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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12.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2편

산지니, 홀로서기


                    < 12 >


  산지니는 누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느낌에 잠을 깼다. 머리를 드는데 옆에서 뭔가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가자! 아직 살아있다. 찍찍."

  산지니 주변에 있던 들쥐들이 꼬리를 끌며 재빨리 하수구 안으로 흩어졌다. 들쥐들은 어둠 속에 숨어서 하수구를 가로막고 누워 있는 매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매가 왜 저기서 잠을 자는 거야?"

  "글쎄, 난들 알겠니? 하여튼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큰일이야."


  산지니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앉았다. 허리가 쑤시고 아팠다. 다리도 삔 것 같았다. 땅꼬마와 헤어지고 혼자서 갈대밭을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몰랐다. 차가운 물이 고인 웅덩이에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 발을 잘못 디뎌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갈대들이 바람에 몸을 비비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와 도무지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날리는 눈발이 얼굴과 몸에 달라붙어 축축하게 적셨다. 매서운 바람이 젖은 몸을 더욱더 춥게 만들었다. 


  엎어지고 부딪치면서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길 앞에서는 들쥐들이 놀라 도망갔다. 물새나 가창오리들도 날개를 파닥거리며 하늘로 날아갔다. 산지니 근처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얼씬도 하지 않았다. 찬바람과 흩날리는 눈발만이 주위를 맴돌았다. 지쳐서 쓰러진 산지니는 그냥 눈을 맞고 잠들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반가웠다. 아무도 자기에게 아는 척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막막하기만 했었다. 가창오리들 소리가 들렸을 때도 자기를 도와줄 수 없느냐고 외쳐보았지만 그들은 대답은커녕 소리를 지르며 도망만 갔다. 졸졸거리는 물소리는 자기에게 이리로 오라는 말처럼 들렸다. 


  산지니는 가야 할 방향을 찾은 것처럼 힘이 났다. 조심조심 발을 더듬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하수구였지만 찬바람을 막아주어 그리 춥지는 않았다. 쉴 곳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날개 속으로 머리를 파묻었다. 따뜻했다. 자신의 온기를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자는 산지니 곁으로 더러운 물이 졸졸거리며 강으로 흘러내렸다. 


  산지니는 전날 밤의 기억을 떠올리며 하품을 했다. 하수구에서 나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하수구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곳까지만 움직였다. 만일 그 소리를 잃어버린다면 다시는 하수구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수구는 당분간 잠잘 장소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먹이를 찾아야 했다. 소년의 집에서 지낼 때는 별로 먹이 걱정은 없었지만, 지금은 혼자 먹이를 구해야 했다. 하수구 주위를 몇 바퀴나 돌아다녀 봐도 마땅히 먹을거리를 찾지 못했다. 작은 새들이 눈앞에서 날아가도 잡을 수가 없고, 들쥐도 나 잡아 잡수시오 하며 발밑에 엎드려 주지도 않으니 정말 막막했다. 그러다 문득 아침에 하수구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산지니는 들쥐가 다닐 법한 길목에서 다리를 뻗고 죽은 듯이 드러누웠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숨을 쉬었다. 들쥐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으려니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조금 있으려니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리들 소리도 들리고, 숨죽여 있던 갈대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 위로 날아갔다. 산지니는 계속해서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들쥐들이 갈대 다리 사이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죽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들쥐들이 살금살금 다가왔다. 


  산지니는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바스락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들쥐 한 마리가 꼬리를 건드렸다. 산지니는 그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놈이 발을 건드리는 순간, 번개같이 다른 쪽 발로 놈을 덮쳐 움켜잡았다. 눈 깜짝할 새였다. 

  "찍찍! 앗! 속았다!"

  날카로운 발톱에 찍힌 들쥐가 더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숨이 끊어져 축 늘어졌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산지니를 보고 주위에 다가와 있던 오리나 들쥐들이 정신없이 도망갔다. 

  "드디어 한 마리 잡았다! 나 혼자서 말이야..."

  산지니는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자신이 대견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들쥐를 쥐고 있는 발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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