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뒤
내 삶은 조금씩 다시 움직였다.
숨을 쉬는 방법을 배웠고
밥의 온도를 느끼기 시작했고
밤을 견디는 법도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내 안에서 단 하나,
어떠한 회복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었다.
아버지....
도박이 남긴 빈자리는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모르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상처의 문장들이었다.
“넌 내 자식 아니다.”
“부모의 의무? 나는 없다.”
“아내도, 자식도 다시 만들면 된다.”
“우리 문중엔 너 같은 인간은 없다.”
회복하려는 순간마다
이 말들이 다시 떠올라
내 마음을 붙잡아 천천히 아래로 끌어당겼다.
도박은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끊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부모니까.”
“그래도 아버지니까.”
“부모와의 관계는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어.”
하지만 그 말들은
나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한 인간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말.
그 말은
부모라는 이름으로도 용서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반성했고
내 삶이 무너졌던 현실도 직시했지만
아버지가 내게 남긴 상처는
반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은
돌아갈 ‘자리’가 없어진다.
그 자리는 영원히 금이 가 있다.
회복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생각했다.
‘부모를 용서해야 할까?’
‘용서가 회복일까?’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용서는 회복의 조건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회복은 나의 것이지
아버지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그날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혈연일 뿐
더 이상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끊어버린 사람이었다.
사회는 이런 상처를 품지 못한다.
가족 안에서 일어난 일들은
늘 ‘집안 문제’로 축소되고
‘사는 사람끼리 이해하면 된다’는 말로
쉽게 덮여버린다.
그러나 상처는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상처를 안고
회복과 절망 사이에서
또 하루를 건너야 했다.
아버지가 남긴 말의 상처는
어떤 치료센터에서도
어떤 제도에서도
어떤 상담에서도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그 상처는
사회의 어둠과 개인의 어둠이
겹쳐진 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걸어가야 했다.
다만
이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을 뿐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였지만
이제 나는
그 이름에 마음을 기대지 않았다.
그게 내가
살아남기 위해 세운
아주 조용한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