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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Sep 15. 2020

애 엄마가 혼자 여행 다녀도 돼?

네, 됩니다. 배우자와 합의만 된다면요!



낚시하는 남자와 여행하는 여자의 결혼

 남편 취미는 낚시다. 여성들이 꼽은 <가장 싫어하는 남자 취미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한다는 바로 그 낚시 말이다.

 남편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낚시를 시작했다. 삼 형제 중 가장 막내이자 집안의 귀염둥이라는 지위를 활용하여 할머니에게 특급 애교를 선보이고, 그 대가로 원하는 낚싯대를 선물 받은 것이 본격적인 낚시 생활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지만 낚싯대만 있으면 뭐 하나. 낚시터에 갈 수가 없는데. 그래서 초등학생이 운전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타고 동네 연못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아, 그 정도였다니. 남편은 낚시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아내인 내 취미는 여행이다. 열아홉 살 겨울에 첫 여행을 떠난 후로 다른 세상 구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행 말고는 별달리 좋아하는 것도 없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에 자유롭게 여행 많이 다녀 둬서 다행이다. "


 좋은 시절이 이제 끝이라니요! 좋은 시절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 결혼 아닙니까? 

유일한 취미가 여행인 내 입장에서는 미혼에서 기혼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긴 어려웠다.  

남편도 마찬가지. 꼬꼬마 시절부터 해오던 낚시를 결혼을 이유로 관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낚시 좋아하는 남자와 여행 좋아하는 여자가 결혼을 했을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하나.
기혼자가 되었으니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취미 정도는 희생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자는 낚시를, 여자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둘.
결혼은 서로를 인생의 반려자로 맞이하는 일이다.
반려자는 상대방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사람이므로 각자가 취미를 지속하도록 지원한다.


 남편과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좋은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 찾기

 결혼 6년 차. 다 같이 가족 낚시를 갈 때도 있지만, 남편은 여전히 일주일 중 하루는 혼자서 낚시를 한다.

 소확행이 특기인 남편은 물고기를 못 잡아도 그저 행복해한다. 낚느냐 못 낚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회색 도심이나 PC 모니터가 아닌 파릇한 강과 바다를 보며 눈을 쉬게 하고, 일 생각이 아닌 공상을 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했다. 


 그 얘길 들으니 낚시를 안 보낼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휴식은 필요하니까 말이다. 남편 역시 나에게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 덕에 나도 매년 두세 번은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서로서로 '못 하게'하는 길이 아닌, '할 수 있게' 응원하는 길을 택한 결과다. 


 만약 우리가 첫 번째 안을 선택했더라면? 막중한 책임감을 이유로 들어 각자의 생활을 통제했을 것이고,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금보다 길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꼭 붙어 단체생활을 하는 방법만이 '좋은 가족'이 되는 길일까?


 함께 할 땐 서로에게 집중하되, 때로는 개인적인 시간도 허락하는 것이 결혼생활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력일 수도 있다.




여행 가는 동안 아이는 어떡하냐고요?

 내가 혼자서 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편 밥을 걱정하고, 이어서 아이 정서를 걱정한다. 

 "아이한텐 엄마 역할이 제일 중요하대. 어릴 때의 상처가 평생 아이를 따라다니는데, 나중에 애 잘못되면 어떡하려고 애를 두고 여행을 가?" 하는 걱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걱정에 대해서는 감사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 아이에겐 '양육자'나 '보호자'가 아닌 '엄마'만 필요한 걸까?


 엄마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긴 하지만, 육아에 있어서 오직 엄마 역할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육아는 엄마의 독주가 아닌 부부의 협주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자녀 양육을 엄마의 몫으로만 여기며 살아갈 것인가. 평소 생활에서 부부 모두가 아이의 주 양육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가 여행이나 출장으로 집을 비워도 아이의 정서는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더불어 아이에게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어른의 시간도 필요하다고. 그것이 너를 더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아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재충전을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의 짧은 부재가 아니라,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해 터져 나오는 히스테릭한 분노와 짜증이다.




'가정'과 '나' 사이의 균형을 위해

 전통적인 가족관 안에서 결혼이란 곧 희생을 의미했다.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이 결혼생활의 정의였다. '개인으로서의 나'가 아닌, '역할'로 살았다. 자기 자신을 깎아가며 버티는 인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 키우느라고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입고 싶은 거 못 입고, 가고 싶은데도 못 갔어."라는 부모 세대의 한탄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전 세대가 역할 중심적인 결혼을 이어온 끝에 우리 사회가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와 비혼 열풍이다. 일본에서는 비혼을 넘어 '혐혼'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 나라를 불문하고 희생에 대한 대가는 순도 100%의 행복이 아니었던 셈이다. 

 삶의 반려자를 맞이하는 결혼이 왜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결혼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내가 여행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만의 방법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쁜 아내, 나쁜 엄마라서가 아니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나'여야만 한다고 믿기에, 가정과 나 사이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간다.


균형을 잡아!


 남편과 내가 서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균형을 바로 잡아야지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 내 곁에 있는 배우자가 한쪽으로만 기울다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꼭 여행이 아니라도 좋다. 다른 부부들에게도 쉼을 선물하는 각자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마음만 맞고, 합의만 된다면 말이다. 





가족여행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여행, 친구와의 여행, 모녀 여행을 가고 싶다


부엌에 서서 입에 밥 밀어넣는 시간은 잠시 안녕. 엄마는 아~주, 가~끔이라도 우아한 식사를 하고싶다.


따뜻한 우리 집. 휴식한 뒤에 집에 돌아오면 일상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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