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도시를 발견하는 디자이너
을지로 골목을 유람하던 중 큰 창을 마주한 날이 있었습니다. 투명한 창 안으로 조명, 소반, 의자 등이 보였습니다. 거친 거리와 달리 따뜻하고 정갈한 실내는 조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공간이 디자이너의 작품 같았습니다. 창 상단엔 ‹산림조형›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때가 '산림동 山林洞'이라는 동네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낡은 거리와 말끔한 실내의 풍경 때문이었을 까요. '산림동'이라는 이름은 대조적인 두 감각이 조화로운 곳이라는 첫인상과 함께 뇌리에 남게 되었습니다.
공간의 주인인 소동호 작가는 을지로 일대 사장님들이 상호를 만들 때 차용하는 형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자신이 자리 잡기 전, 땅 위에 있었던 것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긴 작가의 시선을 짐작하게 하는 첫 만남이었습니다.
한 동네에 있었지만 골목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자주 뵙지는 못했습니다. 가끔 길에서 마주칠 때면 거리의 의자의 모습을 수집하고 계셨고,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설치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어쩌면 사용자들에 의해 마구 변형된 의자들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시작하고 그 가치를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구 디자이너로서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때는 그를 중심으로 작은 무리가 이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공장을 다녔습니다. 그의 멘티들이었습니다. 멘토가 된 작가님은 골목 곳곳을 보여주고, 공장에서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과정에서 멘티는 그가 을지로의 일상에서 사물을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배웠을 것입니다. 탐험가였고, 통역가였고, 안내자였고, 스승으로 관계를 만들어 나갔던 소동호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소동호 이야기
작업 이야기
기획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소동호 이야기
가구 디자이너 소동호입니다. 개인 작업이나 디자인 활동 외에도 전시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하고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작업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해 오신 것 같아요. 특히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하는 역할을 꾸준히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앉아 있는 의자도 그렇고요. 의자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로 시작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첫 작업실에 버려져있던 낡은 의자였어요. 인조가죽도 찢어져있고, 앉기엔 너무 낡고 오염이 되어 있었어요. 그 부분만 수리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이 의자 안에 담겨 있는 작가님의 관점과 물건을 대하는 방식이 이후 10년간의 작업을 관통하는 지점 같이 느껴져요. 원래 작가님께서 가지고 있었던 소양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강화된 부분도 있을 것 같고, 예상하지 못한 부분으로 확장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을지로에 있는 기술 장인들과 디자이너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해왔죠. 제가 그렇게 했었던 것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워크숍을 열거나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도록 알려주는 계기도 되었고요. 그런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행하면서 얻은 결과물을 전시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런 일들을 계속 해오게 되면서 내가 이 장소에 있지 않았더라면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은 “NO”였어요.
장소성이 주는 힘. 장소를 유지함으로써 또 만들어질 수 있는 다음이 있었다는 것들은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또 재미난 부분이기도 했고요.
어떤 의미에서 작가님께서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해주신 것 같아요. 지역에서 발견한 것들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게끔 하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것을 원해서 하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작업 이야기
당시 조명 관련된 개발을 위주로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작업실 바로 옆에 계시던 시보리 사장님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였기에 더 의미가 있기도 했어요. 지금은 일단락된 프로젝트예요. 다른 기회가 더 있었다면 더 진행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제가 했던 작업을 통해서 다른 디자이너나 관계자들이 관심을 갖는 계기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당시 작업을 함께 하신 ‘한라금속’ 사장님께서 자신의 기술에 대한 뿌듯함이 되게 크셨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자긍심과는 별개로 자신의 공장은 재개발 대상지이고, 개발된다는 것 때문에 거래처도 점점 끊겨가면서 전만큼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들의 수도 줄어들게 되고. 자부심과 현실의 틈이 점점 더 벌어지면서 공허하게 느끼는 부분들이 점차 커지셨던 것 같았어요. 작가님과의 작업을 통해 간극이 조금은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작가님께서는 어떠셨을까요? 다른 세대, 다른 영역의 분과 관계를 맺고, 협업을 하고, 결과를 만들어 나눈다는 것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선 뿌듯함도 있으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을지로의 공장들을 보면 굉장히 바쁜 곳도 있지만 골목 안쪽에는 그렇지 않은 공장들이 있어요. 그분들은 오랜 시간 일을 해왔고, 기술력이 좋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 같아요. 일이 없다 보니 하루하루 단순하게 흘러가는 형태였는데 제가 옆 작업실에 입주하고부터 이전과는 다른 기대와 가능성을 내심 가지시는 것 같았어요. 알게 모르게 뭔가 하나를 같이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바로 옆이다 보니 정말 간단한 스케치만 가지고 상담하기도 좋았고, 실제로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보는 것도 굉장히 빨랐어요. 그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같이 일을 할 때면 사장님도 의욕이 타올라서 밤늦게까지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작가님께서 사장님과의 관계를 만드신 이후에 제가 그 공장에 가게 되었죠. 처음 뵈었을 때부터 대해주신 온도와 태도가 따뜻하고 친절하셨어요. 많이 챙겨주고 싶어 하셔서 때론 부담스러울 정도로요. 꼭 그냥 보내지 않고 다방 커피를 시켜서 한잔 먹여서 보내고 싶어 하셨어요. 그것이 작가님과 사장님의 관계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아요. 어떤 날은 사장님께서 찍으신 사진도 보여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맞아요. 사장님께서 찍으셨던 사진 중에 인상 깊었던 것들이 있어서 몇 장은 달라고 해서 가지고 있기도 해요.
