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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Feb 19. 2020

항존직 선거

  

항존직은 안수해 임직받는 직분이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의 직분을 통칭한다. 웬만한 교회에서 항존직 선거는 3년에 한 번씩 한다. 교회에 오래 출석했고 신앙이 깊은 자를 선발한다. 안수집사, 권사는 출석 교인의 과반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하고 장로는 2/3 이상 득표를 해야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선거 일자와 세부 내용을 공지하지 않았는데도 성도들 대부분은 대략의 일정과 후보자, 후보자에 대한 평가 등을 알고 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때문이다. 교회 외부 모습은 일상과 다르지 않게 평온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성도들 입을 통해 선거 기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전쟁이 진행돼 있었다.    

자신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전화해서 자신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애원형, 자신은 선거와 전혀 관계가 없고 관심도 없는 척하지만 주위에서 선거 이야기만 나오면 귀를 쫑끗 세우고 달려와 이것저것 간섭하는 간섭형, 평소에는 새벽 기도와 예배도 가끔씩 빠지는 성도가 선거철에는 성경 말씀을 매일 아침마다 전 성도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 보내는 일방형, 갑자기 식당 봉사하고 지하철역에서 교회까지 노인들을 차량으로 모셔다 드리는 한시적 봉사형도 있다.    

사회의 선거보다 치열하게 진행되지만 차이가 있다면 교회인지라 서로가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하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불꽃이 번쩍거리는 전쟁을 한다는 것이다. 교회 지배층은 선거를 통해서, 교회에서 이탈하고 교회에 불만을 가진 성도들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주고 소속감을 재확인해 줄 수 있어서 선거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교회를 떠난 후 아직 교회에 있는 친구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다. 여느 때와 같이 선거철이 되면서 많은 소문이 떠돌았다. 어떤 장로는 혼자만의 판단으로 이런 사람이 뽑히면 좋겠다며 투표할 후보 명부를 만들어 자신과 친한 사람들에게 돌렸고, 그것이 선거 전에 알려져서 다른 후보들이 선거 무효를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선거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고가의 명품을 줬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거 전에 돈을 돌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이 성도 간 파다하게 돌았다. 그러자 한 성도가 화가 많이 났는지 이런 이야기를 다 수집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증폭해 SNS에 올렸다. 교회는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들이 항상 물밑에서만 있었지 이렇게 물 밖으로 나와서 SNS 위에서 헤엄을 치고 다닐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교회 지배층이 당황을 했나 보다.    

예배 시간에 한 장로가 단상으로 나왔다. 그 장로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을 나와서 인지 평소 다른 성도들과 교류가 적고 나름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장로는 명예훼손이 사법 몇 조에 해당되고, 처벌은 어떻게 받는다고 상세히 설명하며 성도들에게 겁을 줬다. 금번 선거와 관련해 헛소문을 퍼트린 자, 옆에서 동조한 자, 말을 전달한 자들을 찾아 철저히 징계하겠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장로가 교단에서 내려가자 이번에는 원로 장로가 교단에 올라왔다. 그 분은 교회에서 많은 존경을 받으시고 봉사도 많이 하시는 분이다. 그 분은    

“교회 내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면 안 됩니다.”    

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니, 여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교회 내에서 풍파를 일으키거나 일으키는데 옆에서 동조한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서 떠나 주세요.”    

갑자기 교회 내 공기가 차가워졌다. 모두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교회 역사가 자그마치 70년이다. 예전에는 지역 내에서 힘을 꽤 쓴다는 사람들과 돈이 많이 있다는 재력가들이 이 교회에 주로 다녔다. 그래서 적은 성도이지만 헌금은 다른 교회에 비해서 많이들 하는 부촌 속에 있는 교회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돈 많은 이들은 떠나가고 그들의 대궐 같이 살던 집들은 빌라로 건축되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이 많은 동네로 변해갔다. 부자들이 멀리 이사를 갔어도 교회는 계속해서 이 교회로 다니다가 돌아가시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민층으로 성도들의 분포가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 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갈등이 있다. 장로 선거를 하면 교회의 주인 같은 교회 지배층의 자녀들이 우선됐다. 그들은 서민층에서 올라온 다른 성도들보다 노력을 덜해도 쉽게 당선되는 경향이 있었다. 교회 내에 성골과 진골이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노령화하듯 교회도 빠른 속도로 노령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거에서는 노인들의 표가 승부에 절대적이었다. 부모부터 자식까지 이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은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갑자기 어느 날 이 교회로 전입 온 다른 성도들은 노인들에게 힘겹게 한 표 달라고 호소해야 했다. 노인들이 후보자들을 잘 알지 못하니까 주위에 물어서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이때 목사와 사모는 특정 후보를 뽑아야 된다고 말했고, 그러면 대체로 그 후보들이 집사와 장로가 됐다. 그러다 보니 서민층 출신의 성도는 남들보다 몇 배 노력해도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성골에 비해 작았다.    

교회는 이런 성골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서민 출신의 성도는 자신도 성골이 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원로 장로는, 이 교회의 주인은 성골이므로 괜히 서민 출신들이 먼지 바람을 일으키지 말고 떠나라고, 예배 시간에 전 성도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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