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아침의 모습...
추억의 만원버스에서는...
우리 집에서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10 여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잘 안된다.
"학교 안 가나!!!" 엄마의 벼락 같은 소리에 후다닥 일어나 대충 세수하고 싸 놓은 도시락을 급히 가방에 챙겨넣고는 대문을 박차고 달려 나간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시피 걷는다. 거리에는 나 말고도 나처럼 급한 걸음들이 분주하다. 이미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에 출근하는 어른들도 몇몇 보이지만 대부분 학생들이다.
새하얀 칼라가 눈부신 여학생들도 보인다. 나는 모자를 가방안에 쑤셔 넣는다. 버스를 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운동화 끝으로 땅을 툭툭 차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아본다.
멀리서 버스 한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잔득 몸을 도사리며 긴장에 휩싸인다. 서서히 버스가 무거운 몸을 헉헉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버스의 앞유리창 상단에 붙어있는 번호판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탈 버스다. 나 말고도 저 버스를 타야할 학생들은 몸을 움찔거리며 다리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 중의 한 무리가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버스는 버스정류장 표지판을 훨씬 지나쳐 급정거를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바빠진다. 버스 안내양이 잽싸게 뛰어내려 사람들을 내리고 있다.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버스를 향해 돌진한다. 이미 버스는 만원인 상태다. 그래서 운전 기사는 더 이상 승객을 태울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멀찌기 차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저 버스를 놓치면 지각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을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만들고 만다.
순식간에 버스 승강구에 학생들이 매달린다. 나도 젖먹던 힘까지 내어 버스를 타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버스는 부릉 부릉 출발을 하려고 위협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차안에 발이라도 한짝 들여 놓으려고 애를 쓴다.
안내양이 승강구에 매달리는 학생들을 밀쳐내고 있다. 그러나 한창 팔팔한 10대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마구잡이로 밀고 올라오는 학생들을 떨쳐 버릴 수 있는 묘책을 안내양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미 터득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매달리는 학생들의 모자를 벗겨 밖으로 던지는 것이다. 참으로 치사한 방법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자를 길 가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눈물을 머금고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고 모자를 주우러 가야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나는 벌써 대책을 세우고 달려들었으니 모자 벗겨질 염려는 없다. 버스는 출발을 하기 시작한다.
악착스럽지 못한 여학생들은 야속하게 자기를 버려두고 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울상을 짓고 있다. 두어 명의 학생들을 매단채 안내양은 버스의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며 오라이를 외친다.
연약해 보이는 안내양이 그 순간 만큼은 원더우먼이 된다. 가느다란 팔뚝의 안내양은 어디서 힘이 나는지 온 몸으로 학생들을 차 안으로 밀어넣는다. 간신히 승강구 턱을 밟고 올라선 나도 씩씩한 안내양의 몸에 떠밀려 버스 안으로 밀려 올라간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조금씩 조금씩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엄마한테서 젖 한모금만 덜 먹었더라면 아마 버스를 타지 못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모유의 성능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힘없이 떨어져나간 학생들은 틀림없이 분유 먹고 자랐을 꺼야...
어디선가 시큼한 김치냄새가 난다. 내 것인가? 아닐 거야. 아침에 도시락을 가방에 넣을 때 김치냄새는 나지 않았으니. 누군가의 가방안에서 도시락이 넘어졌나 보다. 반찬통에서 김치국물이라도 새어 나왓나 보다.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 화장품 냄새도 난다. 어느 여학생의 몸에서 나는걸까? 바로 옆의 키가 작달막한 여학생의 얼굴에서 나는 걸까? 힐끗 얼굴을 쳐다 본다. 화장할 얼굴은 못 되어 보이는데... 하긴 못 생겼다고 화장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근데 학생이 화장은 무슨 화장?
버스는 정류장을 출발한 다음 두세 번 심하게 몸을 떤다. 그 좌우의 요동으로 인해 차 안의 사람들은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들 처럼 차곡차곡 세워진다. 그러고나니 한결 복잡함이 줄어든다. 역시나 운전기사도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하여튼, 대단했다.
나는 다시 조금씩 움직여 좌석이 있는 쪽으로 나아간다. 팔에 매달려 있는 가방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까지 가려면 40여분이 걸리는데 그 무거운 가방을 내내 들고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마침내 머리를 양쪽으로 따아내린 여학생이 앉은 자리옆으로 가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모범생인가 보다. 그 복잡하고 땀냄새, 김치냄새, 온갖 희한하고 야릇한 냄새들이 진동하는 차안에서 영어단어장을 들고 공부를 하고 있다. 그 여학생의 무릎 위에는 벌써 두 개의 가방이 올려져 있다. 그렇지만 내 가방 하나는 더 올라가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가방을 받아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의 가방을 보고도 모른채하며 단어장만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웬만하면 그냥 들고 가겠는데 오늘은 체육복까지 들어 있어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나는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흔들며 가방을 그녀의 몸에 한번씩 부딪쳐 보았지만 그녀는 끝내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거 하나 더 받아도 되겠구만...
