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전화와 매미

세월을 건너온 친구의 목소리...

by 탁 진

반가운 전화와 매미



지난여름, 아주 무더웠던 날 매미는 많이도 울어댔다.


장마라고 하는데 비는 오지 않고 연일 푹푹 무더위만 찌고 있었다. 등줄기로 굵은 땀방울이 장맛비를 대신해 쏟아져 내렸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와 입 안에 하나씩 넣고 우두득우두득 깨물어보아도 그때뿐 이내 후텁지근한 열기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책상 위에 놓아둔 핸드폰 벨소리가 짜증스럽게 울렸다. 도심의 곳곳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 같았다. 거리에서 밤낮, 계절 구분도 없이 울어대는 핸드폰이 때로는 반가움보다는 소음을 발생시키는 해충이 되기도 한다.


거의 30여 년 만에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그의 굵직한 목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낯선 말투와 음성. 대학 동창이었다. 내가 군에 가기 전, 3년 동안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같은 과 친구였다. 그렇다고 동향이나 고교 동창처럼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저 보통의 과 친구처럼 지냈다.


내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해온 걸까? 어떻게 지내느냐, 아이는 몇이냐, 무슨 일 하느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일상에 대해 서로 안부를 물었다.


사자머리, 약간은 비만했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기도 A시에 살았던 게 생각났다. 학교 다닐 때 구내식당에서 함께 라면을 사 먹기도 했고, 언젠가 미팅 자리에도 같이 나간 적도 있었다. 그저 그런 정도의 친구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수없이 사라진 이름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뜻밖의 전화 연락을 해온 그가 반갑고 기분이 괜스레 그때로 돌아가는 것처럼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옛날이야기하며 웃다가 자기 아들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에 모 지역신문사에 수습사원으로 들어갔는데, 정식사원으로 승급하려면 그 지방 경제지를 100부 구독을 해야 한다고, 자기도 받아보는데 참 괜찮더라고, 한 달에 얼마인데 하면서 자식 때문에 속이 상한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상쾌하고 즐거웠던 머리가 뜨거워졌다.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수화기 너머에서 맴맴 거리는 매미소리만 들려왔다.


그랬구나... 몇 년 전, 동문회로부터 대학동 문록을 받았다. 거기에는 나의 신상정보가 적혀 있었다. 전화번호, 주소 등등... 이 친구가 어떻게 내 핸드폰 번호를 알았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30여 년 만에 걸려온 전화가 반가움보다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무더위로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던 매미 울음소리가 다시 창 너머로 점점 크게 들려왔다. 어쩌면 계속 울어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갑게 들려온 옛 친구의 목소리에 묻혀 미처 들리지 않았을 뿐...


당황스러워 어물쩡거리는 내 반응에 친구는 다음에 또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금 옛날로 사라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창 밖에서는 매미가 더욱 짜증스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걸까? 시원했던 비가 그치고 그 보다 더 습한 무더위가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차라리 날이 시원한 가을에 연락을 해왔더라면, 다음번 통화에서 아들 이야기를 했더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살다 보면 체면이고 염치고 가릴 처지가 아닐 경우도 많겠지. 어쩌면 나도 그런 전화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어색해하며 전화를 끊은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차분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내 전화번호를 그리 쉽사리 누르지도 않았을 텐데...


염천을 달구는 매미 울음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더웠다. 땀에 젖은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시원하게 찬물이나 한 바가지 끼얹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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