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를 위한 명상

차 한 잔의 시간을 즐기며....

by 탁 진

녹차를 위한 명상


한때는 커피매니아였던 내가 요즘 녹차를 즐겨 마신다. 짙은 향기와 자극적 입맛 때문에 중독적으로 마셨던 커피였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내게 위염증세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치매예방에 좋다느니 어쩌니 하는 외국 어느 기관의 연구발표도 익히 듣기는 했지만, 가능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간혹 접대를 받을 때 어쩔 수없이 커피를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녹차의 짙은 향내가 그리울 때면 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주방수납장에서 녹차봉지와 다기를 꺼내 준비한다. 예전에 아내가 사놓았던 차주전자와 찻잔세트가 있었지만, 나는 찻물을 이리저리 옮겨부어야하는 절차가 번거로워 그냥 거름망이 달린 찻잔을 쓴다. 그렇다고 인스탄트 커피처럼 뜨거운 물만 부어 찻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마실 수 있는 건 아니다.


포트의 전원스위치가 꺼지면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물을 조금 부어 찻잔을 데운다. 그렇게해야 나중에 찻물이 빨리 식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온도를 맞춰 차를 우려내기는 힘들다. 대략 1분 정도 지난 후 찻잔에 물을 부어 거름망을 넣고, 찻잎을 한두 줌 집어넣는다. 그리고 덮개를 씌워놓고 차가 우러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지 않으면 향긋한 차를 마실 수가 없다.


몇해 전이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던 날, 초록의 빛깔로 뒤덮힌 산자락 차밭에 서서 두 팔을 벌려 깊고 깊은 숨을 들여마셔본 적이 있다. 보성 녹차밭 나들이를 간 것은 한창 봄이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차밭에서 파릇한 찻잎을 어루만지며 나는 싱싱한 생명력을느낄 수 있었다. 차나무는 밤낮의 기온차가 많은 곳에서 키워야 한다고 안내자가 말해주었다.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담금질을 이겨낸 찻잎만이 비로소 품격있는 내면의 깊이를 지니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가르치고 남들 다 가는 학교에 보내려면 거의 스무 해가 지나야 한다. 물론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왔고, 내 아이도, 내 아이의 아이도 그렇게 해야 하리라. 나무를 심고, 가꾸며, 혹여 벌레 먹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거센 비바람에 가지라도 꺾여질까 아내는 그렇게 자신의 차나무를 키워왔다.


아내가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이들, 빨리 커버리면 좋겠다. 빨리 학교가고, 결혼시키고 나면 더는 걱정 없을 텐데... 어디 뻥튀기처럼 한순간에 키울 수 있는 기계 같은 거 없나 몰라." 정말 세상에 그런 거 있다면 좋을까?


구수한 녹차향이 은은히 퍼진다. 복잡한 머릿속의허섭쓰레기들을 치우고 정리시킨다. 나는 찻잔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 향을 폐부 깊숙히 들여마셔 음미해본다. 때로는 마실 때보다 향을 맡을 때가 더 기분좋기도 하다. 차가 우러나오는 시간에 그냥 멍청히 앉아있다든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면 이 그윽하고 깊은 향의 진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이 단지 지루하고 소득 없는 시간낭비는 아닐 게다.


