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흔들려도
부모는 끝까지 남아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아무리 기울어도
적어도 부모만큼은
내 존재의 가장자리라도 잡아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생각보다 쉽게 떨어져 나갔다.
도박으로 흔들린 집 안의 공기는
이미 서늘했지만,
아버지의 말은 그보다 더 차갑고 더 깊었다.
“넌 더 이상 내 자식 아니다.”
그 말은 분노가 아니라
결정처럼 들렸다.
마치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판결처럼.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우리 문중에 너 같은 인간은 없었다.”
“네가 잃었으니 네가 갚아라.”
“부모도 책임 못 지는 놈이 무슨 자식이냐.”
그 말들이 떨어지는 동안
나는 마치 벽에 세워진 그림자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의 심장은
소리 없이 깨지는 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부모라면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등을 돌려도
가난이 덮쳐도
몸이 부서져도
그래도
부모만큼은 등을 돌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나는 내 존재의 바닥을 처음 보았다.
아버지의 말은
비난이 아니라
부정이었다.
존재 자체를 끊어내는 방식의 말.
그는 나의 삶을 걱정한 게 아니라
내가 그의 이름에 남길 흔적을 걱정했다.
문중, 체면, 명예—
그런 단어들 사이에서
나는 쉽게 잘려 나갈 수 있는 한 조각에 불과했다.
“신고하고 싶다.”
그 말까지 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최소한의 온기마저
그 날 이후로는 찾을 수 없었다.
도박은 나를 흔들었지만,
아버지의 말은
나를 부숴버렸다.
도박은 빚을 남겼지만,
아버지의 말은
상처를 남겼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누구의 자식일까?’
그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밤새도록 울렸다.
이상한 일이다.
부모라는 존재는
끝까지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것도
가장 깊게 상처 준 것도
결국 부모였다.
그 사실이
나를 도박보다 더 깊은 어둠으로 끌어내렸다.
도박에서 빠져나오기보다 어려운 건
그 후에 남겨진 상처에서 빠져나오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