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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Feb 19. 2020

목사의 고무줄 나이

 

목사는 80년대 중반쯤 알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목사가 앞장서서 장례를 준비했고 우리 가족이 처음 맞는 장례에 도움을 주려가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시절의 목사는 교회 담임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의욕이 넘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교회를 나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목사를 더 가까이에서 알게 됐으나 교회를 그만 둘 때까지 목사와 나와의 관계는 평소 무심하게 알고 지내는, 딱 그 정도 사이였던 것 같다. 목사가 단상에서 설교할 때 나는 본당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는 정도의 거리가 항상 유지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목사도 나도 젊었다. 젊은 시절에는 서로 잘 몰라서인지 아니면 목사가 담임을 맡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나도 목사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세월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는 건지, 목사가 담임을 맡은 지 10년, 20년이 되면서 교회에 많은 풍파가 지나갔다. 그때마다 목사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성도들을 반 이상 데리고 다른 교회로 갔다. 교회 내에는 반대 세력이 사라졌고 당회 중심으로 풍파를 이긴 목사는 이제 누구도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교회를 독선과 고집으로 운영하는 면들이 보였다.    

한 은퇴 장로가 있었다. 평소 다른 교인들에게 존경받았던 분으로 기억된다. 그는 은퇴 후 교회에 잘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수 개월이 지나갔다. 어느 날 광고 시간에 그 장로의 유족이라는 분들이 검정 옷을 입고 나와 성도들에게 장례를 잘 마쳤다는 인사를 드렸다. 교회는 다른 것보다 혼례, 장례에 대해서는 항상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교회 내에서 장례나 혼사가 생기면 어떤 일보다 우선이 되어 밤 늦은 시각에도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참여를 독려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원로 장로였던 은퇴 장로의 장례를 성도들이 전혀 모를 수가 있을까? 의아했다.    

인사를 마친 장로 가족들은 이후 교회에서 볼 수 없었다. 몇 개월 지난 후 다른 성도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장로가 목사의 독선을 반대하다가 목사와 사이가 불편해졌고 이후 장로가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 출석했던 것이었다. 장로는 유언으로 자신이 종전에 다니던 교회에는 장례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했으나, 유가족의 친구를 통해 교회 일부 지배층에 알려진 듯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장로의 장례를 전 성도에게 알리지 않고 일부 지배층만 장례식에 다녀온 후 이를 쉬쉬했다. 그런데 유가족이 교회 지배층이 장례식에 다녀간 것을 감사히 생각해 성도들에게 인사하면서 전 성도들이 은퇴 장로의 장례에 대해 알게 됐다.    

사람이 보통 죽음 앞에서는 대부분 겸손해지고 내려놓으려 하는데, 장로는 짐이 얼마나 크고 무거우면 마지막 길에서까지 교회에 알리지 않으려고 했을까? 내가 교회를 떠나보니 그때 그 장로의 마음이 이해가 다.    


목사가 63~64살쯤 됐을 때 이야기다. 목사는 본인의 나이가 주민등록상에 잘못 올라가 있어서 자신의 실제 나이는 주민등록 나이보다 한 살 어리다고 주장했다. 49년생으로 등록돼 있는데 실제로는 50년생이라는 것이다. 그 시대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힘들고 아픈 시기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왜 주민등록상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른지 이해는 갔다. 그러나 목사도 말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불에 타다 남은 불쏘시개 종이라도 들고 와 증명을 해야지 그냥 혼자 말로만 주장했다.    

목사의 정년은 70세다. 1년이 연장되면 목사에게 수억의 수임료와 갖가지 활동비, 도서구매비, 관사 운영비 등이 지급돼야 한다. 어쩌면 목사는 지금까지 누려온 각종 혜택을 70세가 되면 갑자기 내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과 불안감이 났던 것 같다. 직업으로서의 목사를 보면, 우리나라에 많은 목사가 있지만 이렇게 300명이나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를 맡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마 전체 목사에서 2~3%도 되지 않는 안정적인 직장일 것이다. 항간에 세습으로 유명해진 교회도 아버지 목사가 젊은 시절에는 아들에게 절대 교회를 물려주는 일이 없다고 했고, 아들 목사도 세습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은퇴하고 아들 교회가 생각보다 잘 안 되어서인지, 그렇게 좋은 직장을 남에게 주기가 아까워서인지 세습의 정당성만 주장하고 있다.    


아내가 교회를 떠나 나와 함께 천주교로 개종하겠다고 마음먹고 교회의 모든 일을 정리하자 목사가 그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목사는 아내와 내 주위 사람을 통해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는 천주교에서 세례도 받고 견진도 받아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었다. 또한 돌아가기도 싫었다. 그래서 이제와서 만나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전하려고 목사의 메일을 찾았더니, 아이디가 목사 이름인데 이름 뒤에는 ‘49’가 붙어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적사항이 필요하여 본인이 직접 등록해야 한다. 아이디를 만들 때 통상적으로 본인의 이름, 애칭으로 만들고 다른 아이디와 중복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의 출생년도를 뒤에 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디는 웬만해서는 고치기 어려워 그 아이디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목사의 나이가 49년생이냐, 50년생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만일 나이가 틀렸다면 교회에 처음 올 때부터 그 점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될 일이다. 인정받지 못했으면 본인이 스스로 교인들 모두가 아는 기억으로 감수했어야 한다. 세상의 이치를 다 알 수 있는 60대 중반에 와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목회 활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사고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그들에게 기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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