기획 이야기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by을지로’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아요. 현업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작가에게 일정한 프로젝트 지원금을 주고, 을지로에 있는 다양한 기술 장인들과 작업을 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정말 가능할까 싶었던 것들이 실현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을지로에서 못 만드는 게 없다고 하지만 말로만 듣는 것과 그것을 실제 경험하는 것엔 와닿는 차이가 크거든요. 그 경험이 더 큰 가능성으로 열리는 지점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소동호 작가는 'by을지로'에 2018년에는 디자이너로 2019년에는 아트디렉터로 참여하였다.
개인적으로 '의자'라는 사물 자체에 대한 관심이 디자이너로써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로 넘어가요. 유명한 건축가들, 디자이너들의 마스터 의자는 공부하면서 많이 접했어요. 의자 디자인의 정석을 보면서 정답을 찾고 지향하는데 어느 순간 시각적 지루함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어요. 물론 그럼에도 너무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늘 ‘좋은 디자인’, ‘명작'의 자극에 노출이 되어 있다 보니 시선을 조금씩 돌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울의 길거리 의자들'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다 같은 의자이고, 어떠한 재료나 기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의자인데 이게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 거리의 실사용자들에 의해서 변형되어 만들어진 형태, 색, 기능들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특히 을지로, 종로 지역에서 발생되는 의자들을 중심으로 발견하고 수집했어요. 2015년 을지로에 작업실을 만들기 전부터 길거리 의자들에 흥미를 느껴 간헐적으로 기록해 왔었어요. 작업실이 이 지역에 생긴 이후론 더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2017년부터는 서울의 길거리 의자들을 아카이빙 자료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동안은 계속 아카이빙만 했고 이 자료를 어떻게 써봐야겠다, 혹은 어떻게 내 작업에 녹여야겠다 등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수집 자료량이 많아지고 시선이 확장되면서 어떻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가지가 뻗어 나오게 되었어요.
지금은 의자와 저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어요. 길거리 의자들 외에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의자들 또한 기록하고 있어요. ‘시팅 서울'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스터들의 의자와 한국의 젊은 창작자들의 의자, 길거리의 의자 가릴 것 없이 저에게 의자는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어요.
작가님을 통해서 우리가 표준으로 삼았던 정답과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 동시대 새롭게 철학을 담아 탄생하는 의자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팅 서울'의 시작은 저와 BKID 송봉규 대표, 양정모 디자이너 셋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젊은 창작자들, 2000년 이후 21세기에 만들어진 의자 디자인을 아카이빙 해보자 하고 시작했어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료를 아카이빙을 하는 것이었어요. 웹 아카이브가 기반이 되고요. 이후 전시 형태로 뻗어가는 것은 아카이브에서 파생해서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는 활동이에요.
3명이 어떠한 체계를 가지고 하는 활동이라기보다 굉장히 느슨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또 언제 다시 뭘 해보자는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아요. 새로운 기회가 있고 저희가 수집해 놓은 자료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전시나 그 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 거죠.
느슨한 연대의 형태로 유연하게 자료가 모이고 어느 순간 때가 되면 피어나는 모습이 오히려 지속성과 다양성을 담보하는 형태로 보여집니다. 앞으로 쌓아나가실 이야기가 더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그때 진행 했던 ‘일일 찻집'은 제가 프로젝트 멤버 중 한 명으로 참여했던 거였어요. 배정현 누나와 기획한 프로젝트인데 누나는 전에 나일론 편집장이기도 했고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에요. 누나를 제외한 저희는 숟가락만 얹은 거였어요.
