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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14.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3편

노랑 부리와 다시 만나다...


                    < 13 >


  매일같이 그렇게 멍청한 들쥐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지니가 일부러 죽은 척하며 들쥐를 잡는다는 소문이 갈대밭에 이미 쫙 퍼져 있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식으로 들쥐를 잡아야 했다.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허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발자국 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 들쥐는 아니었다. 거친 숨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역시 네놈이 맞았구나.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난번 닭장 안에서는 내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게 원통하다. 크크크."


  오소리였다. 놈은 산지니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생각해봐도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톱을 세우고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오소리는 놀고 있네 하는 표정으로 콧방귀만 뀌었다.

  "오호 그래? 그 뾰족한 발톱으로 뭘 하려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라도 잡으려고? 흐흐. 어서 덤벼보시지. 여기에 있으니까."

  오소리는 여유만만하게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놀려대었다. 산지니는 발을 내저었지만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당장에라도 달려든다면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랐다. 


  오소리는 능글맞게 비웃으며 찢어진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동안 내 사냥을 많이도 방해했으니 이제 그 대가를 받게 해 주마. 우리 아기들이 지금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하니 어서 죽어줘야겠다. 킬킬 킬."

  누런 이빨을 드러낸 오소리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산지니는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오소리를 노려보았지만, 아무런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날아! 어서 날아라!"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가창오리 한 마리가 산지니의 머리 위에서 맴돌며 소리치고 있었다. 

  "너는 날 수 있잖아! 빨리 날아라!"

  오소리가 갑자기 소리치는 가창오리를 올려다보며 이빨을 내보였다. 

  "저건 또 뭐야? 저리 안 가?"

  산지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날개를  펴면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눈앞에서 날아가는 산지니를 쳐다보는 오소리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어어? 저게 날잖아! 눈도 보이지 않는 게 어떻게 날아?"

  강물 위를 날던 가창오리들이 자기들에게로 날아오는 산지니를 보고 놀라 허둥지둥 흩어졌다. 


  산지니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오소리에게 당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안도의 순간도 잠깐, 어느 쪽으로 날아가야 하는지 몰라 산지니는 당황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찾아  몸을 틀었다. 맞바람을 맞으며 날개를 최대한 펼치고 천천히 움직이며 바람을 탔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나가지 않고도 지금의 위치에서 그대로 머물 수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해냈다. 그동안 날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방법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했다.


  "이쪽으로 날아와! 어휴, 숨차라. 왜 그렇게 빨리 가니? "

  오른쪽에서 가창오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덕거리는 날갯짓 소리도 들렸다. 아까 자기에게 날아가라고 소리치던 오리인 것 같았다. 

  "내가 방향을 알려줄 게. 어느 쪽으로 갈 거니?" 

  산지니는 길을 가르쳐주겠다는 오리가 고마웠다. 더구나 자기를 위험에서 구해주었으니. 


  "강변 모래톱으로 내려가자." 

  "그래? 그러면 지금 거기서 왼쪽으로 돌아라."

  산지니는 오리가 말하는 대로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 천천히 회전을 했다. 

  "좋았어. 조금만 더. 그래, 그만!"

  산지니는 기울어진 몸을 바로 세우고 앞으로 날아갔다. 

  "그대로 곧장 가자."

  "고마워. 아까 너 때문에 살았어."


  가창오리는 산지니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함께 나란히 비행하며 말했다.      

  "고맙긴. 지난번에 오소리에게 잡혀 먹힐 뻔했던 나를 구해주었잖아. 그 은혜를 갚은 거지." 

  산지니는 가창오리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래? 내가 너를 구해줬다고? 으음. 기억난다. 갈대밭에서 오소리에게 짝을 잃고, 둥지에 있던 새끼들은 들쥐에게 물려갔었지. 하늘에서 먹이를 찾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너마저 오소리에게 잡혀 먹힐 거 같아서 조금 도와준 기억이 나네. 아, 그래! 노랑 부리다. 다른 오리들은 부리가 모두 검은색이었는데 너는 노란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쉽게 너를 기억하는지 몰라."

  산지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나를 기억하는구나! 그때 그 노랑부리가 나야. 한동안 강가에서 너를 볼 수가 없었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통 너를 볼 수가 없었지. 다른 곳으로 옮겨갔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어느 날인가. 온 강가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던 날이었어. 아이가 요란스럽게 뭔가를 두들겨대고 있었어. 흑갈색 매 한 마리가 강변을 날고 있더군. 나는 갈대밭에 숨어서 네가 나는 모습을 다 지켜봤지. 땅으로 내려오는 너를 보고 눈을 다쳐서 앞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았지. 마음이 많이 아팠어... 아! 이제 다 왔구나. 이제 조금씩 내려가야 해."


  산지니는 속도를 줄이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조금 더 내려가. 그래, 조금만 더. 거의 모래톱에 다 왔어. 됐어! 이제 착륙해야 해!"

  산지니는 양 날개를 크게 휘저으며 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모래바람이 일어났다. 발을 아래로 쭉 내뻗었다. 발톱 끝에 모래가 스쳤다. 마지막 날갯짓을 하면서 다리에 힘을 빼면서 주저앉았다. 성공이었다. 

  "잘했어!"

  노랑부리도 산지니의 뒤를 따라 모래톱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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