~~ 살았다...'


무사히 통과했다며 긴 한숨을 내쉬는데 뒤통수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독사의 일갈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잠깐만, 너!"


나는 가슴이 뜨끔했지만, 설마 아니겠지 하며

계속 걸어갔다. 다시 한번 천둥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너 임마! 거기 안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저절로 발바닥이 땅에 들러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살며시 고개를 돌려 독사를 쳐다보았다. 독사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온몸을 타고 번개 같은 고압전류가 '찌릿!!'하고 관통했다.


독사는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죽었다. 나는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그의 앞으로 주춤주춤 걸어갔다.


역시 독사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깊이 눌러쓴 모자는 독사의 손아귀에 잡아채였다. 그리고, 나의 긴 앞 머리가 드러났다. 독사의 매서운 손이 나의 볼때기를 잡아 비틀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없이 말이다. 독사는 살기 어린 눈초리와 함께 슬며시 입꼬리를 위로 서서히 올렸다.


"너 왜 걸렸다고 생각하나?"


낮고 느글거리는 음성이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아~~, 신음소리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의 머리를 가리키며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 안간힘을 썼다.


"음.. 너의 죄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구나..."


독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더니, 무시무시한 바리깡을 꺼내

들었다. 바리깡의 금속면이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서서히 나의 앞머리로 다가온 바리깡은 째깍째깍 경쾌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갔다.


나는 머리 위가 허전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쌀쌀한 아침 바람이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를 타고 씽씽 서늘하게 지나갔다.


나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아, 삼손이 머리카락을 잃고 힘이 없었다고 하더니, 나도 머리카락이 없어서인지 힘이 쫙 빠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깎으려면 점심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수업시간마다 들어오는 선생님들에게 알밤을 얻어먹었다. 진즉에 깎고 다니지, 게기다가 잘됐다는 말과 함께...


앞 머리카락이 머리 바닥까지 잘렸으니, 백구 외에는 도저히 머리를 살릴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내 이발소에서 백구를 쳤다.


백구... 완전 빡빡머리... 머리카락이 거의 없어서, 멀리서 보면 완전 하얀 배구공

그것이었다. 아, 슬퍼라~~~


그밖에도 독사는 나를 비롯한 뭇 학생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 독사 선생님만큼은 생각이 나곤 한다. 왜냐하면, 내 기억 속에다 아주 쓰라린 고통과 인내를 가르쳐준 스승이니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이발소 벽에는 이런 문구가 항상 걸려있었다.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요즘 시대에 그 독사 선생님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


독사가 바리깡을 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보며 웃는다...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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