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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예술가가 그려나갈 도시 ep.01

건축가: 예술가, 첫 번째 1:1 을지로 도시 워크숍을 마치며

by 청두

여는 이야기

2025년 초, 노르웨이 건축가 그룹 ‘DRMA’와 한국의 건축사사무소 ‘도시건축정류소’, 도시 속 예술가의 가치를 연구하는 ‘작은도시이야기’가 을지로의 예술가 커뮤니티와 함께 더 가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시간과 서사가 축적된 을지로 일대에서 예술가(창작자)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전과 다른 맥락으로 도시를 해석하고 공유한 활동에 주목하였습니다.


을지로엔 다양한 예술가 커뮤니티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각자의 활동영역에 따라 도심산업, 공간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역의 그물코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그룹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건축가들은 예술가 커뮤니티가 도시를 더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였고, 그들과 함께 변화하고 있는 도심의 ‘다음 장’을 그려보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다음 장’은 재개발을 통해 획일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도심에서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예술가가 어떻게 더 정주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느슨하게 연결된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어떤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건축가와 예술가가 함께하는 워크숍 이름을 ‘1:1’이라 정했습니다. 서로의 역할을 지역 위에 펼치고 합쳐보는 과정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이름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첫 워크숍은 2025년 7월 10일 중구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인현이음’에서 진행하였습니다. 본 워크숍이 만들어나갈 것들에 대해 큰 방향과 과정을 설명하고, 참여자들에게 제언을 듣는 시간으로 꾸려졌습니다.


을지로에 공간을 가진 예술가(작가, 디자이너, 기획자)와 건축가, 연구자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어떻게 다음을 열아나갈까?’에 대한 유의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해당 내용을 기반으로 9월에 열릴 ‘Part.02’로 연결될 예정입니다. 본 칼럼을 통해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진행하면서 나왔던 유의미한 내용을 2회에 걸쳐 정리하고 공유할 예정입니다. 다만, 필자의 관찰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일부 내용이 사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히며, 함께 그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목차

건축을 아끼는 건축가

을지로를 분광하는 프리즘

예술가가 사는 도시

다층적 감각이 만든 느슨한 그물망

건축가와 예술가, 함께 그려나갈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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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아끼는 건축가

‘도시건축정류소 건축사사무소’의 이재원 소장님(이하 이소장님)에게도 을지로는 특별한 장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많은 애정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오랜 시간 동안 남겨진 건물과 그 안에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정답’이라고 명명한 것들 외에 다양한 실험과 시도들이 남겨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년 이맘때쯤, 이소장님과 동료에게 ‘탈건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건축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서 ‘탈건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을 듣고 다소 냉소적으로 느껴졌으나, 이내 통찰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의미와 맥락에서 건축가들 사이에서 ‘탈건축’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소장님의 작업과 연구들을 보며,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정해 본다. 현대 한국 건축을 움직이는 원리는 자본과 효율성을 위해 만들어진 법제도 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건축의 본질을 사라지게 만들고, 건축가가 아닌 건설가들이 현장에 남아 도시를 채워나가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건설만 남은 삶엔 존중과 귀함이 머물 자리가 매우 좁다.


이소장님께선 학생들(연세대 건축공학과 Studio X_UNIT2)과 함께 을지로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예술가의 공간을 주목하여 몇 년에 걸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예술가 혹은 예술가의 영역에 걸쳐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들을 기록하고, 그들이 만든 의미를 정리해나가고 있다. 그들이 만든 공간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 안에서 연결된 인연들이 모두 기록의 대상이다. 발견되고, 기록되며 휘발될 뻔했던 순간은 귀한 것으로 남게 되고, 연구의 대상이 된다. 분류되고 정립되며 다른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모듈의 형상의 띠기 시작한다.


낡고 버려졌던 공간에 찾아든 예술가들은 정형화된 답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이 점유한 장소엔 각자의 현실과 목적에 맞춰,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과 관계 맺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이는 문명의 탄생 이전부터 누구나 건축을 하며, 환경에 맞춰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던 인간의 ‘건축 행위’의 본질적인 모습을 담고 있으며, 현대 대도시 속에서 그 맥락과 가치를 이어가고 있는 영역 이기 때문에 ‘건축’을 지향하는 이의 눈엔 유의미한 현상이었으리라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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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건축 드로잉, 이재원, 2023 ⓒ작은도시이야기



을지로를 분광하는 프리즘

지난 몇 년간, 이소장님은 누군가가 을지로를 볼 수 있게 해주는 프리즘과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납작하게 보였던 것들 안에 어떤 색이 담겨 있었는지 분화하고 펼쳐 보여 가치를 놓치지 않을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오래된 골목, 낡은 건물은 언제부터인가 재개발을 하고 싶은 지역 혹은 재개발을 해야 하는 지역 정도가 되었다. 숱한 화재가 있었고, 때마다 건물주들은 멀리 있었다. 공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삼삼오오 서로의 힘을 빌어 지붕을 만들고 다시 생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을지로엔 파란 지붕이 많아졌다. 주인이 멀어진 건물은 공간을 점유한 이들에 의해 유지되었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간 사람들 사이엔 연대의 서사가 쓰였다.


