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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Sep 13. 2020

혼자 떠난 몰디브에서 폭풍우를 만나면

눈물과 콧물, 전우애만 남은 내 몰디브 여행




혼자서도 갑니다, 몰디브

 몰디브.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눈 앞에 파랑이 펼쳐지는 곳. 

수상 방갈로에서의 우아한 휴양과 낭만이 떠오르는 곳. 

그래서 로맨틱한 신혼여행지로 사랑받는 곳. 


 그런 나라가 몰디브지만, 나에게는 스리랑카 여행의 별책부록이었다. 

인도양에 있는 몰디브는 남인도나 스리랑카에서 한두 시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항공요금도 10만 원 전후. 그래서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부담 없이 몰디브를 찾는다.  


 어떤 섬이 좋을까 고민하다 구글에 접속했다. 수도섬 말레에서 출발하는 여객선 노선을 낱낱이 살폈다. 너무 멀지 않은 거리에 아담한 규모의 섬이 나타났다. 

내가 선택한 섬은 아리프 아리프 아톨 Alif Alif Atoll 지역에 있는 라스두Rasdoo 섬. 인구는 단 1천 명으로, 고기잡이 배를 타거나 리조트 일을 보는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공항 섬에서 수도섬 말레로, 말레에서 다시 라스두 가는 여객선을 탔다. 

낯선 섬을 찾아간다는 긴장을 안고 주변을 돌아보니 대강 일흔 명쯤 되는 몰디브 사람들이 보였다. 외국인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일곱 명. 라스두에 여행 가는 이가 나 하나가 아니라서 안도가 됐다.  


 배에는 사람만 타지 않았다. 섬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용품과 식재료가 물밀듯 실려 들어왔다. 하다 하다 나중에는 세탁기도 타고, 냉장고도 탔다. 

"이 배가 뜰 수는 있을까?" 하는 혼잣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과 짐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객사하고 싶지는 않다고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짐 싣기가 끝났다. 만세! 배는 통통통통 소리를 내며 항구를 떠났다. 넘실대는 파도가 요람 같아서 나는 금방 곯아떨어졌다.

 잠시 후, 머리가 쿵 소리를 내며 유리창에 부딪혔다. 지릿한 통증이 느껴져 실눈을 떴다.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눈높이보다 훨씬 아래에 있어야 할 파도가 내 머리쯤에서 몰아쳤다. 

이거... 뭐지? 

 

 정신을 차리고 주변 사람들을 살폈다. 몰디비안 아주머니가 두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웅크리고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문을 읊조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자 불안이 엄습했다. 예보되지 않은 폭풍우였다. 아까 실은 그 많은 짐들은 어쩐단 말인가!

모든 것이 가라앉지는 않을까 두려운 와중에도 배는 파도에 밀려 좌우로 흔들리더니, 옆면이 바다에 붙을 지경이 됐다. 바닷물에서 떨어져 나온 하얀 포말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구명조끼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혹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면 내 신분 정도는 확인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보조가방에 있던 여권과 신분증을 꺼내 복대에 넣었다.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도 똑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던 여행자들이 한 데 모여 통성명을 했고, 서로를 다독이고 진정시키며 회항이 무사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을까? 배를 세차게 흔들어 대던 파도가 힘이 빠졌는지 맥없이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선장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진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두어 시간이 흘렀을까? 수도 말레섬 항구가 보였다. 천만다행으로 살아 돌아온 것이다. 

얼마나 놀라고 긴장했는지, 그 높은 파도를 겪으면서도 멀미조차 하지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가 무모하고 용감하며 겁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 조심성 있고, 두려움과 걱정이 많다. 

 그렇기에 여행지에서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취기가 오를 정도의 술은 마시지 않으며,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은 실례를 무릅쓰고 거절한다. 여행 전에 상세한 일정표를 작성해 남편에게 보내고, 여행 중엔 내 위치와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한다. 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기상상황이나 자연재해만큼은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위험 요소를 스스로 제어하고 통제할 수 없기에 더욱 아찔한 경험이었다. 



 

몰디브에서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단체여행

 말레로 돌아온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선박회사는 '환불 불가'라는 도장이 찍힌 표를 군말 없이 수거해 돈을 돌려주었다. 살아 돌아온 것도 좋고, 환불받은 것도 좋지만 이제 나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여행자 일곱 명 중 두 명의 프랑스 사람들은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독일 커플과 이탈리아 아저씨, 중국 대학생, 그리고 나. 알고 보니 우리 다섯 명은 예약한 숙소가 같았다.


 다행히도 이탈리아 아저씨는 매년 라스두 섬을 찾고 있고, 항상 같은 숙소에서 묵어왔다고 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아저씨가 숙소에 전화를 하자 파도가 잠잠해지면 스피드보트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파도가 과연 잠잠해지기나 할까?' 하는 의심과는 달리 늦은 오후부터는 상황이 좋아졌다. 약속대로 항구엔 스피드보트가 도착했고, 다섯 이서 스피드보트를 나누어 타고 라스두 섬으로 향했다.


 우리의 단체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라스두 섬은 면적이 아주 작아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두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어딜 가도 만나게 되어 있으니, 차라리 처음부터 같이 다니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자는 계획이었다. 


 급히 결성된 몰디브 단체여행팀은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해 바다수영, 해변 낮잠, 동네 산책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해가 진 후에는 보드게임이나 마피아 게임을 하며 밤을 보냈다. 

 남들은 몰디브에서 로맨스를 만끽한다지만, 나는 단체 여행자 5인 사이의 끈끈한 전우애를 만끽했다. 떠나기 전에는 계획한 적도, 계획할 수도 없었던 뜻밖의 여행이었다.  




고급 리조트에서 낭만적인 휴양은 못 했지만

 내가 "몰디브에 다녀온 적이 있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부럽다고 말한다.

 우리 머릿속 몰디브 여행이란 고급 리조트 수상 방갈로 객실에 머물고,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휴식을 즐기는 장면이다.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모히또도 마셔 주어야 한다.


 모두의 기대와 달리 내 몰디브 여행에 낭만과 우아함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눈물과 콧물, 전우애로 무장한 단체여행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몰디브에서 얻은 배움만큼은 아주 값진 것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모험'이 아니라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 여행의 완성은 안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겼으니 말이다. 

 갓 가정을 꾸린 나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집에서 기다릴 가족을 위해서라도 여행은 반드시 무사하고, 또 평안해야 한다. 


 내 여행 인생에서 가장 사연 많았던 몰디브에서의 시간. 이 여행만큼은 아주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해야겠다. 





신혼여행이 아니라도 괜찮다. 배낭여행자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곳이 몰디브.


바다에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선착장 풍경


라스두 섬으로 가는 여객선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몰디브 마을 풍경


앞으로 이어질 여행은 평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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