예전에 일일 찻집을 연다고 하면 티켓을 사서 가면 커피도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도 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을 을지로의 오래된 다방들에서 이어서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모여서 진행하게 되었어요. 모인 사람들이 다들 디자이너이고, 크리에이터이다 보니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 재밌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요. 처음엔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솔다방'에서 진행을 했었고, 이후엔 을지로가 내려다보이는 ‘세운나다방'에서 진행을 했었어요.
을지로라는 곳이 ‘제조업’, ‘기술’ 이런 것들도 있지만 ‘다방’이나, ‘노포' 등 다양한 문화와 콘텐츠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지역의 요소들과 창작자들을 연결 지어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 것 같아요.
*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특정 업체가 구청의 시장 활성화 일환으로 노상에서도 술을 판매할 수 있는 조례가 통과된 이후 다른 매장들을 쫓아내 그곳을 자신의 점포로 바꾸는 사건이 발생함.
기억에 남는 일이에요. 단골이었는데 안타까운 상황에 지역에 있는 디자이너가, 예술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크게 힘을 미칠 수 없더라도 분위기를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당시가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이라 맥주도 한잔 하면서 겸사겸사 자주 사장님과 이모와 상담도 하고 어떻게 이걸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터였어요.
‘뭐 언제 만나자.’ 할 것도 없이 정말 자주 가서 사람들을 만났던 곳이었어요. 방앗간처럼 드나들었던 곳이었죠. 일 끝나고 동료들과 매일 같이 가고, 을지로에 놀러 온 사람이 있거나 취재를 하러 온 사람이 있으면 모두 그곳으로 데리고 갔어요. 당시엔 생활의 일부였기에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슈가 개인적인 일처럼 화가 났던 거 같아요. 아니, ‘오비베어'의 전통적인 역사와 지역에서 해오신 역할이 있는데 돈을 더 벌겠다는 목적으로 그들을 쫓아내려는 상황을 보면 누구라도 화가 날 만한 일이었어요.
애정하는 가게가 언제 쫓겨나 오늘 바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보면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장례 퍼포먼스를 남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노출되기도 하고, SNS를 통해 주변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면서 이 상황을 좀 더 알리게 된 것 같아요. 법적으로 원만히 해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 ‘을지OB베어'가 장소를 옮겨 을지로로 다시 돌아와 계시기는 하니깐.
작가님께서 사회적인 운동을 소재로 작업을 해오신 것도 아니었기에 해야 할 일들만 해도 굉장히 시간이 바빴을 텐데 ‘다방', ‘호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도 관심을 가지며 이벤트와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에너지를 전환해야 하고 그만큼 시간과 노력,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었을 것 같아요. 동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어떻게 보면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별개의 문제 같아 보이지만 사실 별개의 문제 같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모두 저의 관심사와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저의 관심사에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서울' 그리고 ‘을지로'였어요. 그곳에 있는 것들 중 문화적인 측면도 되게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에 한 맥락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 이야기
당시 집이 연희동에 있었어요. 원룸이었는데 작업실을 따로 구할 만한 상황은 안되었어요. 당시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사업자도 따로 없었고, 공모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작업을 이어가는 시기였어요. 당시 여자친구(현 와이프)가 익선동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을지로는 걸어서 한 10분 정도면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보니 자주 왔었어요. 종로나 을지로 일대에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중구청에서 을지로의 공동화 현상으로 생긴 빈 공간을 예술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을지로디자인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을지로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그렇게 공고를 통해 작업실을 구할 수 있었고, 운이 좋게도 계속 연장이 되어 한 장소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행운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작업실을 옮겨야 하는 주기가 짧았고, 이 지역을 떠나게 되었다면 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가 완결성 없이 끝났을 텐데 그 시간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산림동에서 2015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만 5년. 그리고 인현동에서 2020년 6월부터 21년 9월까지.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서 2021년 9월부터 2024년 6월까지 해서 총 9년 조금 더 있었네요.
을지로에 자리를 잡게 된 시점부터 많은 기회가 열렸던 것 같아요. 때문에 을지로가 특별해요. 10년이라는 시간은 내 인생에 10년 4분의 1 가량을 차지하는 시간이니 돌아보면 의미가 더 크네요.
공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구청에서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했을 땐 환경에 문제가 없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레지던시들과 다르게 방치되었던 공간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보니. 공간이 주는 어려움은 없으셨을까요?
사실, 제 작업 공간이 워낙 열악했어요. 구청에서 약간의 보수해 주어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비가 오면 빗물이 벽을 타고 흐르고, 눈이 오면 작업실 안에 물이 꽁꽁 얼었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작업을 하면서 친한 사람들이나 주변 동료들에게 투덜대기도 했었죠. 하지만 돌아보면 장난 섞인 투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 자체가 지금 돌이켜보면 낭만이었지 않나 싶어요. 을지로에서 그렇게 작업실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한 경험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말 춥고, 덥고, 다양한 냄새도 많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점들이 많았죠. 주변 공장 사장님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고 주변 동료들과도 작업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저녁이 되면 같이 술 한잔 먹으러 가서 또 회포도 풀고. 그런 점들 때문에 공간이 물리적으로 주는 힘든 부분들은 상쇄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돌아보면 낭만의 시간이었네요.
