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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10.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1편

산지니, 다시 갈대밭으로...


                    < 11 >


  산지니는 눈이 쌓인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년은 떠나고 없었다. 소년은 자기를 다시 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제 꽹과리를 쳐 줄 사람이 없으니 산지니는 다시 걸어 다니기만 했다. 


  땅꼬마가 꽹과리 소리 대신에 꽥꽥거리며 소리를 내주겠다고 해서 강변으로 나갔다. 하지만, 오리들이 너무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꽥꽥 떠들어대니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아 그냥 풀이 죽어 돌아왔다. 


  산지니는 햇볕이 드는 구석에 가만히 앉았다. 닭장 쪽에서는 모두 낮잠이라도 자는 건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 안이 조용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외출하고 없었다. 


  대문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마당으로 들어온 게 분명했다. 혹시 소년이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닌가 하고 산지니는 귀를 기울였다.   

  "마침 아무도 없는 모양이구나. 잘됐어. 어디 갔지?"

  소년을 데리고 간 아저씨의 목소리란 걸 알았다. 기분이 왠지 좋지 않았다. 

  "아, 저기 앉아있네. 얘야, 내가 갈 테니 가만히 있거라."

  아저씨의 손에는 커다란 마대자루가 들려져 있었다. 양손으로 마대자루의 주둥이를 잡고 조심조심 다가갔다. 산지니는  느낌이 이상했다.


  "어서 도망가라! 위험해!"

  땅꼬마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산지니는 반사적으로 후다닥 몸을 피했다. 아저씨는 마대자루를 들어 산지니에게 덮어 씌우려다 허탕을 치고 말았다. 


  산지니는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어딜 도망가느냐? 앞도 보이지 않는 게. 어서 이리 오너라."

  산지니는 점점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아저씨를 노려보며 매서운 부리로 위협했다. 발톱도 날카롭게 세워 앞을 향해 휘저었다. 강하게 저항하는 산지니를 보고 아저씨가 더는 다가오지 못했다.

  "어서 도망가! 거긴 구석이야. 차라리 그냥 하늘로 날아가 버려!" 

  땅꼬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산지니는 무조건 날아버릴까 생각했다. 아저씨는 담벼락에 세워둔 마당 빗자루를 가져오더니 머리 위로 쳐들어 내리치려고 했다.


  "거기서 뭐 하는 거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제 돌아오셨군요. 아이 전학서류를 떼러 왔다가 들렀습니다. 마당에 쓰레기가 있어서 좀 쓸려고요..." 

  아저씨는 슬금슬금 걸어가더니 마당 빗자루를 담벼락에 세워두었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온몸을 떨고 있는 산지니를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산지니는 할머니의 성난 목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벌써 세 마리나 죽었어요. 저놈이 닭장에 들어가면서부터 닭들이 줄줄이 죽어요. 어서 갖다 버려요."

  잔뜩 화가 난 목소리였다. 


  산지니도 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함께 잠자던 닭이 하나 둘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할머니는 그게 산지니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닭들도 산지니가 쥐나 오소리로부터 자기들을 지켜주어 고맙기는 했지만,  어느 날부터 이유없이 친구들이 죽자 산지니가 닭장에 들어오면서 병을 옮겨왔다고 쑤군거렸다. 혹여 해칠까 두려워 차마 크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산지니는 어제도 닭장 밖에서 보초를 섰다. 함께 산책을 나가는 땅꼬마 만이 산지니와 말을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알았다는 말만 할 뿐 산지니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다. 


  "땅꼬마. 우리 산책하러 갈래?"

  "속이 상해서 그래?"

  산지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둘은 걸어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땅꼬마는 산지니의 곁에서 뒤뚱뒤뚱 걸었다. 

  "이제 나도 떠나야 할 때가 왔나 봐..."

  산지니의 목소리는 길바닥에 가라앉을 듯이 낮고 침울했다. 

  "어딜 가려고? 혼자서 걸어가지도 못하면서. 먹이는 누가 찾아주고?"

  땅꼬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산지니는 대답도 없이 마냥 앞으로 걷기만 했다.

  "닭들이 너 때문에 죽은 거는 아닐 거야."

  "그래, 나는 아니야. 나는 죄가 없어. 그렇지만, 이젠 거기서 지낼 수는 없을 거 같아."


  강바람이 불어왔다. 가슴이 후련해졌다. 산지니는 부리를 크게 벌리고 맑고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는 길게 내뱉었다. 갈대밭에 도착하자 땅꼬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땅꼬마야. 그동안 고마웠어. 너를 잊지 못할 거야. 이제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 거야. 집으로 돌아가라."

  땅꼬마는 슬픈 얼굴로 산지니를 쳐다보았다. 비록 오리도 잡아먹는 무서운 매였지만 서로 도와주고 함께 잘 지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친구였다. 그동안 정이 쌓인 것일까? 땅꼬마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조심해. 지내기 힘들면 다시 돌아와. 알았어?" 

  산지니는 땅꼬마의 등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뒤돌아 갈대밭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땅꼬마는 저 갈대밭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먹고 먹히는 세계... 그런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산지니의 뒷모습이 외롭고 쓸쓸하게 보였다. 앞으로 누가 저 앞도 보이지 않는 매를 위해 먹이를 구해줄 것인지,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 혹여 무서운 오소리에게 당하지나 않을는지... 땅꼬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갈대밭으로 사라지는 산지니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하얀 눈송이는 산에도, 들에도, 산지니가 사라진 강변 갈대밭에도, 외로이 서 있는 땅꼬마의 머리 위에도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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