을지로에서 제자들과 함께 찾은 자료들로 책을 만들기도 했고, 동료들과 전시를 만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어떤 건축을 해야 사람들의 삶이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건축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범 일상적인 예술가들과 그들이 발견하는 도시의 작은 요소들을 살펴보는 그의 시선과 애정은 점점 타인에겐 필터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노르웨이 건축가 그룹 ‘DRMA’가 서울에서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답을 찾고 건축적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난 몇 년의 시간 위에 위치하는 사건은 자연히 ‘예술가 커뮤니티’와 연결되었고, 소위 예술거점이라고 불릴 만하고, 커뮤니티가 존재하거나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는 몇몇 장소를 검토하였다고 한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지속적인 소통 이후 대상지는 ‘을지로’로 정해지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자립건축 01 - 04

· 자립건축 01, 작은물

· 자립건축 02, 아트쉬프트

· 자립건축 03, 육일봉

· 자립건축 04, 알렉스룸



예술가가 사는 마을

잠깐, 을지로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예술가마다 성격은 다르겠지만, 을지로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활동을 보면, 그들이 도심에 살아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심은 예술가로서 살아기 위한 물리적, 문화적 양분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고, 공공이 만든 교통수단은 수도권까지 연결된다. 근접한 서울역과 용산역을 활용하면 지방까지 반나절이면 도착하기 좋다. 그들이 정주하는 공간은 저렴한 비용으로 광역으로 연결되고, 작품에 활용될 다양한 재료와 이야기를 문만 열고 나가면 구할 수 있다. 더불어, 골목마다 숙련공들이 가득하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인쇄와 철공을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동료들과 교류하기 좋으며, (아주 큰 작품이 아니라면) 창작하기 최적에 장소가 되어준다. 소속감을 만들어주고, 한 예술가의 시도를 용인하기에 안팎으로 살아 성장할 확률을 높여준다.


도심은 자본의 집약지로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일반적으로는. 다행인 것은 다양한 재료와 산업, 서사가 쌓인 을지로는 적인 비용으로 살아갈 여지가 아직 열려 있는 곳이다. 서울이 새로워질 동안 몰려든 욕망이 오히려 을지로의 시간을 엿가락처럼 느슨하게 늘려놓았다. 낡아버린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단열을 위한 내장재도 미흡해 냉난방은 매우 비효율적인 행위로 전락한다. 때문에 3층 이상의 공간은 튼튼한 근력과 유연한 관절만 있다면 예상을 벗어난 합리적인 비용으로 점유가 가능하다. 길게 늘어진 시간 덕분에 일대는 획일화되는 도시 모습에서 살짝 비껴갈 수 있었다. 비정형적인 건물 구조, 낡은 외벽, 건물주의 집중관심에서 벗어난 동네라는 특징은 예술가가 자신의 취향을 펼쳐나가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다층적 감각이 만든 느슨한 그물망

을지로는 여러 층위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층위’라 함은 높낮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쓴 단어가 아닌 다양성을 이야기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하였음을 밝힌다. 단기간에 빠르게 변한 현대 한국은 도심지인 을지로에 다양한 사람과 건축, 산업군을 축적하였다. 각 층마다 쌓인 다른 흔적은 세상을 탐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예술들이 킁킁 거리며 발굴해 내고야 마는 자원이 되었고, 각기 다른 미뢰를 가진 창작자들은 저마다의 다른 주식을 발견했다.


