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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Sep 17. 2020

지방 출신이라서, 경력 단절이라서 뉴욕 여행 갑니다

-통영 시골 소녀였던- 나의 뉴욕 입문기



지방민의 문화생활은 고릿적부터 언택트

 내가 성장한 고장은 통영이다. 요즘이야 국내여행이 주목받으면서 통영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라떼는 그렇지 않았다.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 한 번 가려면 완행버스 예닐곱 시간을 타야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열차도 없다. 분명히 육지에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섬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다.


 시골이지만 예향이었다. 지역 규모와 인구에 비해 많은 예술가가 탄생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 교가는 윤이상이 가락을 짓고 유치환이 노랫말을 붙였다. 통영에 있는 학교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코발트블루의 진한 감동이 액자 너머까지 넘실대는 전혁림의 그림도,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도 통영에서 탄생했다. 보고 듣고 느낄 것들로 둘러싸인 환경이었다. 어쩌면 나 역시 도시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마음속에 스미며 자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지는 않았다.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청소년기.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가는 것은 통영에 눈이 내리는 것만큼이나 드문 연례행사였다. 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책이나 도록을 구해 보아야 했다.

 국제음악회가 열린다지만 내가 보고 싶은 발레나 오페라가 열리는 것은 흔치 않았기에 비디오에 의존했다. 덕질마저 쉽지 않았다. 신해철과 넥스트를 좋아했지만 그들의 공연은 콘서트 현장이 아닌 TV로만 보고 CD로만 들었다. 영화관도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방구석에서 이루어진 내 문화생활은 고릿적부터 언택트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간접 체험이었다. 문화생활에 대한 한은 이때부터 쌓였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마구마구 누리겠다는 꿈을 꾸며 잠들었다.




국제결혼, 해외이주, 경력단절, 그다음은?

 어른이 된 지금. 여행 취향이 딱 인도지만 때로는 파리나 런던, 로마로 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간접 체험은 이제 그만. 방구석 문화생활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이 유난히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특별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것도 매우 극적인 전환이. 신선한 것들로 나를 새롭게 채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일본인 남편과 결혼하고, 나고야로 이주한 지 몇 해가 흘렀을까?

바뀐 환경에 적응하랴, 아이 낳아 키우랴 일상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과 진로로부터 아주 멀리 떠밀린 채 망망대해를 부유하고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이라지만 내 경우는 일반적인 경력단절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나라에 떨어진 나는 완전한 무경력이었다. 일본에서 학교도 회사도 다닌 적이 없는 외국인이기에 돌파구를 찾기가 더 어려웠다.

 일본인들과 경쟁해 재취업을 하고, 조직생활을 하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퍼즐의 모양과 '나'라는 사람은 애초부터 생김새가 달랐다.


 고심한 끝에 나만의 일을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홍보팀 일을 했기에, 그 경력을 활용해 영상이나 이미지 콘텐츠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시댁은 광고인 가족이었다. 시아버지는 아트 디렉터, 시어머니는 카피라이터, 남편은 컨설턴트였다. 내가 제대로 된 무기만 갖춘다면 일본에서 새롭게 도약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만의 업(業)이 확고한 가족들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받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벼이 묻어가기는 싫었다.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이름 너머의 다른 정체성을 원했다.


 표현하고 싶은 내용은 넘쳤다. 하지만 미술 관련 전공이 아니다 보니 기획한 것을 미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금부터라도 많이 보고, 많이 구상하고, 많이 연습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수험생이 된 듯한 심정으로 책상 앞에서 보냈다. 방구석에서 손바닥만 한 그림을 들춰보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감각은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생기는 종류의 재능이 아니었다. 시야가 메말라 있으니 반짝이는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힌트를 주었으면 했다.

 스스로에게 "어떤 곳이 나를 채워줄 수 있을까?"를 물었을 때, 단 하나의 도시가 떠올랐다. 뉴욕이었다.


이토록 장황한 이유를 안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1일 1 미술관, 1일 1 공연으로 내면을 채우는 시간

 여행의 목적대로, 뉴욕은 내가 그동안 구경도 못 했던 것들을 종합 선물세트처럼 풀어놓았다.

나는 비쩍 마른 스펀지. 뉴욕의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흡수할 준비가 됐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일단 미술관에 갔다. 모마,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휘트니미술관에 틀어박혔다. 현대 미술 작품이 주를 이루는 뉴욕 미술관은 신화와 종교를 다루는 유럽 미술관의 묵직함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리히텐슈타인의 벤데이 도트는 경쾌했다. 루소는 푸른 신비와 몽환의 세계로 안내했다.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반짝였다.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큐비즘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앤디 워홀의 <최후의 만찬>을 볼 땐 친구 따라 학교 담 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가 금지된 것을 할 때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이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미술관에만 있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현대미술의 전시장이었기 때문이다.

 페인트로 그려낸 상점 간판, 주차장 이용요금을 설명하는 인포그래픽, 유려한 캘리그래피로 표현한 식당 이름, 하다못해 지하철 광고에 쓰인 일러스트마저도 사랑스러웠다. 그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였다.


 뉴욕의 밤을 장식하는 공연은 또 어떠한가!

 뉴욕시티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과 뮤지컬 <알라딘>을 보며 나이 서른에 동화와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오프 브로드웨이에서는 <슬립 노 모어>의 가면을 쓰고 이야기 속을 헤매기도 했다. 뉴욕 재즈바는 재즈 알못도 음악에 취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마침내 나는 흠뻑 젖은 스펀지가 되었다.




뉴욕에 다녀와서 다행이야

 여행은 인생을 한 방에 바꾸어주는 로또가 아니기에, 뉴욕 한 번 다녀왔다 해서 내 삶이 짠 하고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텅 비어 있었던 감각의 곳간은 알록달록한 색채와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로 가득 찼다. 만석꾼이라도 된 것처럼 든든해졌다.


 무엇인가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책상에서 하는 문화생활과는 확연히 달랐다.

 책에서 본 명작은 고요한 잔물결이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작품은 어마한 생명력을 가진 파도였다. 직접 본 적이 있는 작품을 훗날 책이나 영화, 웹사이트로 다시 보게 되었을 때도 같은 강도의 감동이 일었다. 어린 날에는 미처 알지 못하던 세계였다.


 뉴욕에 다녀온지도 2년. 나는 여전히 한 길로 가고 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래도 중간 정도는 왔다고 생각한다.

문득 새하얀 백지를 채우는 과정에서 막막함이 느껴질 때면 뉴욕에서 가득 채워 온 곳간 속 아이디어를 기웃거리며 힘을 얻는다.


 누군가 나처럼 오래 그려 온 소망이 있거나, 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잠시라도 환경을 바꾸어 볼 것을 권한다. 그 장소가 꼭 뉴욕일 필요는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재정비할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좋다.

 중요한 것은, 나를 그 장소로 데려다 놓는 존재는 나여야 한다.

우리에겐 요술 램프도, 요정 지니도 없기에 다른 누가 그 일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나를 나의 길로 이끌어 가는 힘'이 필요하다.


 유년기를 보낸 통영이라는 환경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수성을 심어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뉴욕을 걷던 날들도 내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와 진로에 대한 답답함을 풀어준 뉴욕. 여행이라는 경험을 먹고 나는 또 한 뼘 자랐다.

 





열흘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얻은 것이 많다


미술관에서 느낀 감정 : 황홀함


UN에서 본 작품. 반전과 평화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길거리마저 살아있는 현대미술관


곳간이 동나면 다시 뉴욕에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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