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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Apr 22.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2편

가족을 잃은 노랑 부리


                    < 2 >


  갈대밭에서는 오소리나 들쥐에게 잡아먹히는 가창오리들이 많았다. 그래서 오리들은 땅에 내려올 때면 언제나 주위를 살피곤 하지만, 숨어있다가 등 뒤에서 갑자기 덮치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가창오리들은 겨울을 나면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새끼를 까야했다. 새봄이 오면 다 자란 새끼들과 함께 다시 시베리아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짝을 찾은 오리들은 안전한 곳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았다. 


  검은색 부리를 가진 오리들 가운데 유독 한 마리만이 노란색 부리를 가지고 있었다. 암컷인 노랑 부리는 다른 오리들처럼 짝짓기를 하고 수컷과 함께 알을 낳을 둥지를 만들었다. 


  노랑 부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둥지에다 여섯 개의 예쁜 알을 낳았다. 노랑부리가 알을 품는 동안 수컷 오리는 먹이를 찾아 나섰다. 수컷이 잡아온 벌레나 작은 물고기를 받아먹기도 하고, 둥지를 수컷에게 맡기고 직접 먹이를 구하러 가기도 했다.


  20여 일이 지나자 새끼 오리들이 알에서 깨어났다. 노랑부리와 수컷 오리는 둥지 안에서 입을 벌리는 새끼들을 바라보며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수컷은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나르고 노랑 부리는 애지중지 새끼들을 돌보았다. 밤이 되면 노랑부리와 수컷은 새끼들을 누가 물어가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느 날 오후, 노랑부리가 수컷에게 둥지를 맡기고 강가로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 얕은 물에 들어가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먹는데 수컷 오리의 비명이 들려왔다. 노랑 부리는 황급히 둥지로 달려갔다.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둥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수컷은 보이지 않았다. 둥지 주변에 깃털이 흩어져 있었다. 


  멀리 산기슭으로 걸어가는 오소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소리는 피를 흘리며 발버둥 치는 수컷 오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노랑 부리는 오소리를 뒤따라 가다가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따라가 봐도 이미 늦어버렸다.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할 수도 없고, 자칫 자기의 목숨마저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랑 부리는 오소리가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사라져 가는 모습을 마냥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에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둥지에 남아있던 새끼들이 생각나서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들쥐들이 어미가 없는 새끼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았다. 노랑부리가 숨을 헐떡이며 둥지로 돌아왔을 때는 새끼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갈대밭 주변을 뛰어다니며 새끼들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온 갈대밭을 헤매고 다닌 노랑 부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수컷 오리는 오소리에게 잡혀가고 새끼들마저 누가 잡아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어버린 노랑부리의 구슬픈 울음이 온 갈대밭에 퍼져 나갔다. 바람에 춤을 추던 갈대들도, 강에서 놀던 오리들도, 하늘에 떠다니던 흰 구름도 오리의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을 안다는 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등 뒤에서 섬뜩하고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놈도 마저 잡아먹어야겠다. 흐흐흐."

  아까 수컷 오리를 잡아갔던 오소리가 언제 왔는지 입가에 침을 흘리며 찢어진 눈을 번뜩였다.

  "아아! 안 돼."

  등골이 오싹해졌다. 도망갈 힘도 없었다. 오소리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노랑 부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도저히 벗어나기는 틀렸다고 생각하고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오소리가 입을 크게 벌리고 막 달려들려던 순간, 하늘에서 쏜살같이 날아온 산지니의 발톱이 오소리의 얼굴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아악! 이게 뭐야?"

  뒤로 벌러덩 나자빠진 오소리가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혀로 핥으며 일어났다. 다시 자기를 공격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산지니의 발톱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잔뜩 움츠렸다. 

  "도대체 저놈은 또 뭐야? 어딜 감히 나에게 덤비는 거야?"

  오소리가 공격해오는 산지니에게 이빨을 내보이며 위협했다. 

  "썩 꺼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산지니는 오소리를 향해 내려오다가 머리 위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 바람에 오소리는 또다시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노랑 부리는 자기의 눈앞에서 매와 오소리가 싸우는 광경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허공에서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뾰족한 부리를 휘두르는 산지니에게 오소리는 시뻘건 잇몸을 드러내며 물려고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산지니가 쉽사리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오소리는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오소리는 아쉬운 눈길로 노랑부리를 한번 째려보더니 침을 퉤 내뱉고는 산으로 돌아갔다. 


  오소리가 간 것을 확인한 노랑 부리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산지니가 노랑부리 앞에 바람을 일으키며 내려앉았다. 광채가 나는 눈빛, 한 번만 쪼여도 목숨이 끊어질 것 같은 무시무시한 부리, 윤기가 흐르는 흑갈색 깃털, 날렵한 몸매를 떠받치고 있는 튼튼한 다리와 햇빛을 받아 빛나는 발톱. 노랑 부리는 매의 늠름한 표정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에서 강한 힘을 느꼈다. 멋있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저 무서운 매가 자신을 공격한다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노랑 부리는 두려움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까무룩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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