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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Apr 30.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6편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다...


                    < 6 >


  산지니는 헛간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손수레 바퀴에 얼굴이 부딪치기도 하고, 세워놓은 막대기를 잘못 건드려 넘어뜨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자기의 위치에서 헛간 안에 물건들이 놓여있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년이 가져다주는 먹이도 열심히 먹고 기운을 차렸다. 소년이 자기의 등을 쓰다듬는 것도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 손길이 따스하고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았다. 


  마당에서는 난리가 났다. 닭과 오리들이 갑자기 헛간 밖으로 나온 산지니를 보고 도망치느라 이리저리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왜 저놈이 밖으로 나온 거야? 이제 눈이라도 보이게 된 거야?" 

  닭장 밑에 숨은 오리가 산지니를 쳐다보며 옆에 있는 닭에게 말했다.

  "글쎄 말이야. 눈을 보니 그대로 감았는데? 왜 나왔을까? 혹시 앞을 못 보게 되었다고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돌아버린 건 아닐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닭과 오리들이 시끄럽게 떠들던 마당이 금세 조용해져서 낯설게 느껴졌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벌써 겨울이라니... 둥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새끼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려왔다. 먹이를 구해다 줄 어미가 없어, 혹여라도 굶어 죽지나 않았는지, 누가 해치지나 않았는지 답답한 가슴만 쥐어뜯다가 헛간을 나왔던 것이다. 


  "얘들아! 해치지 않을 테니 그만 나와서 나랑 함께 놀자!"

  산지니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저게 무슨 소리야? 누가 저랑 논데? 별꼴이네."

  "아무래도 정말 미친 게 분명해."

  숨어있던 닭과 오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네 말을 어떻게 믿니? 우린 너처럼 무시무시한 놈과 놀고 싶지 않다구."

  이번에는 대문 뒤에 숨어있던 닭이 말했다.

  "정말이야. 너희와 친하게 지내고 싶단다. 알다시피 내 앞에서 숨만 멈추고 있으면 내가 잡고 싶어도 못 잡는 거 알잖아. 나는 너희가 필요해."

  오랫동안 가만히 서서 기다렸지만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산지니는 어깨가 축 처져서 다시 헛간 안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침이 되어도 산지니는 여전히 누더기에 누워 있었다. 일찍 일어나 봐야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니?" 

  헛간 문 쪽에서 오리 한 마리가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산지니는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오리가 반가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오리는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와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는 벌레 한 마리를 내려놓고 재빨리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맛있는 거 잡아왔거든. 이쪽으로 와."

  산지니는 오리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왼쪽으로. 아니, 조금 더 왼쪽. 그래. 정지. 그 밑에 벌레가 있어..."

  산지니는 땅바닥을 부리로 훑었다. 꿈틀대는 벌레가 부리에 닿았다. 벌레를 먹으면서 문 밖에 서 있는 오리를 쳐다보았다. 

  "고맙다."

  오리는 산지니가 제대로 벌레를 주워 먹는 것을 보고 즐거운 듯 꽥꽥거렸다. 


  "오리야.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리가 그냥 가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다시 힘이 빠졌다. 

  "뭔데?" 

  오리의 떨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산지니는 오리가 가지 않은 걸 알고 기뻤다.

  "내가 오랫동안 바깥 구경을 하지 못했거든. 가슴이 답답해서 말이야. 네가 조금 전에 했듯이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알려줄 수 있겠니? 멀리서 말만 하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어때?"


  다시 조용해졌다. 산지니는 괜히 이야기했나 싶었다. 잠시 후, 오리가 대답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산지니는 정말 오리가 고마웠다. 자기를 도와주겠다는 오리가 천사처럼 여겨졌다.


  오리 한 마리가 뒤뚱뒤뚱 앞에서 걸어가고 그 뒤에서 매가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오른쪽이야! 아니, 너무 갔어. 조금만 왼쪽으로 돌아. 그래, 그대로 가면 되겠네." 

  오리가 말하는 대로 걸어갔다. 울퉁불퉁 돌멩이들이 발바닥에 밟혔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다. 앞서 가던 오리가 방향을 말해주니 혼자서라도 얼마든지 길을 갈 수가 있었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오랜만에 마셔서 가슴이 후련했다. 


  "힘들지 않니? 좀 쉬었다 갈까?"

  오리도 한껏 기분이 들떴다.  

  "괜찮아. 네 덕분에 이렇게 바깥에 나오니 정말 좋구나. 고마워." 

  "난 땅꼬마라고 해. 다른 오리들 보다 키가 작아서 다들 그렇게 불러. 너도 그렇게 불러도 괜찮아. 하지만, 키는 작아도 내가 달리기는 제일 잘한단다."

  산지니는 앞서 걷는 오리를 바라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덩치는 작아도 마음은 다른 오리들 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했다. 산지니는 들판에 나가 실컷 걸어 다녔다. 얼마 만에 걸었는지 다리가 뻐근할 정도였다. 


  땅꼬마는 틈만 나면 산지니와 함께 산책하러 나가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오리와 닭들도 산지니에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말도 걸어주고, 먹을 것도 물어다 주고, 자기들 이야기 마당에 끼워주기도 했다. 산지니는 그렇게 차츰차츰 마당에 사는 식구들과 가까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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