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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Sep 09. 2020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은 스리랑카 차밭

세상 아이들이 살아갈 내일이 오늘보다 아름답기를




끝없는 초록을 달리는 스리랑카 기차여행

 스리랑카는 세계 최고의 차 생산지로 손꼽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론티'라는 이름도 스리랑카의 옛 국호인 '실론'에서 따온 것이다.

 오밀조밀한 언덕이 고원을 이루는 스리랑카 중부 지역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캔디 Kandy, 우바 Uva, 누와라엘리야 Nuwara Eliya 같은 생산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딜마'나 '믈레즈나', '베질루르' 같은 유명 홍차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꿈의 여행지라 할 수 있다.


 내가 가기로 한 곳은 하푸탈레 Haputale. 차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 해서 왠지 정감이 갔다.  


 수도 콜롬보에서 새벽 첫 차를 타고 하푸탈레로 가는 길. 열차는 완만한 산등성이를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스리랑카는 경이로운 자연을 품은 나라였다. 30분을 달리자 정글이 나타나고, 한 시간을 달리자 빽빽한 숲과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펼쳐지는 차밭 풍경. 찻잎 하나하나가 모여 굽이굽이 산맥을 연녹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회색 도시와는 대조적인 풍경에 그만 흠뻑, 빠지고 말았다.  


 스리랑카 차 재배 변적은 12만 헥타르다. 한국 차밭이 4천 헥타르라고 하니, 30배나 넓은 셈이다.

여덟 시간 동안 이어지는 기차여행 중 무려 다섯 시간 동안이나 초록 풍경이 나타날 정도로 차밭은 끝이 없었다.


"이 기차 달리고 있는 거 맞아?"


아무리 달려도 자꾸만 따라오는 차 나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쯤에야 목적지에 닿았다.

콜롬보와는 다른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고원지대 특유의 온도와 습도, 자욱한 안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햇살 고운 풍경 뒤에는 누군가의 삶이 있다

 하푸탈레에 도착해 한달음에 달려간 곳은 립톤싯Lipton’s seat. 말 그대로 '립톤이 앉은 자리'라는 의미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홍차인 '립톤' 창시자, 토머스 립톤 Thomas Lipton이 사랑해 마지않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했다.

 립톤싯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세상이 온통 초록 융단으로 가득 채워진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바로 그때, 찻잎을 따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연두색 찻잎 하나를 꺾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웃으니 소녀도 웃었다.


 그녀의 외모는 인도에서 만난 적이 있는 타밀나두 사람들과 아주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리랑카에서 찻잎 따는 노동을 하는 이들은 인도 타밀족이라 했다. 영국이 차와 커피, 고무 산업에 종사할 노동자가 필요해 이들을 19세기부터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200년이 흐른 지금. 이주 노동자의 자녀 세대는 물론, 손자 세대까지 스리랑카에 남아 찻잎 따는 역할을 짊어지고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의 이 정책은 스리랑카 내전의 불씨가 되었다.

 스리랑카 땅에 터를 잡고 살아오던 싱할라족과 주로 인도 남부에 거주하던 타밀족은 과거부터 아웅다웅 마찰이 많았는데, 둘 사이의 분쟁을 크게 부추기면 나라가 혼란해져 식민 지배가 더 쉬우리라 예상한 것이다.

영국의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26년간 이어진 내전이 끝난 지 이제 겨우 10여 년. 스리랑카를 여행할 수 있게 되어 기쁘지만, 두 민족의 갈등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슬펐다.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힘겨루기에서 과연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일까? 노동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타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우리에게도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라는 역사가 있기에, 스리랑카의 아픔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차의 나라에서 차를 살 수 없다고요?

 소녀에게 마음을 담아 작별 인사를 했다. 발걸음을 돌려 향한 곳은 차 공장. 홍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거대한 공장 내부로 걸어 들어서자 후끈한 공기와 차 향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공장에서는 찻잎을 건조하여 말아 낸 뒤 등급에 따라 두세 차례 분리하고, 최종적으로 한번 더 건조해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커피보다 홍차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굉장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들떴다. 여기서 차를 사 가면 집에 돌아가서도 스리랑카 여행을 두고두고 우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내를 담당한 직원을 붙잡고 물었다.

 "차를 구입하고 싶은데, 공장에서 살 수 없나요?"


 그는 난색을 표했다.

 "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차는 품질이 좋지 않아서 안 사는 게 좋아요."

고품질 제품은 주요 선진국에 수출을 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현지에서 소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후에 방문한 다른 도시에서도 찻잎을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좋은 차는 대부분 다른 나라에 가고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차를 만드는 나라에서 정작 고급 차를 찾아보기 어렵다니. 역설적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이야기

 공장을 견학하며 알게 됐다. 립톤싯에서 만난 소녀가 찻잎 따서 받는 임금은 하루 760루피라는 것을. 우리 돈으로 약 7천 원가량이었다.

 물가가 싸서 소득이 낮은 것 아니겠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스리랑카 맥도날드 빅맥 세트는 700루피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홍차는 최종 소비 단계에서 몸값이 뛴다.

영국 런던에서 인기가 높은 애프터눈 티 가격은 10만 원에 달한다. 일본 도쿄나 한국 서울은 대체로 3~5만 원 선이다. 애프터눈 티에 포함된 티푸드나 서비스 직원들의 인건비, 사업장 임대료 등을 감안해도 그 차이는 놀라웠다.


 고급화 전략이 잘 먹히는 상품 중 하나인 홍차.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사이의 끝없는 간극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아름다운 차밭을 더 이상 낭만적인 전원 풍경으로만 기억할 수 없었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 학교를 보았다.

운동장을 가득 채운 천진난만한 아이들. 언젠가는 이 차밭을 이어갈 얼굴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소망했다.

아이들이 살아갈 내일이 오늘보다는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그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바로 우리, 세계 각국의 어른들이기를, 하고.






콜롬보에서 하푸탈레까지 200km를 8시간 동안 달렸다. 그중 다섯 시간 정도는 차밭을 볼 수 있다.


립톤싯에서 생산한 홍차



하푸탈레에서 만난 소녀와 타밀 사람들. 식문화 역시 인도 남부와 닮은 점이 많았다.


게스트하우스 조식으로 나온 홍차와 과일. 스리랑카에서는 차뿐만 아니라 티팟과 티컵도 생산한다.


학교에서 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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