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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Feb 06. 2022

여섯번째 인플란트

"아무래도 뽑아야 할듯 합니다"


안경을 쓴 젊은 의사가 무심하게 말을 던진다. 

마치 자신은 이를 뽑아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듯이 방관자처럼 말을 다.

사실 며칠전부터 음식을 씹을때마다 아래 어금니 근방에서 욱신거렸다. 불편하지만 그래도 참을 만해서 잠시 치료만 하면 문제가 해결이 될줄 알았는데 결국 어금니 앞쪽 니가 생명의  다함을 선고 받았다.  


생각해보면 내 나이가 육십 중반이니 젓니 기간을 빼면 이놈도 육십이 넘은 것은 틀림이 없다 그동안 세월을 생각하면 너도 갈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너가 아무말이 없을때는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존재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 왔다. 이제와 잇몸이 욱신거리자 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은 것 같다.

"평소에 관리를 잘했어야 했는데..." 후회스럽다


우리 안의 내력이 대체로 이가 부실하다. 부모님 두분

모두가 육십이 되기전에 틀니를(당시는 플란트가 개발되지 않았다)했고 조금 질긴 육고기나  딱딱한 음식은 씹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어릴적 우리집 식단은 대체로 부드러운 음식, 물컹거리는 음식, 푹 삶은 음식들이 많았다. 모든게 불만스러운 나의 사춘기 시절에 우리집 음식도  나에게는 불만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처럼 답답하게 살지 않겠다"

무능력한 아버지의 삶이 나에게는 답답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가하여 다리에 총상으로 다쳐서 국가연금은 받았지만 평생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셨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며 살아 왔다고 생각했다.


젊은 의사 말대로  뽑고 플란트를 하면 이번이 여섯번째다. 처음에 할때는 별 감정없이 이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가 보다 는데 점점 ,셋  갯수가 늘어날수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내가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고 하였지만 어쩔수 없이  몸은 아버지의 아들이고, 어머니의 자식이다. 그들로 부터 받은 몸이기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님을 닮아가고  있나 보다.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거울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랄때가 있다.


이제 내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아버지가 틀니를 하였듯이 나도 여섯번째 플란트를 하고있다.

잇몸에 강철나사를 박고 그 나사들이 내 몸속에서 아무 탈이 없이 제기능을 하는 할때 어쩌면 내가 기계인간 "터미네이터"점점 변신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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