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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Oct 14. 2021

새들의 대화

역지사지라... 

                  새들의 대화



  지하철 역과 우리 아파트 사이에는 애완동물이나 새들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일을 마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동물들이 지나가는 나를 보며 아는 척을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와는 달리 새들은 단체로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한마디로 떼거지 합창이다.^^ 


  게 중에는 고운 목소리를 가진 새들도 있겠지만, 솔로가 아니라 비좁은 새장 안에서 제 각각 잘난 목소리로 목청을 돋우니 어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나는 새똥 냄새나는 가게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다른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가로수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새들이었다. 


  마치 새장 속의 새들과 가로수의 새들이 서로 열심히 마주 보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듯하다. 


  깨끗하고 빛깔 좋은 모습의 예쁜 새장 속의 새들과 단조롭고 평범한 모습의 이름 모를 새들... 


  그들은 해가 지는 가을 속에서 재잘거리는 여중생들 같다. 


  그들의 대화 내용이 궁금해진다... 


  새장 속의 새들이 떠들어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리는 걱정 없어. 우리 주인이 그냥 두지 않아... 배 고플 일도 없어. 시간 맞춰서 밥도 주고 물도 주니까. 그저 주인이 좋아는 노래만 열심히 불러주면 되니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있었어. 호호..." 


  "오늘, 기상대 아저씨가 저녁에 비 온다고 하시던데, 너희들 빨리 집에 가야 되는 거 아닌감?" 


  나무에 앉은 새들도 떠들어댄다.


  "새장 속이 답답하지 않아? 꼭 감옥에 갇힌 죄수들 같아. 하하... 너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태어나자마자 감옥살이를 하니? 주인이 주는 모이만 먹으니 힘도 없고 비리비리하잖아..." 


  "살아서 꿈틀대는 싱싱한 벌레를 먹어보기나 했어? 물론 우리는 그놈을 잡으려고 열심히 땀 흘려 온종일 날개를 파닥거려야 하지만, 너희처럼 가만히 횃대에 앉아서 노래나 부르고 먹는 좁쌀이랑은 다르지... 날렵한 내 날개를 봐. 비록 보기에는 아름답진 않아도 얼마나 튼튼한데..." 


  이렇게 서로 자기 자랑을 했을까? 


  새장 안의 새들이 피곤한 얼굴로 하소연을 한다.


  "너희들은 좋겠다. 가고 싶은 곳으로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으니까. 하루 종일 이 좁은 새장 안에서 나는 하능 일이 없단다... 그저 심심하면 노래나 부르고 때맞춰 주인이 주는 맛없는 모이나 먹고... 날개에 힘도 없어서 바닥에서 횃대까지 포르르 뛰는 게 전부야. 뭐 날개를 제대로 펼 시간도 없어. 한 걸음밖에 안되니깐..." 


  "얼마 전에 새장 문이 열린 틈을 타 친구가 탈출을 했었는데, 아~ 글쎄 말이야... 날아가다가 날개에 힘이 없어 주저앉고 말았어. 물론 달려온 주인에게 금세 잡히고 말았지... 너희들이 보기엔 우리가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줄 알겠지만, 사실은 금색으로 코팅한 싸구려 수저란다..." 


  나무 위의 새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너희들처럼 추운 겨울에도 따스한 히타 바람맞으며 즐겁게 노래만 부르면 얼마나 좋아? 우린 강물이 꽁꽁 어는 한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날아다녀야 한단다.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야 해. 누가 우리에게 이거 먹으라며 먹이를 주지 않으니까... 하루 종일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아도 쫄쫄 굶을 때도 있어. 가로수에는 벌레도 잘 없어. 청소하는 아저씨가 얼마나 열심히 거리청소를 하는지 먹을 게 없단다..." 


  "아이들이 먹다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나 구운 오징어 다리라도 눈에 띄면 잽싸게 날아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금세 달려들어 빼앗기고 말지..." 


  "요즘은 집 나온 고양이나 개들이 많아서 먹이경쟁이 더 치열해졌단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세상이야... 에고, 오늘은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인 줄 알고 주어먹었다가 배가 아파 혼났어... 흑수저로 사는 게 힘들어... 나도 너처럼 새장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데, 너희 주인한테 말 좀 잘해주면 안 되겠니? 이것도 청탁인가? 김영란 법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 하하~" 


  그들에게 어떤 대화를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말해줘도 나는 못 알아들을 테니까... 


  하긴, 그들의 대화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 귀에 들리는 대로,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


  지금 내가 물고 있는 건 금수저인가? 흑수 저인가? 아니면, 플라스틱 수저인가? 아마 생각의 차이가 아닐는지...


  등 뒤에서 새들의 재잘거림은 가을바람을 타고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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