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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Oct 08. 2021

[동화]  맛있는 쌀국수, 먹어 봤니?

나의 창작동화

                       

                  맛있는 쌀국수, 먹어 봤니?                              



  오늘도 세미는 혼자였다. 아침에 학교에 올 때도,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 전학을 온 지도 벌써 두어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세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을 따라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세미를 보고 저희끼리 수군거렸다. 선생님의 소개가 있고 난 뒤, 세미는 인사를 하러 교단에 올라갔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세미에게 쏠렸다. 어제 밤새도록 연습을 했지만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을 하고, 얼굴도 화끈거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겨우 입을 떼었다.    


  "반가워. 나는 윤세미라고 해. 앞으로, "


  그 순간 뒤쪽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 하나가 큰소리로 말했다.


  "하이! 미스 코시안!"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들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웃음소리는 커졌다. 너무 재미있어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책상을 탕탕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세미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결국 더는 말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누가 장난치는 거야?"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텔레비전에서 봤는데요, 저런 아이들을 코시안이라고 한데요."


  다른 아이가 자기도 잘 안다는 듯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새로 전학 온 친구를 반갑게 맞이해야지. 여러분이 보듯이 세미는 우리와 약간 다르게 생겼다. 그것은 세미의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미도 우리와 똑같은 한국 사람이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고 잘 지내도록 해라."  


  시골 학교에 다닐 때는 세미처럼 엄마가 외국인인 아이들이 한 반에 대여섯 명 정도는 되었다. 세미도 '코시안'이라는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도 짓궂은 아이들은 '너희는 좋겠다. 외갓집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말이야.'라고 놀려대기도 했었다. 도시로 전학을 와보니 세미처럼 엄마가 외국인인 아이는 별로 없었다.       


  세미는 반장인 수진이와 짝꿍이 되었다. 수진이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했다. 세미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수진이는 공부시간이면 칠판만 쳐다보았다. 쉬는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은 세미를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다. 수진이도 세미와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도 세미는 혼자서 밥을 먹곤 했다. 세미 곁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짝꿍인 수진이도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어가며 밥을 맛있게 먹었지만 세미는 식판에 덩그렇게 누워있는 고등어조림만 쳐다보며 오물오물 밥을 씹었다. 비어있던 앞자리에 덩치 큰 준호가 털썩 앉았다. 


  "미스 코. 너희 나라 사람들도 김치 먹니? 어휴 매워! 하하하." 


  세미는 능글능글한 준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런 세미가 재미있다는 듯이 준호는 혀를 날름거렸다. 세미는 밥을 다 먹지도 못하고 식당을 나와버렸다. 


  어제는 수진이 엄마가 환경미화를 도와준다며 학교에 찾아왔다. 방과 후에 청소를 하고 있는데 다른 엄마들과 함께 커튼을 새로 달고, 교실 뒤쪽 게시판을 정리했다. 수진이 엄마는 키가 크고 수진이처럼 정말 예쁘게 생겼다. 수진이는 제 엄마를 따라다니며 일을 거들었다. 세미는 멋있는 수진이 엄마를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청소를 했다. 


  "너는 처음 보는 아이구나. 새로 전학 왔나 보구나."


  어느새 왔는지 수진이 엄마가 수진이와 함께 눈앞에 서 있었다. 세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응. 쟤네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래."


  수진이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했다. 세미는 괜히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물쭈물 서 있기만 했다. 


  "그래? 네가 잘 챙겨줘라."


  수진이 엄마는 은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수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제 엄마 팔에 매달려 걸어가는 수진이가 부러웠다.       


  세미는 언제나처럼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 아빠가 일하는 식당에 들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아빠가 땅과 집을 팔아 도시로 나와 조그만 식당을 열었다. 거기서 엄마가 잘 만드는 베트남 쌀국수 장사를 했다. 엄마와 아빠는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엄마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걸레를 들고 식탁을 열심히 닦고 있던 엄마가 눈을 들었다. 엄마는 청바지에다 시장에서 산 허름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엄마의 모습 위로 수진이 엄마의 세련되고 멋있는 모습이 겹쳐졌다. 세미의 입에서 '피이...'하고 김새는 소리가 나왔다.  


  "쎄미야. 이제 와? 배 안 고파? 국수 주까?"


  엄마가 다정하게 세미를 반겨주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시무룩했던 세미의 표정도 조금 풀렸다. 엄마가 만드는 쌀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엄마는 국수를 먹고 있는 세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쎄미야, 내일 엄마 학교 간다."


  세미는 입에 국수를 가득 물고 무슨 일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엄마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전화했어. 내일 점심, 밥 퍼야 한다고. 쎄미, 내가 밥 퍼 주께."


  엄마는 학교에서 배식 담당을 맡게 된 것이 기분이 좋은지 연방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세미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았다. '미스 코!'을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세미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잔뜩 어렸다. 엄마가 내일 갑자기 일이 생겨 학교에 오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음날, 세미는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식당으로 내려가지 않고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엄마가 정말 왔을까? 혹시나 일이 생겨 오지 않은 건 아닐까? 세미는 오전 수업시간 내내 엄마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갔던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로 돌아왔다. 세미는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보았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엄마가 오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세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식당으로 서둘러 갔다. 


  세미는 식당으로 들어가 줄을 지어 늘어선 아이들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식판을 챙겨 들고 첫 번째 아주머니에게서 밥을 받고, 다음 아주머니에게서 반찬을 받고, 또 다음 아주머니에게로 차례차례 나아갔다. 세미도 식판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아이들이 세 번째 반찬을 집어주는 아주머니 앞에서는 반찬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반찬을 챙겨주느라 손이 바빴지만, 그 아주머니만은 집게로 집은 반찬을 넘겨주지 못한 채 자기 앞을 그냥 지나치는 아이들만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세미는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고 말았다. 세미가 본 옷 중에서도 가장 예쁜 옷을 입고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바로 세미의 엄마였다. 멍하니 서 있는 세미를 두고 아이들은 배식대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는 다른 아주머니들보다 키가 작았다. 덩치도 작았다. 세미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가 오늘따라 더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세미는 혹시라도 엄마와 눈이 마주치지나 않을까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며 돌아서려다가 곁을 지나던 수진이와 부딪쳐 그만 식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온 식당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모두가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세미와 바닥에 떨어진 식판을 쳐다보았다. 수진이도 옆에서 세미를 쳐다보았다. 배식을 하던 아주머니들도, 엄마도 세미를 돌아다보았다. 세미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때, 세미와 엄마의 눈이 마주쳤다. 놀란 엄마의 커다란 두 눈이 더 커지고 있었다. 엄마는 가만히 세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미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식판을 주워 배식대 앞으로 갔다. 밥을 받고, 반찬을 차례차례 받으며 엄마 앞으로 갔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세미의 식판에 맛있는 반찬을 담아주었다. 


  "엄마, 사랑해." 


  세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도 쎄미 사랑해."


  세미는 밥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엄마는 세미가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내 미소를 지었다. 


  청소당번인 세미가 빗자루를 들고 복도를 쓸고 있었다. 교실을 청소하던 수진이가 다가오더니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너희 엄마 예쁘더라."


  세미는 수진이를 쳐다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 쌀국수 요리사거든. 너 아직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 못 먹어봤지? 한번 먹으러 갈래? 정말 맛있어."    

  수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보고 웃었다. 


  울긋불긋 예쁘게 물든 단풍잎들이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두 아이에게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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