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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Apr 28.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5편

산지니, 한 걸음 벗어나다...


                    < 5 >


  산지니는 소년이 먹여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기운을 차렸다. 가시에 찔렸던 온몸의 상처도 거의 아물었다. 흑갈색 깃털도 다시 윤기를 띠기 시작했고, 다리와 날개에 힘도 붙었다. 당장에라도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여전히 산지니는 누더기 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년이 일부러 먹이를 줄 때마다 조금씩 바깥으로 유도를 해보았지만, 발가락 끝 하나도 누더기를 벗어나게 되면 먹이를 따라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정해놓은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닭이 열린 헛간 안을 기웃거렸다. 안에는 뭔가 먹을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폴짝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살피던 닭이 누더기 위에서 자기를 무섭게 노려보는 매를 보고 기겁을 하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마야! 저게 뭐야?"

  닭은 오줌을 찔끔거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말로만 듣던 매의 무서운 기세에 질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누구야?"

  산지니는 기척이 나는 쪽을 노려보며 힘주어 낮게 말했다. 분명히 누군가 헛간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다가 잘못 들어왔어요."

  간신히 정신을 차려 대답하던 닭이 산지니를 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옆에 있는 손수레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다. 매는 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무서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닭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산지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한 곳을 노려보기만 했다. 닭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이며 헛간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당에 나온 닭은 걸음아 날 살려라며 닭장이 있는 곳으로 후다닥 도망갔다. 


  다음날, 닭과 오리들이 우르르 헛간 앞으로 몰려왔다.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헛간 안을 들여다보며 쑤군거렸다. 

  "저게 매라는 놈이야. 지난번에 우리 형님이 저 매에게 당했어. 저 봐! 무시무시한 부리!"

  "저 날카로운 발톱은 어떻고? 에구, 무서워라." 

  "저놈이 달려들면 어쩌지? 어서 도망가자."

  "괜찮아. 저놈은 눈을 다쳐서 앞이 보이지 않아. 어제 내가 저놈 앞에서 춤을 추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았어. 오히려 내가 저를 쪼을까 봐 슬슬 피하던 걸. 하하하."


  닭과 오리들은 재미있는 볼거리라도 찾은 듯이 깔깔거렸다.

  "야! 이리 좀 와 봐! 내가 한 수 가르쳐줄 테니."

  오리 한 마리가 용기를 내어 헛간 안으로 들어가 산지니가 앉아있는 누더기 앞에 섰다. 아까부터 자기를 보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놈들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더구나 겁도 없이 바로 코앞에까지 와서 까불다니... 


  산지니는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저 오리주둥이가 달린 대가리를 콱 찍어버리고 싶었지만, 몸은 여전히 누더기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누더기 끝자락에서 그저 용만 쓰고 있었다. 


  "얘들아, 봤지? 저놈은 이제 이빨 없는 호랑이야. 아니지, 눈깔 없는 매로구나. 하하하."

  산지니는 참다못해 자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앞에서 놀려대는 오리에게 순간적으로 달려들어 발톱으로 내리찍었다. 정확히 걸려들었다. 오리의 목을 움켜잡은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오리는 켁켁거리며 가쁜 숨을 쉬다가 이내 다리를 쭉 뻗어버렸다. 


  다른 오리들과 닭들이 놀라 기겁을 하며 모두 마당으로 도망쳤다. 산지니는 자신이 누더기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오리를 내려다보았다. 발로 더듬어 오리를 만져보았다. 아직 몸은 식지 않았다. 발가락으로 단단히 붙들고 천천히 부리로 오리의 살점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산지니가 오리를 잡아먹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할머니가 화가 나서 당장 산에 갔다 버리라고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그저 알았다는 대답만 할 뿐, 며칠이 지나도 산지니를 쫓아내지는 않았다. 


  "정말 네가 오리를 덮친 거니? 대단한데?"

  소년은 누더기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산지니를 보며 물었다. 헛간에 널브러진 오리를 보았기 때문에 잡아먹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공격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살아갈 방법은 있겠지. 앞으로 저놈도 하나하나 배워야 할 거야..."

  언제 들어왔는지 할아버지가 등 뒤에서 산지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혼자 잘 살 수 있을까요?"

  "어차피 자기에게 닥친 운명이니까 혼자서 헤쳐나가는 수밖에... 하늘은 모든 생명에게 이겨나갈 수 있는 만큼의 고난을 준단다..."

  할아버지는 소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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