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커버림 콩나물처럼...
딸과 콩나물
지난 추석 연휴에 우리는 서울로 올라갔다. 보통 명절이면 귀향을 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점 점 심각해지기도 했고, 레지던트 2년차인 딸이 시간을 내어 고향으로 내려올 입장도 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내 병원숙소에서 지내다가 올 봄에 근처에 있는 전셋집을 어더 자기 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처음 서울로 직장을 구해 떠날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 딸인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라는 생각에 늘 신경이 쓰이곤 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딸은 혼자서도 잘 해나가고 있었다. 간혹 제 엄마에게 전화하여 힘들다는말을 하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버텨나가는 걸 보면 이젠 어른이구나 싶기도 하다.
딸이 사는 집은 좀 오래된 빌라였지만, 그래도 저 만의 공간을 나름대로 이것저것 신경써서 꾸며놓았다. 쉬는 날은 마음 편하게 머무를 수 있다며 좋아했다.
아내는 집 안을 구석구석 뒤져가며 치우고, 쓸고, 닦고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딸은 그런 아내를 보며 괜찮다고, 힘들게 안 해도 된다며 말렸지만, 에구, 허리야~ 하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저녁 늦게 우리는 한강 둔치로 바람을 쐬러 갔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뛰고, 걸으며 저마다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한가위 보름달을 가리고 있었다.
추석이 되면 사람들은 둥근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바램을 빌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이들은 아마도 건강을 제일로 치는 거 같다. 어쩌면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리라. 아내는 늘 그랬듯이 얼굴을 가린 달을 올려다보며 가족의 건강을 빌고 있겠지.
특히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인류를 위협하는 지금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도 수칙을 지켜나가야 할 게다. 지금은 많이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 던지는 날이 오겠지...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한동안 걷다가 비어 있는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혼자 앞서 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각자 편안한 자세로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운 여유를 즐겼다. 밤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찌르르르 귓 가로 날아들었다. 여행스켓치의 별이진다는 노래가 생각나는 밤이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은 먹구름에 가려 떴는지 졌는지 알 길도 없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그저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했다.
딸이 내게 제목을 맞춰보라며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주었다. 3초 동안만 들려준다나... 7080 시절의 팝송을 들려주는데, 그래도 한때는 팝송을 들으려 음악다방을 전전했던추억이 있어 몇곡의 제목을 맞추기도 했다. 딸이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며 지금 내가 몇 살이던가...? 나의 생각은 과거로 발걸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아마 딸이 중학교 다닐 때였을 게다. 저녁에 거실에서 물건을 찾고 있는데 컴퓨터를 하고 있던 딸이 나를 세우더니 키 한번 대어보자며 내 등 뒤에 섰다. 나는 짜아식~ 하면서 딸의 머리 꼭대기에 손을 얹었다.
우리 딸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들 보다 한 살이 적었다. 오빠가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부러웠던지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갔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한 살이 어렸으니 키가 작아 항상 맨 앞자리에 앉곤 했다. 다행히도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그때부터 딸은 우리가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둥, 특히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마치 비밀이라도 누설한다는 듯이 발끈했다.
그러는 딸에게 나는 웃으며 물었다.
"네 친구들은 네가 한 살 적은 거 모르냐?"
"알면 안 되지..."
딸은 쓸데 없는 말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걔 같은 학년이라도 누구는 한 살 적고, 또 누구는 한 살 더 많기도 하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니지만 어린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딸은 한 살 적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다른 아이들만큼 빨리 키가 커지기를 바랬었다. 벽에 줄자를 붙여놓고 눈만 뜨면 거기에 가서 오늘은 얼마나 자랐는지 재어보곤 했다.
그러나 사람이 콩나물이 아닌데 매일 쑥쑥 자라겠는가? 딸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키에 한숨만 내쉬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실실 웃으며 키가 빨리 크려면 매일 머리를 감으면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딸은 무슨 비방이라도 있는가 싶어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콩나물은 매일 물만 주는데도 쑥쑥 잘도 크거든. 아마 네 머리에 매일같이 물을 주면 빨리 크지 않을까?"
딸은 속았다는 표정으로 '흥!'하며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언젠가부터 딸의 키에 대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딸이 키를 재어보자며 내 등 뒤에 선 것이다. 무심코 내민 나의 손바닥에 닿은 딸의 머리는 내 머리의 높이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내 입에서 절로 깜짝 놀란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언제 이렇게 컸어? 키가 얼마야?"
딸은 웃으며,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162 센티미터."하고 말했다. 아직은 말라깽이지만 내가 무심히 사는 동안 딸은 콩나물처럼 부쩍 커 있었다. 요즘 아이들 다들 크다고 하는데 중 3치고는 작은 키는 아닐 것이다.
저야 이제 다른 아이들만큼 커져서 한 살 적은 표시가 전혀 나지않아 좋겠지만, 나는 귀엽고 아담한 딸을 잃어버려 아쉽기 그지없었다. 이제는 여자흉내를 내면서 내게 잔소리까지 하는 딸이 다시 작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의 어린 딸은 이제 키 만 커진 게 아니라, 세월을 한꺼번에 집어 삼키고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렸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사회적, 경제적 독립을 하여 부모 곁을 떠나서생활하게 되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늘 하곤 했는데,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빨리 자라버렸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 보다 더 커졌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을 정도였으니...
아들은 반포대교까지 갔다왔다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내보이며 숨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머리 위로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세 우르르 쾅쾅!!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우리는 딸의 포근한 공간으로 달려갔다.
딸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고 혹여라도 키가 더 커지면 안되는데... 너무 키 큰 콩나물이 되면 어쩌나...ㅎㅎ
머지 않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내 울타리를 떠나 새로운 자기 만의 울타리를 만들며 살게 되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딸도 가족을 만들어 행복한 미래를 꿈 꾸며 살겠지...
자기를 닮은, 그리고 예쁘고 귀여운 콩나물을 키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