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by 조홍래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동산리 산 16-2"

어릴적 살던 옛 주소이다 지금이야 군이 시로,

읍이 구로 행정 구역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주소에

"산"이 무얼 뜻 하는지 알지 못하고 주위에 산이

많아서 그런줄만 알았다


70년대 그시절은 대 부분의 사람이 다 그렇게 어렵게 살았듯이 나의 어린 시절도 힘들게

보냈던것 같다

나는 상이용사 집단촌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6.25전쟁 참가하여 다리에 유탄을

맞았다 당시의 기술로는 한쪽 다리를 절단

했어야 하나 아버지는 당시 25세 나이로 다리가

없으면 차라리 죽는것이 낫다고 고집을 부려(실제

2번이나 자살을 시도도 하였슴) 6차례나 수술

끝에 다리는 살렸으나 끝내 한쪽 다리는 접지를 못했다

그덕에 아버지는 보훈자(예전 상이 용사)가 되었고

우리가족은 집단촌에 살게 되었다

당시 2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하여 산 밖에 없는

지형에 터를 잡고 흙벽돌을 찍어서 집을 짓고

살기 시작 했다

회원 모두가 상이용사라 팔이 없는 사람, 다리가 없는 사람. 눈이 없는 사람.. 등등 전쟁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어른들을 통해 전쟁을 겪고 이었다

아래집 덕수 아버지는 다리가 둘다 없는데,

술만 먹으면 땅바닥에서 뒹굴면서 소리를 질렀고

팔이 없는 웟집 상철이 아버지는 팔대신 옷소매속

에 철사로 된 손을 가지고 있었다

다리가 없어서 걸을때 오리처럼 뛰뚱 거리면서

걷는 영학이 아버지가 회장님 이시고 모두가 다

6.25 전쟁 참가자 인데 그중 유일하게 월남 참가

자인 섭이 아저씨는 나이가 어려서(당시 총각)

총무를 했다

어제는 아래집에서 온동네 떠나가게 소리를

치면 다음날 화답이라도 하듯이 윗집에서

땅바닥에 뒹굴면서 소리를 질렀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악 쓰는 소리가 들어,

어른이 되면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 되나보다

하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단촌에는 설날, 추석 이외에 또다른 명절이 있었다 현충일이 되면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마을에 위로 방문을 하여 그때도 요즘처럼 합동사진 한방 찍고서는 밀가루 한포씩 나누어 주었다

우리집은 이 밀가루로 날마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해 먹었다 그래서인지 육십의 이 나이에도 난 칼국수와 수제비는 아직 잘 적응을 하지 못한다

언제가는 라면이 한상자씩이나 배급이 되어서

아끼고 아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해 크리스마스때 이웃 동네 교회를 가서는 라면이 또 배급 되기를 간절이 바라는 마음에 기도할때 "아멘" 대신 "라면"이라고 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이 부족 했는지

더이상 라면 배급은 없었다


아직도 산에 살아서 "산"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고등학교때 가정 실태 조사에서는

우리집 주소만 "산"이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