혹시 열악한 공간을 사용하시면서 있었던 일화가 있을까요?
정말, 천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실내와 실외가 구분되었었죠. 골목 초입에 들어서면 큰 창으로 통해서 작업실이 보였어요. 골목을 꺾어 들어왔을 때 이질적이지만 자연히 녹아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었어요. 살짝 안쪽이어서 인지 사장님들이 담배도 많이 피우시고, 간혹 대소변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을지로 골목을 걷다 보면 곳곳에 ‘대변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다 그곳에 그 문구가 적힌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새삼 떠오릅니다.
정말 좋은 동료들을 만났어요. 성과가 있다면 그게 제일 좋았던 점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함께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기나 질투가 난 적이 없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동료였어요.
동료들과 모임을 가지게 되면 제가 나이가 많았는데, 다들 술자리나 사람들 모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단합이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욕심을 내거나 시기질투를 해서 누군가 보다 잘 되고 싶어 하고 시기 질투를 한다면 관계는 이어지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계신 분이 있었다는 게 크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다른 이가 잘 되어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당시 저를 돌아보면 마음이 많이 급했던 것 같아요. 때문에 다른 작가의 성장을 형식적으로는 도우면서도 마음에서는 시기를 떨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그것으로 일을 그르치는 실수도 했었어요. 그럼에도 한쪽에서 이렇게 마음을 가져주시고 중심을 가져주신 분이 계신 덕분에 저도 안정감을 느꼈고, 그렇게 같이 각자의 위치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을지로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어요. ‘도미노’(반려묘)도 만났고, 이곳에 있을 때 결혼도 하고, 작년에 아이도 출산했고요. 그리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남았어요. 저로서는 을지로에서 약 10년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내일 이야기
지난 시간 동안 을지로에 있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또 그들이 어디론가 갔고요. 지금 제 주변의 사람들은 이제 을지로에 거의 없고, 저 역시도 이곳을 이제 떠나야 할 때 구나 하는 생각하게 되어요. 작년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집도 멀리 이사했고, 지금은 와이프와 둘이 함께 육아를 하다보니 작업실도 집 근처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때마침 현 작업실의 계약도 기간이 끝났고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과정에서 주마등처럼 많은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고 아쉽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도 있고요. 하지만 혹시 모르죠. 언젠간 다시 이곳으로 올 수도 있겠죠.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근데 을지로가 많이 변했어요. 그래서 꼭 을지로여야 한다는 이유는 없어진 것 같아요. 경험은 제 안에 있고, 사람은 주변에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가면 다 가져가는 것 같아요.
제가 공간 지원을 받았던 것처럼, 관이나 기업에서 작가를 지원할 때 꼭 공간 지원을 했으면 해요. 안정적으로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뭔가를 할 거예요. 지역에서 생산적인 것들을 만들고 관계를 맺을 거예요. 그렇게 자신의 작업과 삶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5년 후 모습은 어떨 것 같은지 여쭙고 싶어요.
나의 5년 후. 사십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겠네요. 그냥 지금처럼 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 하는 일들이 전에 해왔던 일들과 같은 맥락의 일들이라면, 그럴 수 있는 삶이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때면 아이도 5살이 되니 삶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은데. 좀 기대도 되고 ‘뭔가 해야겠다.’ ‘이뤄야겠다.’라기보다 지금과 같은 삶이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일상 속 도시를 발견하는 디자이너
소동호 작가님께서는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일상의 가치를 발견해 준 디자이너였습니다. 다양성이 가지는 가치를 발견해 나눠주셨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레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도시가 어느 것을 잃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이 만든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건에 담긴 이야기,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애정하고 아낀 마음이 디자인을 통해 형상을 가지게 되고, 다른 이들도 물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작가님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낡아 버린 것, 각양각색으로 쓰이는 것, 여전히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계십니다. 아마 그곳에서도 같은 시선으로 길 위를 비춰나가시리라 생각합니다. 낡은 도시 을지로에서 일상을 귀하게 만들어주셨던 것처럼 그곳에서도 소소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눠나갈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작가님의 그릇에 어떤 것들이 담길지 궁금해집니다.
소동호 작가님께서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길 위에 쌓인 일상을 발견해 온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 지어봅니다. 그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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