몇번을 더 시도하다가 나는 드디어 모종의 결심을 한다. "감사합니다!" 나는 나의 무거운 가방을 슬쩍 그녀의 무릎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어 창밖을 내다보는 척을 한다.
곁눈길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본다. 조금 일그러지던 눈꼬리가 나를 쳐다 보더니 이내 포기를 했는지 다시 단어장으로 내려간다. 그렇지, 공부만 잘하면 뭐해? 사람이 착한일을 많이 해야지. 그래야 범생이지...
버스는 학교앞에 도착할때마다 학생들을 한무더기씩 토해낸다. 갈수록 버스 안은 여유가 생긴다.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있다. 범생인 그녀의 무릎위에도 이제 그녀의 가방과 나의 가방만이 남아 있다. 가슴에 달린 뱃지를 보니 나보다 나중에 내릴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회수권 한 장을 꺼낸다. 조금 삐뚤하게 잘려진 회수권은 전날 밤에 자를 대고 칼로 정성스럽게 자른 것이다. 회수권 자르는데 뭔 정성까지 들여가며 자르냐고? 다 이유가 있다. 열 장 짜리 회수권을 열한 장이 나오게 자르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안내양이 눈치채지 않도록...
다들 그렇게 잘라서 쓰더라. 나도 친구한테서 배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양심을 속이는 짓을 가르쳐준 그 친구가 별로 좋은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역시 친구가 중요하기는 하다.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여학생에게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하고는 나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출구로 가서 안내양에게 회수권을 내밀었다.
회수권을 받아든 안내양은 회수권을 보더니 으심이 가득찬 눈초리로 나를 한번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뭐가 잘못되었나요?' 나는 당당하게 같이 마주 보았다. 이때 주눅이 들어서 눈을 피한다든지, 더듬거린다든지 하면 얄짤없이 노련한 안내양에게 걸리고 만다. 일전에 한놈이 걸려 여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약하지롱? 이렇게 나는 절약을 한다. 절약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돈없는 학생이 알뜰하게 살면 그것이 절약이 아닌가?
내가 내리는 정류장에서는 여학생들도 몇몇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학교와 가까이 여학교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옆에도 한 여학생이 서서 버스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쓰고 팔에 걸려고 나의 가방을 들어 올린다. 그런데 왠지 아까 보다 더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아니, 왜 이리 무겁지? 잘 안 들리네. 나는 좀 더 힘을 주어 가방을 들어올리는 순간, 외마디 비명같이 날카로운 소프라노 음성이 들려온다.
"어멋! 지금 뭐 하는 거야?"
나의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 여학생의 얼굴을 보니 벌겋게 홍당무가 되어 있다. 왜 그러지? 그녀의 눈길은 아랫쪽을 향해 있다. 나는 가방을 팔에 걸며 역시 아랫쪽을 본다.
이게 뭔가? 나의 가방 고리에 그 여학생의 치맛자락이 걸려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당황했다. 나는 허겁지겁 가방 고리에서 치맛자락을 빼려고 손을 써 보았지만 쉽게 빠지지 않는다. 뒤에서는 남학생들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고있다. 그녀는 내게 눈을 짝 째려보이고는 표독스런 얼굴을 하며 나의 가방을 팔에서 끌어내리더니 자기가 치맛자락을 서둘러 푸느라 정신이 없다. 이거 본의 아니게, 우짜노...
"미안합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 한마디 했지만 그녀는 "흥!"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자기 학교쪽으로 달려가 버린다. 하긴 얼마나 쪽 팔렸을까.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튼튼한 무다리를 내보였으니... 미안하기가 그지 없노라...
나도 버스에서 내려 교복 단추를 확인하고 후크를 잠그고 모자를 고쳐 쓴다. 오늘도 지옥 같은 만원버스에서 무사히 해방되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새삼 다시 느끼며 나는 학교로 간다...
오늘날은 버스를 탈 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예전의 그 무지막지한 선착순은 없어진지 오래다.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지금은 질서를 지키는 게 당연한 일이다. 버스 안내양도 없고, 회수권이나 토큰도 사라진지도 오래 되었고, 스마트폰이나 신용카드가 든 지갑, 교통카드를 승하차단말기에 '삑!'하고간편하게 탄다.
버스 보다는 지하철이 오히려 더 복잡하다. 예전의 그 만원버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을 하니 필사적으로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승차장을 울려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열차에 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를 위해 푸시맨이 그의 등을 밀어대기도 한다.
겨우 승차에 성공을 하더라도 전투는 끈난 게 아니다. 한 뼘의 빈 공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아니 온몸이 앞뒤, 옆 사람들과 밀착되어 숨쉬기도 어력게 출근, 등교해야 하는 모습은 더 어렵고 힘들어진 거 같다.
갑갑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작은 행동 하나가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하고, 마음 나쁜 이들로 인해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온몸에 센서를 부착한 장갑차처럼 가까이 다가서는 옆사람에게 경계의 총부리를 들이대고, 혹여라도 한 치의 수상한 행동이라도 보이면 즉각 발포할 것 같이 긴장된 마음을 떨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사람들 간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사회적 거리가 줄어들 수록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점점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