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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Feb 19. 2020

슈퍼 갑 목사

   

목사를 알게 된 것은 80년대 후반쯤이었다. 나는 당시 진해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다 서울로 부임해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면서 목사와 첫 대면을 했다. 목사는 그때 처음으로 담임목사로 부임해 의욕이 넘치는 적극적인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일부 성도들 사이에서 목사에 대한 불만으로 내분이 일어났다. 절반 가까이 되는 성도들이 떠나고 장로들도 은퇴하자 목사에게도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예배가 시작되면 모든 성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영접하는 찬송을 부른다. 목사는 찬송 전까지는 예배당 입구에 있다가 성도들이 일어서서 찬송을 하면 일어 서있는대열 가운데 복도를 따라서 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 장로와 함께 교단에 올라 성도들을 향해 있는 의자에 앉는다. 어떤 순간은 군대 모습과 유사하기도 했다. 전 장병이 도열해 단상을 바라보고 사열 준비를 했을 때 사단장은 지휘봉 하나를 들고 장병들이 사열한 모습을 쳐다보며 거만하게 강단에 입장한다. 예배 때 교단에 오르는 목사의 모습은 이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다보니 성도들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찬송을 부르는 것인데 마치 목사님을 영접하듯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뜻 있는 몇몇 성도들이 이 문제를 바꿔보고자 목사에게 글을 올렸다. 일반 성도가 건의를 올리는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지만 성도들은 군왕에게 장계를 올리는 구국의 심정으로 예배 입장 순서에 관해 목사에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후 처음 몇 주 동안에는 목사가 미리 단상에 올라가 혼자 기도를 하고 설교할 성경 말씀도 읽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성도들과 교회 지배층이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변화 가능성이 보이는 듯했으나 기쁨은 몇 주를 넘기지 못했다. 어느 주일 설교 시간에 목사는 설교 말미에 갑자기 짜증스럽다는 듯 목소리 톤을 높여서는 “건의안대로 예배를 진행하려고 하니 너무 부자연스럽고 산만합니다. 예배 시작 전 미리 와서 성도를 기다리는 방식은 못하겠습니다”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예배 첫 순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전 성도가 일어나 목사를 영접했다.     

그러나 누구도 목사에게 다가가서, 또는 설교 시간에 일어나서 “목사님,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하고 나설 수 없었다. 교회 내에는 마치 하나님처럼 보이는 거대한 십자가가 있다. 누구라도 목사 앞에 나아가 한마디라도 말을 거들면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벌떡 일어서서 괴성을 낼 것만 같았다. 나이가 많으신 성도부터 청년들까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예배가 끝나면 끼리끼리 모여 술렁거리기만 했다.    

그 이후 목사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원래는 첫 순서에 성도 전체가 일어서서 목사를 영접하면 목사는 단상에 자리를 잡고 사도임을 증명하는 사도신경을 성도들과 함께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의 찬양을 받으며 입장한 목사는 성도들이 모두 일어서서 사도신경을 고백해도 가만히 앉아서 눈을 껌뻑이면서 성도들을 바라 만 보고있었다. 마치 너희가 나에게 엉뚱한 요구를 하면 나는 더더욱 강하게 나가겠다는 듯이. . .     

교회 내부는 성도들이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면 단상에 있는 의자와 교탁이 성도들을 바라보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렇다 보니 성도들이 사도신경을 고백하면 목사는 거룩한 눈길로 성도들을 바라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성도들이 목사에게 충성 서약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가끔 보는 로마시대 황제 시저가 의자에 앉은 채 서서 열광하는 백성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연상된다.     

목사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교회 역사가 70년,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지 2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오다 보니 많은 시련들이 있었다. 어떤 때는 장로 몇 사람이 목사를 불신임하고 목사에게 저항하면서 약 절반 정도의 성도들을 데리고 다른 교회로 옮겼고 또 다른 이는 목사의 만행을 고발한다며 성도들 집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목사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성도들 집에 편지를 보내서 교회의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자는 떠나라고 했다. 어떤 내용의 편지가 성도들 집에 돌아다녀도 자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세로 일관하니 편지를 돌리는 성도가 지쳤다. 목사는 늘 완벽하게 승리했다. 그런 목사였기에 이번에도 ‘위대하게’ 승리하며, 성도들의 찬양을 받으며 예배를 시작하겠다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이발소에 가면 설산을 배경으로 나폴레옹이 앞발을 들고 백마를 타고 있는 그림을 자주 봤다. 앞으로 전진하라는 위대한 승리자의 손가락을 보면서,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이발소 허공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목사는 단상에 서서 설교하면서 늘 오른쪽 45도 방향으로 시선을 두곤 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쫓기든 45도의 허공을 쳐다보면서 그때 이발소의 나폴레옹을 생각했다.    

대부분의 교회에 고령의 성도들이 많이 있듯 그 교회에도 80대가 넘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 많은 노인들이 일어서서 목사를 영접하고 목사는 노인들의 찬양을 들으면서 자리에 앉아 거룩하게 성도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성도 모두가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목사를 위해 예배드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미 그 교회를 떠나시고 그 자리에 목사만 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목사는 늘 뻣뻣했다. 어르신들을 만나도 고개 숙여서 인사할 줄 몰랐다. 예배가 끝나면 부목사와 전도사들이 모두 나와 교회 정문 앞에 줄을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이 있다. 담임목사는 젊은 시절과 달리 예배당 입구까지만 겨우 나올 뿐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어르신들에게는 꼿꼿하게 서서 한 손으로 악수를 했다. 어르신들이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목사의 손을 잡으면 목사는 무표정을 하고선 왼손에 성경책을 낀 채 오른손으로만 어르신들의 두 손을 잡았다. 그 장면을 여러 번 보면서 군대나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에게는 예배 마치고 목사와 인사하는 짧은 시간이 목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이 드신 어머니가 목사에게 최대한의 예의로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목사는 아무 표정 없이 한 손으로만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걱정하셨다. “저 분이 나에게 불편한 게 있으신가?” 이 말씀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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