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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08.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0

소년과의 이별


                    < 10 >


  며칠 동안 소년이 보이지 않아 산지니는 마음이 울적했다. 제 엄마를 따라간 것이 분명했다. 할아버지가 소년을 대신해 먹이를 갖다 주었지만 통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리가 산책을 나가자고 해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뿐이었다.


  산지니는 마당 구석 햇빛이 잘 드는 곳에 풀 죽은 모습으로 쪼그려 앉아 있었다. 땅꼬마가 다가와 옆에 앉으며 말했다.

  "왜 그리 힘이 없어? 밥도 안 먹고."

  산지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멍하게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날고 싶어서 그래? 아이가 없으니 혼자서는 못나는구나. 내가 도와줄 수도 없고."


  대문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이 할아버지를 부르며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소년이 온 것이다. 산지니는 얼굴이 밝아졌다.

  "저건 뭐야? 매잖아! 어떻게 저게 여기 있지?"

  소년과 함께 온 아저씨가 마당에서 산지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키우던 매예요. 눈이 보이지 않아서 제가 돌봐줬어요."

  "그래? 사나운 매를 키우다니. 하지만, 저건 데려갈 수가 없단다. 알았니?"

  "예. 알아요."

  소년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으음. 그놈 참 멋있게 생겼네. 박제로 만들어 놓으면 좋겠는데?"


  소년은 산지니를 데리고 강변 모래톱으로 왔다. 땅꼬마도 뒤를 졸졸 따라왔다.

  "이제 내일이면 서울로 가야 해. 앞으로 다시 못 볼지도 몰라. 서울엔 형과 누나가 있어. 새아버지 집에 말이야. 거기서 살아야 하거든. 아마 방학이 되어도 할아버지 집에 오지 못할 거 같아. 새아버지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어."

  소년은 산지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는 내게 새아버지 가족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니까 내가 참아야지. 내가 말을 잘 들으면 귀여워해 줄 거라고 엄마가 말했어."


  산지니는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으며 둥지에 두고 온 새끼들이 생각났다. 먹이를 물어다 주지 못해 굶어 죽지나 않았는지 마음이 무거웠다.

  "자, 다시 한번 날아보자! 네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소년은 꽹과리를 들고 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갈대밭에서 후드득 새들이 날아올랐다. 강물에서 수영을 하던 철새들도 갑자기 들려오는 꽹과리 소리에 멀리 달아났다.


  모래톱 주변에는 소년과 산지니, 그리고 귀를 막고 있는 오리만이 서 있었다. 꽹과리 소리가 '땅따다땅 땅땅!'하고 하늘로, 강물 위로, 갈대밭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산지니는 잔뜩 긴장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날개를 활짝 폈다. 부리를 앙다물고 모은 두 발에 힘을 주며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야아! 난다 날아!"

  오리가 환호성을 질렀다.


  산지니는 하늘로 날아오를 때 소리의 크기를 가늠해두었다. 점점 등 뒤에서 소리가 멀어졌다. 온몸에 부딪혀오는 차가운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한참 동안 날다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선회를 시작했다. 날개를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회전할 때 몸이 바깥으로 쏠려 뒤집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얼굴과 날개 끝에 스치는 바람의 힘으로 자신의 속도를 짐작했다.


  꽹과리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소년의 머리 위를 힘차고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소리가 멀어져 갔다.


  산지니는 꼬리를 위로 쳐들었다. 순간, 머리가 하늘로 방향을 바꾸더니 수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몸이 구름이라도 통과할 듯이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숨이 찼다. 오랜만에 하는 비행이라 힘이 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소리가 까마득히 멀리서 들려왔다. 산지니는 온몸에 힘을 다 빼버렸다. 수직으로 올라가던 산지니의 몸이 한순간 멈추더니 거꾸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마치 땅이 산지니의 온몸을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날개를 몸에 바싹 붙여 공기의 저항을 줄였다. 점점 추락하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소리가 크게 들리는 순간 꼬리를 쳐들고 양 날개를 활짝 폈다. 추락하던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산지니는 수평으로 비행자세를 바꾸었다.


  환희의 순간을 맛본 산지니는 감은 눈에서 눈물이 났다. 눈물은 바람에 흩날려 갔다. 자신에게 다시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산지니는 소리의 위치를 짐작하고 선회를 하여 모래톱으로 착륙을 시도했다. 가장 힘든 순간이 남아있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서서히 속도를 줄여나갔다. 소리가 가장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날개로 바람을 감싸 안으며 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바람이 가득 품 안에 들어와 날아가던 속도를 최대한 줄여주었다. 그리고 자세를 곧추세웠다. 날개를 크게 퍼덕거리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았다. 발끝이 모래톱에 닿는 순간 다리의 힘을 빼고 납작 엎드렸다.


  성공적으로 땅에 내려앉았다. 다리에 약간은 무리가 갔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산지니는 가만히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소년이 달려와 산지니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봐, 해냈잖아! 하하하."

  땅꼬마도 산지니에게 달려왔다.

  "정말 멋있었어! 와아! 네가 그렇게나 높고 빨리 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산지니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가슴속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저도 모르게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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