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의 계절

거친 파도를 넘어서...

by 탁 진
파도치는 감포해변에 갈매기들이 줄지어 앉은 풍경.jpeg




과메기의 계절



찬바람이 불어오면, 자연스레 내 입 안을 뱅뱅 돌아다니는 음식이 생각난다. 볶고, 지지고, 불에 익히지도 않고, 맛을 돋구어주는 조미료를 쓰지 않으니 굳이 음식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래도 먹는 것이니 음식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쯤이면 꾸덕꾸덕 미처 다 마르지 못한 듯한 생선이 시장에 나온다. 이 시기에만 먹어볼 수 있으니 계절음식이라고 하겠다.


내가 이 비릿하고 쫄깃한 맛이 나는 과메기를 처음 먹어본 것은 나이가 그럭저럭 들었을 때였다. 익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처럼 완전히 날 것도 아니었다. 물고기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식당 테이블에 놓인 과메기를 바라보며 망설이고 있는데, 함께 술을 먹던 이가 맛있다며 무조건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용기를 내어 마른 김에 쌈을 싸서 입에 넣었다. 약간은 쫄깃쫄깃한 느낌과 비릿한 냄새는 씹을수록 입맛을 당기게 하였다. 소주를 곁들여 먹으니 감칠맛이 입 안을 뱅뱅 돌아다녔다.


그후로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과메기가 미역을 휘감고 나를 보며 요동을 쳤다. 나도 모르게 입 안에는 군침이 돌았다.


과메기는 겨울철 동해안에서 생산된다. 청어나 꽁치의 눈에다 꼬챙이를 꽂아서 바닷바람이 부는 덕장에 널어놓는다. 밤이 되면 육지에서 부는 찬바람이 꽁치의 푸른 등을 더욱더 시퍼렇게 꽁꽁 얼려버린다. 해가 뜨면 훈훈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잔뜩 얼었던 몸뚱이를 어루만져 사르르 녹인다. 이렇게 며칠 동안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과메기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바닷바람과 햇빛에 시달려 껍데기는 비록 거칠고 쭈글쭈글해져 보기 흉해도 모진 풍파를 견뎌낸 과메기의 속살은 바닷속을 누비고 다닐 때보다 더 풍부한 영양가와 맛을 지니게 된다. 매서운 북풍한설 속에서 피어난 매화처럼 깊고 그윽한 맛을 만들어낸다.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얼굴처럼 온화하고 담백한 맛이 좋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그동안 서로 잊고 지냈다. 과메기 안주와 술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바깥에서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그도 나만큼이나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다. 중소기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감원대상이 되어 실직하고 말았다. 다른 직장을 구하려 애를 썼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잔을 비우고는 쓴맛을 다셨다.


퇴직금과 전세금을 빼서 아내와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장사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는 돈을 벌기는커녕 오래 버티지 못하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좌절과 실의에 빠져 술로 지샌 날이 많았다. 단칸방에서 생활고에 지쳐 잠든 아내와 어린 자식을 내려다보며 차라리 다 같이 사라져버릴까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잠든 아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치곤 했다며 다시 소주잔을 비웠다. 그는 과메기 한 점을 초장에 찍어 미역에다 싸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다시 힘을 낸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나섰다. 지금 아내는 시장에서 작은 점포를 얻어 장사하고, 자기는 건설현장에서 공사관리를 맡아 일한다고 말했다.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쓴맛이 입 안에 가득 차올라 절로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친구는 과메기 한 점을 미역에 싸서 내밀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눅눅하고 비릿한 과메기 맛이 차츰 쓴맛을 담백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드넓은 태평양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던 꽁치 한 마리가 어느 날 그물에 걸려 잡혀왔다. 눈에 꼬챙이가 꽂힌 채 겨울 찬바람 속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대목에서 내 눈이 꼬챙이에 찔린 듯 쓰라린 통증이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바다를 꿈꾸면서 꽁치는 추위에 온몸을 떨었을 게다.


친구에게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주를 마셨다. 접시에 토막 나서 널브러져 있는 과메기가 자신처럼 느껴져 입에 넣고 과거를 되씹듯이 자근자근 씹었다.


꽁치가 과메기로 변신하는 과정은 중년을 훌쩍 넘긴 우리의 삶과 비슷했다. 푸르고 싱싱했던 꽁치는 간데없고 겨울 눈보라에 동상을 입은 과메기 두 마리가 밤이 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식당을 나오니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왔다. 달아오른 술기운 때문에 춥지는 않았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의 손은 두툼하고 컸다. 거칠거칠한 손바닥이 따스한 온기를 가득 물고 있었다.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체내에 스며든 알콜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살이에 거칠고 딱딱해진 피부 아래에는 과메기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은근한 정이 숨 쉬고 있었다.


내일이 오면, 그는 삶의 현장에서 또 땀을 흘릴 게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할지라도 피붙이를 생각하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배어 있을 게 분명하다. 과메기의 피부가 거칠어지는 만큼 속살은 더욱 알차게 익어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과 함께 과메기를 먹은 적이 있다. 아들은 상 위에 늘어놓은 과메기를 보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초장을 찍은 살점을 미역에 싸서 먹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기대에 차서 먹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먹더니 비린내에 질린다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하긴 과메기만 먹으면 많이 먹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주방에 가서 오래전에 먹다가 둔 포도주를 가져와 한 잔 따라주었다. 소주가 없으니 꿩 대신 닭이었다. 아내가 있었다면 어린 아들에게 술 먹인다고 아마 난리가 났을 터였다. 먹는 모습을 보며 맛있느냐고, 먹을 만 하냐고 물었더니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중얼거린다. 하긴, 아직은 과메기의 깊은 맛을 알 수 있는 나이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포도주와 함께 먹는 과메기라면 더욱 맛을 모를 일이다.


힘겨운 인생길에서 마시는 쓰디쓴 소주와 함께 먹을 때 비로소 과메기의 제맛이 드러나니까... 아들이 더 크면, 아들과 함께 구룡포에 가서 소주를 마시며 과메기가 떠나온 바다에 대해 이야기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지 않아 식당이나 술집 테이블에는 말랑말랑한 과메기가 한껏 맛있는 자세로 누워 있을 게다. 마른 김이나 싱싱한 미역과 함께 별미를 뽐내면서 말이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한번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군침이 과메기처럼 입 안을 돌아다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추억의 만원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