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탁 진 Apr 24.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3편

산지니, 추락하다.

                            


                    < 3 >


  산지니는 암컷이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고 나서부터 혼자서 새끼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먹이를 구하러 갈 때면 혹시 뱀이나 숲 속의 올빼미들이 둥지를 습격해 새끼들을 잡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둥지에서 먼 숲보다는 가까운 갈대밭으로 사냥을 나갔다. 새끼들은 아직 거친 먹이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주로 들쥐를 많이 잡았다. 늦은 밤중이었지만,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새끼들을 위해 사냥을 나섰다. 밤에는 거의 둥지를 비우지 않았지만 배고프다는 새끼들을 보니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빨리 가서 들쥐라도 한 마리 잡아오려고 밤 사냥을 나갔다. 


  겨울이 다가오는지 밤바람이 많이 차가워졌다. 눈이 좋은 산지니는 낮이면 멀리 갈대밭에서 움직이는 작은 들쥐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지만, 어두운 밤에는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더구나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들쥐가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갈대밭 위를 몇 바퀴 돌았지만 마땅한 먹잇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모래톱에서 기어가는 뭔가를 발견했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크기나 움직임으로 보아 들쥐가 틀림없었다. 거리를 가늠하고 재빠르게 날개를 모으고 땅으로 내려갔다. 조용하던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산지니는 들쥐를 발톱으로 움켜쥐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누구야? 내 먹이를 훔쳐가는 놈이! 이 도둑놈아, 어서 내놓지 못해?"

  검은 새 한 마리가 따라오며 소리쳤다. 그것은 밤에만 활동하는 올빼미였다. 올빼미는 커다란 눈에 불을 켜고 씩씩거렸다. 자기가 점찍은 먹이를 엉뚱한 놈이 가로챘다며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잡았잖아. 이건 내 거야!"

  "이건 규칙 위반이다. 넌 낮에 먹이사냥을 하고, 나는 밤에만 사냥을 하지 않느냐? 내가 언제 낮에 네 먹잇감을 훔친 적이 있더냐? 그러니 그건 내 거야. 어서 내놓지 못할까?"


  만일 지금 올빼미와 싸운다면 밤눈이 훨씬 어두운 자기에게 불리할 것은 뻔했지만 기다리고 있을 새끼들을 생각하니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몸을 돌려 어두운 하늘로 날아갔다. 밤눈이야 올빼미가 좋겠지만 날아가는 속도는 산지니를 따를 새가 없다고 생각했다. 


  등 뒤에서 올빼미가 잔뜩 골이 난 얼굴로 따라왔다. 별빛도 없는 밤하늘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한참을 도망가다가 아무래도 숲 속으로 숨는 게 나을 것 같아 산지니는 하늘로 솟구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으로 날아들었다. 


  숲은 더 어두웠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속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온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을 느꼈다. 눈에서 불이 번쩍 일어나더니 그대로 기절을 하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산지니의 두 발은 죽은 들쥐를 놓칠세라 꼭 쥐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올빼미가 숲 위에서 추격을 멈추었다.

  "저런! 하필 가시나무 숲으로 숨다니. 에이 나쁜 놈 같으니라고. 아깝다. 다시 내 눈에 걸리기만 해 봐라. 그냥 두지 않을 테다."

  올빼미는 가시나무 숲 위를 한번 돌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소년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헛간으로 달려갔다. 빨래를 널던 할머니가 "그놈, 참!" 하며 주름진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손자 놈이 어찌 그리도 제 아비를 닮았을꼬? 짐승 좋아하는 것이 할아비나 제 아비와 하나도 다른 게 없으니. 피는 못 속인다더니. 쯧쯧쯧."

  할머니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자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소년은 할머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헛간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어두운 헛간 안을 밝게 비추었다. 농기구나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한쪽 구석에 누더기가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매 한 마리가 죽은 듯이 꼼짝도 않고 쓰러져 있었다. 


  소년은 살금살금 그 곁으로 다가갔다. 매는 올빼미에게 쫓기다가 가시나무 숲에서 뭔가에 부딪혀 쓰러졌던 산지니였다.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간간이 부리를 벌리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하기만 했다. 


  할아버지가 온몸에 묻어있던 피를 닦아내고 상처에 소독약을 발랐지만 얼굴에 난 상처는 깊었다. 

  "온통 가시에 찔렸구나. 머리에 난 상처가 꽤 크네.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다가 가시밭에 들어갔을까?"

  할아버지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지난번 산에서 보았던 매가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날아가는 꿩을 순식간에 잡아채던 송골매, 웅장한 날개를 펼치며 공중을 지배하던 산지니. 당할 자가 없을 만큼 사납고 용맹한 매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니. 소년은 가늘게 떨리는 발톱을 보며 무서움보다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 산지니를 발견한 것은 할아버지와 함께 올무를 거두러 산에 올라갔을 때였다. 그날은 올무에 걸려 죽어가던 토끼를 살려주어 기분이 좋았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소년이 가시나무 숲 근처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던 매를 발견했다. 매를 살피던 할아버지가 아직 숨이 붙어 있다며 발에 잡혀 있던 들쥐를 빼내고 조심스럽게 망태기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소독약과 솜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헛간에다 매를 눕혀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냥 놓아두지 왜 또 짐승을 데려오느냐고 잔소리를 했지만, 할아버지는 못 들은 체하였다. 그리고는 소년에게 매가 깨어나는지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