시간이 축적된 일상에서 예술가들은 그들의 생리현상에 따라 지역을 해석하고 공유했다. 낡은 간판은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의 모티브가 되어주었고, 땅에 버려진 물건은 쓰임을 고민하는 산업 디자이너에게 실마리를 주었고, 낡은 거리와 건물은 새로운 형식의 공공예술을 잉태시킨 자궁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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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l ⓒ덕화맨숀(좌), 시보리와 식물 그리고 중ⓒ0tox(중), 을지로판타지아 BrainDance ⓒ설탕이의 모험(우)



여러 층위의 예술가는 여러 층위와 사람·공간과 연결되었다. 그물망처럼 연결된 관계 속 그물코가 되었다. 을지로의 느슨한 그물은 유속을 방해하지 않고 많은 것들이 오가며 머물도록 한다. 이는 폐쇄적이고 끈적이는 예술가 커뮤니티가 있는 몇몇 지역과 대조적이며, 개인적으로 놀라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추정 건데 아마 쉽게 떠나고, 쉽게 올 수 있다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이런 여유는 지역을 성장을 위해 찾아오는 곳으로, 타인을 위해 나의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곳으로, 다른 시작을 위해 떠날 수 있는 곳으로 위치하게 했다. 여백은 교류와 확장의 가능성이 되었다.


하지만, 현상과는 별개로 몇몇 관성에 따른 사람들은 독점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여전히 그런 시도를 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존재하지만, 그들의 뿌리는 넓게 뻗어나가지 못한다. 아마 토양의 특성의 차이일 것이다.



스크린샷 2025-07-24 011650.png 을지로를 구성하는 층위, 을지로들, 버펄로필름 ⓒ인문 360 YOUTUBE




건축가와 예술가, 함께 그려나갈 도시

을지로라는 공간은 특수하다. 그곳에서 자라난 예술도 어미의 형질을 닮아 특수하다. 지난 10년 동안 특질 안에 끈적이지 않는 신뢰가 자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본의 힘은 강하다. 더 큰 자본을 만들기 위한 욕망은 강하다. 재정비를 진행하는 중 협의가 안 되는 건물은 잠시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포크레인이 지붕을 뚫고, 협의가 정체된 건물엔 절묘하게 화재가 발생한다. 언론은 낡은 건물과 도로에서 원인을 찾고, 모두가 일터에 복귀한 점심시간 직후 거리를 찍으며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보도한다.


낡아서 새것으로 대체되어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이 찾지 않는 빈 곳이라고 하지만, 지역의 임대료와 부동산 매매가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역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음을 또 다른 얼굴의 자본이 증언한다. 아이러니하다.


‘기적의 사과’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농약을 치지 않은 사과밭이 있었다. 농부 아키노리상은 무농약으로 사과를 재배하겠다는 무모한 꿈을 꾸며 몇 년간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동네 농부들이 쫓아왔다. 농약을 치지 않아 동네 농사를 망친다며 언성을 높였고, 아키노리상은 밤에 다시 찾아올 것을 부탁한 후 돌려보냈다. 밤이 되자 농약 치는 밭에서 생명이 다해가는 곤충들이 아키노리상의 밭으로 힘겹게 날아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농부들은 조용히 돌아갔고, 다시는 농약에 관한 일로 아키노리상의 밭을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지역의 청년 상인들이 어느 순간부터 왈칵 을지로로 넘어왔다. 그들이 만든 생태계는 예술가들의 공간, 산업의 공간과 병존하며 ‘힙지로’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경리단길의 복제품으로 전국이 채워질 때, 도심엔 새로운 품종이 탄생했다. 무균 도시 안에 예상치 못한 잡종이 탄생한 것이다. 건설된 아파트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 자다가도 이종교배의 여지를 남겨놓은 마을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상상력이 자극된다. 찌릿찌릿하고, 근질근질해진다.


건축을 소중히 여기는 건축가들은 이곳을 보며 설레었으리라,

국적을 떠나 이곳이 채워놓은 이야기와 남겨진 여백을 발견한 이들은 그것에 공감했으리라 짐작한다.


함께 살 여백을 남겨놓는 이들이 있고, 공동의 것으로, 공통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그려보려 한다. 건축을 아끼는 건축가와 커뮤니티 속에서 답을 찾는 건축가들과 지역의 자원 속에서 성장하는 예술가 그리고 도시 속 예술가를 귀히 여기는 이들이 만났으니 여기서 나올 이야기들이 기대될만하다.



IMG_0545_02.png 이재원 소장님의 메모장,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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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 건축가:예술가 을지로 도시 워크숍

일정 : 2025.07.10.am 9:30 - 11:30

장소 : 인현이음

기획 : 도시건축정류소 건축사사무소, 작은도시이야기, DRMA






참고자료

이재원 & 연세대 건축공학과 Studio X UNIT2, 자립건축, 2023-2024

이시카와다쿠지 & 기무라아키노, 이영미 역, 기적의 사과, 기영사, 2009

김영인, 을지로들, 버팔로스튜디오, 2023

설탕이의 모험, 을지로판타지아 ; BRAIN DANCE 2023, 202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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