조급한 마음은 언제나 부실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소식이 자주 우리 사회의 화제가 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급하다. 만만디라고 우리가 우습게 보았던 중국이 지금 전세계를 휘젓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의 기술수준이 아직은 중국보다 높지만, 천천히 여유있게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그들을 얼마나 빨리 빨리 도망갈 수 있을까?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챙기고 정리하고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기다림의 시간은 후딱 지나가는 걸 우리는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전, 함께 글공부를 했던 이에게서 모처럼 연락이 왔다. 근황이 궁금하여 문득 전화를 했다고, 요즘 글을 좀 쓰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러저러한 핑계들을 주워섬기느라 말더듬이가 되고 말았다. 게으름의 냄새가 내 몸에서 나는 것 같아 자꾸만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싶어졌다. 너무 오랫동안 우려먹어서 그런가? 더는 맛있는 차향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여러 번 우려낸 차는 아무래도 농도가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싱겁고 맛없는 낙서 같은 글자들만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이제 내게도 새롭고 신선한 재료가 필요하다. 때를 기다려 정성스럽게 따서 말리고, 공들여 덖어서 고소한 향내를 풍기는 그런 찻잎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가만히 찻잔에 손을 가져다 대어본다. 따스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팔로, 가슴으로 흘러들어온다. 녹차를 마실 때 누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불가마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불에 달구어져 태어난 찻잔이기에 녹차의 뜨거움을 능히 받아들이고 그 열기를 감싸안아 비로소 향긋한 차를 우려내는 것이다. 찻잔도 화두 같은 녹차를 품고서 참고 기다려야 제대로된 차를 낳을 수 있으니.


아내가 그런 찻잔이었다. 아이들 둘 다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보냈다. 물을 끓이고, 그런 뜨거운 물을 끌어안고 찻잎을 이리 굴리고, 저리 뒤집으며 곱고 좋은 맛이 나는 차를 우려내느라 긴 세월 참고 애쓰며 견뎌왔다. 비록 찻잔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빛이 바래고 군데군데 흠집이 나기는 했지만, 그것도 나름 영광의 상처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걸 보면서 나는 그런 아내가 고맙고 기특하기만 했다. 아내는 자기가 우려낸 차들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크나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다.


거름망을 건져내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구수하면서도 입안 어느 구석에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너무 오래 우린 탓일까? 찻잎에는 수백 가지 맛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 맛을 얼마나 많이 우릴 수 있는지, 어떤 맛을 끄집어낼 수 있는지는 녹차를 재배하고, 따서 가마솥에 어떻게 덖어내는지, 어떤 온도에 얼마나 정성들여 차를 우려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한 마디로 차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게다. 차 한 잔 마시는데도 도를 닦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다도'라는 말을 쓴다. 나는 다도를 지키며 차를 마시지 못하니 정말 제대로 된 차맛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점점 녹차에 길들여져가는 내 입맛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커피보다 은근하고 고요한 맛을 조금은 아는 것 같다.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차의 깊고 그윽한 맛과 향의 결과를 알기에.


그렇게 우려낸 차맛은 우리네 삶의 모습처럼 다양하기가 이를데 없다. 길을 가다보면 지나는 이에게서 문득 풍겨오는 향내를 맡곤 한다. 사람은 저마다 특유의냄새를 가진다. 언제 씻었는지 모르는 노숙자에게서 나는 악취, 어린 학생들의 풋풋한 살내음, 아리따운 여인의 화장품냄새, 출근하는 회사원인 듯한 남자의 스킨냄새 등등. 간혹 어떤 이에게서는 강렬하고 진한 향수냄새가 나서 머리가 아찔할 때도 많다. 그런 향기는 대부분 얼굴이나 몸에 뿌린 것들이다. 차를 우리듯 속으로부터 스며나오는 그런 향기가 진정 그사람의 향기가 아닐까? 긴 시간동안 가꾸어지고, 다듬어지고, 숙성되어 은은한 향취가 내면에서 우러나온다면 지나는 사람들이 다들 한번쯤은 돌아다볼지도 모를 일이다.


강하면 강할수록 생명력이 짧기 마련이다.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과하게 발산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약한 것은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있는듯 없는듯 속으로 감추며 조금씩 내보인다. 앞으로 나서지 아니하면서도 존재를 알리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품위가 있다. 뜨겁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를 따스하게 해줄 수 있고, 활기차지는 않아도 어느새 주변을가만히 점령해버리고 만다. 나도 살면서 그런 녹차를 닮아갔으면 좋겠다.


내게 있어 차 한 잔과 만나는 순간은 나를 찻잔 속에 담궈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향내를 우려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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