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그 맛
입 안에서 맴도는 자갈치 곰장어
자갈치시장으로 들어가는 일방통행 길은 쌍방으로 진입한 차들로 뒤엉켜버렸다. 빵빵 울려 대는 경적 소리와 상대방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드센 목소리들로 시끌벅적했다.
남자든 여자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가릴 것 없이 차창 밖으로 힘찬 머리를 내밀어 행여라도 상대보 다목 소리가 작을까, 혹여라도 얼굴 표정이 너무 착해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 일부러 흥분된 표정으로 상대의 잘못을 일깨워주려 모두들 애를 썼다. 기선제압이란 말이 여기에 해당될까?
롯데백화점에서 아내의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다. 친구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 역시 아줌마들은 만나면 아이들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가 보다. 만나자마자 수다쟁이로 돌변하는 우리 아줌마들...
친구의 차를 타고 처가 식구들과 만나기로 한 자갈치시장으로 갔다. 저녁 무렵이어서 그런지 도로는 차들로 밀리기 시작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가는 곰장어들처럼...
그랬다. 우리는 곰장어 먹으러 가는 길이다. 한창 곰장어처럼 싱싱했던 연애시절, 찬 바람이 불던 계절이었다. 자갈치 시장 근처 비닐포장으로 둘러친 연탄불 곁에 마주 앉아 지글지글 구수한 연기를 피워 올리며 꿈틀대는 곰장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겋게 고추장을 뒤집어쓰고 익어가는 곰장어, 바다가 없는 도시에 사는 내게는 자주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아니, 쓴 소주에 가장 잘 어울리던 안 주였다고나 할까... 부산에 내려올 때면, 언제나 그 매콤하고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는 듯한 그 곰장어가 생각나곤 했다.
부산에는 싱싱한 먹거리들이 많아서 좋다.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처갓집에 올 때면 늘 솜씨 좋은 장모님의 음식사랑을 많이 받았다. 멀리 사는 막내사위를 위해 특별히 장만한 여러 가지 음식이 맛깔나게 백년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 늘 처갓집의 밥상에는 푸짐한 먹거리들로 가득했다. 밥상 앞에서 직접 당신 손으로 가자미의 살을 발라 내 숟가락에 올려주시곤 했다.
딸이 잘 챙겨 먹이지 못해서 사위가 말랐다고 생각하셨을까? 어떻게 그걸 아셨는지 모르겠다... ㅎㅎ~~ 지금은 생선 살을 발라 줄 손이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바람이 새는 듯 허전해졌다.
자갈치시장으로 들어가는 일방통행 골목에 들어서자 반대편에서 차가 들어와 서로 마주 보고 섰다. 분명 일방통행 길인데 어째서 저 차는 마주 들어온 것일까? 길이 있으니까 그냥 진입을 했는지, 보아하니 길에 차도 없어 보여서 금세 지나가면 되겠지 싶어서 무조건 들어온 것일까? 막무가내로 차들이 앞에서, 뒤에서 일방통행 길에 들어서서 차들로 꽉 막혀버려 꼼짝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뒤로 빼라! 당신이 비켜라! 왜 일방통행 표지판도 안 보고 들어완냐! 빵빵!
골목길에 길게 늘어선 곰장어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용을 쓰고 있었다. 험악한 인상을 지어가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어 상대를 위협하면서, 기다란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 상대를 한 대 후려칠 듯한 자세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식당에 도착한 처형에게서 왜 안 오느냐는 전화가 걸려왔지만 금세 체증이 풀릴 거 같지 않았다. 한동안 옥신각신하더니 그래도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차들이 일부 후퇴하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어떻게든 이미 들어온 길을 그냥 지나가겠다고 버티는 차들도 있었다. 대단한 불법 만용이 아닌가! 다행히 우리가 탄 차는 어렵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저 곰장어들이 맞짱을 뜨고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시원스럽게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구이집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숯불 앞에 둘러앉아 있던 처가 식구들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뜨거운 불판 위에서는 토막 난 곰장어들이 꼼지락꼼지락 맛있는 몸뚱이를 비틀어대고 있었다. 일방통행 길에서 하나하나 떨어져 나온 곰장어의 살점들이 어느새 여기에 다 올라와 있었는가? 그들의 양심불량을 저렇게 불판에 올려 다 태워버렸으면...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이 모두 소주잔을 들어 기쁜 목소리로 건배를 하고 고소하게 잘 익은 곰장어를 맛있게 먹었다. 작은 처형이 쌈을 싸 입을 벌리란다. 입 안에서 우물우물 씹히던 곰장어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장모님의 손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쓰디쓴 소주 맛에 어울린 고소한 곰장어 맛은 힘겨운 세상살이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각자 열심히 살다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는 시간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주기도 하니까...
아까 그 일방통행 길의 체증은 이제 다 풀어졌을까? 그네들도 여기에 와서 소주 한 잔에 곰장어 한 점 먹어보면, 아마도 금세 답답한 세상사도, 꽉 막힌 길도 훤히 다 뚫릴 것 같은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동안 부산에 가질 못했다. 그 맛있는 곰장어도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이번 겨울에는 일상으로 돌아가 꼭 그 맛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뜨거운 쿠킹포일 위에서 빨갛게 물든 곰장어 대가리가 불쑥 고개를 쳐들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빨리 안 오고 거기서 뭐 하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