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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Apr 26.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4편

절망에 빠진 산지니 


                    < 4 >


  한밤중이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한 곳만이 환하게 밝다. 절벽 위의 있는 산지니의 둥지다. 둥지 안에는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산지니는 둥지로 날아가려고 열심히 날갯짓을 하지만 둥지는 점점 멀어져 간다. 산지니는 새끼들을 부르며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산지니는 큰소리로 외쳐본다. 그러나, 부리만 벙긋거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깨어나려나 보다..." 

  할아버지와 소년은 온몸을 꿈틀거리며 울어대는 산지니를 내려다보았다. 머리를 쳐들더니 비스듬히 앉았다. 

  "정신이 들었구나. 살아나겠어."

  "할아버지, 그런데 왜 눈을 뜨지 못하는가요? 분명히 깨어난 거 같은데."


  산지니는 부리를 쩍쩍 벌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온몸이 쓰리고 아팠지만 견딜 만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눈을 뜨려 애를 써 봐도 감긴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시에 눈이 찔려 피가 났던 데, 역시나 눈을 다쳐서 뜰 수가 없나 보다. 이를 어쩌나."


  산지니는 눈을 뜨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만 흔들다가 다리에 힘을 주어 벌떡 일어섰다. 그렇지만,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만 했다. 눈앞이 깜깜 절벽이니 날기는커녕 걸음도 제대로 뗄 수가 없었다. 날개를 힘겹게 펴 보이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산지니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더기 위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벌레를 잡아다가 부리에 갖다 대어 주어도 벌리지 않았다. 당최 먹을 생각이 없었다. 쓰러졌다가 일어났다가, 날개를 펼쳤다가 접었다가, 그러다가 주저앉아서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목청껏 울부짖기만 했다. 


  산지니는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날짐승이 앞이 보이지 않으니 날 수도 없고, 먹이도 잡지 못하고, 더구나 절벽 둥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새끼들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슬픔에 빠져 종일 울다가 지쳐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도 여전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어두운 밤만 계속되었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뿐이었다. 누더기에 쓰러져 꺼이꺼이 우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튼튼하고 날렵했던 몸매는 바싹 말라갔고, 윤기 나던 흑갈색 깃털도 잿빛으로 변하더니 몇 개씩 빠지기도 했다. 하늘을 호령하던 매의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하게 병든 새 한 마리만 헛간에 누워 온종일 울어대었다.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느냐?"

  할아버지가 헛간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산지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소년에게 물었다. 

  "예. 벌레며, 죽은 닭의 내장도 곁에 갖다 두었는데 하나도 입에 대지 않아요. 할아버지,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지요?"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아라. 달려들지도 모르니까." 

  소년은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째 지켜보아도 헛간에 깔아 둔 누더기 밖으로는 한 발작도 벗어나지 않았다. 발로 더듬어 누더기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행여라도 발이 누더기를 벗어나면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산지니에게는 작은 누더기 넓이 만큼이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자니, 소년은 애처롭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소년은 산지니에게 가까이 다가가 기다란 막대기 끝에 벌레를 걸어 부리에 갖다 대었다. 여전히 먹으려 하지 않았다. 

  "어서 먹어라. 먹지 않으면 죽는단다. 우리 아빠도 병에 걸려 먹지 못해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는 내게 항상 많이 먹고 많이 뛰어다녀야 한다고 말했지. 너도 먹어야 살지. 그래야 다시 산으로 돌아갈 거 아니니? 너는 새끼가 업니?"


  산지니는 말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깜깜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따스한 느낌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소년은 계속해서 벌레를 산지니의 부리에다 들이밀었다.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던 생각이 나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소년의 마음을 느꼈는지 산지니는 부리를 벌려 벌레를 받아먹었다. 소년은 자기가 내미는 벌레를 받아먹는 산지니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닭 내장도 주어다가 내밀었다. 산지니는 더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스란히 먹이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먹이를 힘겹게 씹어서 눈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야! 드디어 먹는다 먹어! 하하하."

  즐겁게 웃는 소년의 목소리가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밤이 찾아와 시끄럽던 헛간 밖도 조용해졌다. 누더기 위에 누워있던 산지니는 가만히 일어나 앉았다. 소년이 억지로 먹이를 먹여준 덕분에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을 다쳐 앞을 볼 수가 없으니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둥지로 돌아갈 수가 없어 막막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자꾸 한숨만 나왔다. 


  우르르 쾅쾅!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더니 금세 쏴아~ 비를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요란하게 헛간 지붕을 두들겨대는 빗소리에 산지니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져 갔다. 둥지에서 산지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새끼들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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